|
2-1. 하회(河回) 16경 (2019. 10. 15)-속명승보 8
-이복(李馥)의 한시 발제에 대한 화답
제1경 입암청장(立巖晴漲) 맑은 날 강 가운데 선 형제바위
제2경 마암노도(馬岩怒濤) 마암에 부딪치는 성난 물결
제3경 화수용월(花峀湧月) 화산에 솟아오르는 달
제4경 산봉숙운(蒜峯宿雲) 마늘봉에 서린 구름
제5경 송림제설(松林霽雪) 눈 개인 뒤 만송정 솔밭
제6경 율원취연(栗園炊煙) 율원에 오르는 밥 짓는 연기
제7경 수봉상풍(秀峰霜楓) 첫서리 내린 남산의 단풍
제8경 도잔행인(道棧行人) 상봉정 비탈길로 지나가는 나그네
제9경 남포홍교(南浦虹橋) 남쪽 나루의 무지개
제10경 원봉령우(遠峯靈雨) 원지봉에 내리는 신령한 비
제11경 반기수조(盤磯垂釣) 물가 반석에 있는 낚시꾼
제12경 적벽호가(赤壁浩歌) 부용대에서 부르는 노래
제13경 강촌어화(江村漁火) 강촌의 고기잡이 불빛
제14경 도두횡주(渡頭橫舟) 나루에 매어져 있는 배
제15경 수림락하(水林落霞) 수리미 고개에 내리는 노을
제16경 평사낙안(平沙落鴈) 모래사장에 내리는 기러기
* 개요; 하회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민속마을이다. 토속적 전통과 건축물을 잘 보존한 풍산 류씨(柳氏) 집성촌이다.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경북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독특한 지형을 갖고 있다. ‘하회(河回)’라는 이름도 ‘물이 휘돌아 간다’는 뜻에서 유래되었으며, 풍수지리학적으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길지라 전한다. 일명 ‘화천(花川)’은 강의 상류로, 그 둘레에 퇴적된 넓은 모래밭이 펼쳐지고, 서북쪽에는 울창한 노송림이 들어서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강류의 마을 쪽이 백사장인데 반해, 건너편 부용대(芙蓉臺)는 급준(急峻)한 층암절벽이 연속된 험지다. 마을 안 보물 제306호 양진당(養眞堂) 대청마루에 조선중기의 문신 이복(李馥, 1626~1688)이 지은 ‘河回十六景’ 한시(5언 10구 배율) 현판이 걸려있다. 그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다. 아버지는 개령(開寧)에 세거지를 둔 이상규(李尙規)이고, 장인은 황준경(黃浚瓊)이다. 인물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이를 바탕으로 필자가 현대적 감각을 살려, 한국 최초로 정격 단시조로 읊는다. 그리고 시조본문에 ‘하회’ 라는 용어는 단 하나도 넣지 않았다. 한시 16수를 각 시조 밑에 주석(註釋)으로 달았으니, 선인의 정취와 한번 비교해보기 바란다.
서시(序詩)
조선 땅 길지이니 화천(花川)이 감아 돌아
마을은 안온하고 산물도 풍부할 사
산하는 정기 이어져 명문준걸(名門俊傑) 토해네
제1경 입암청장(立巖晴漲)
강심에 엎드렸나 의젓한 형제바위
홍수가 덮쳐 와도 한 손으로 밀쳐 내고
도끼로 쪼개놓은 듯 배움 길도 뚜렷해
* 이복의 한시. 甲寅(顯宗 15年/1674) 元月 下幹 陽溪散人. 이하 같음.
岩岩入江中(암암입강중) 물 가운데 선 두 바위
終古聞江漲(종고문강창) 태고부터 큰물 소리 듣는데
漲立岩不沒(창입암불몰) 큰물에 잠기지 않고 서 있고
漲伏岩無恙(창복암무양) 큰물에도 탈나지 않고 근심도 없네
有如特立人(유여특입인) 마치 큰사람이 버티어 서 있듯
風波任所伏(풍파임소복) 풍파에도 그 자리 엎드려 있네
隻手回倒瀾(척수회도란) 한 손으로 물결 저어 엎어진 것 도로 세우고
百川聽東障(백천청동장) 학문의 흐름을 첫 길로 가게 하였네
豈斯斧鑿能(기사부착능) 누가 무엇으로 능히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偉哉眞可仰(위재진가앙) 참으로 훌륭하도다 우러러 보이네
* 立巖; 겸암정 앞에 있는 ‘형제바위’. 漲; 물이 가득히 차서 흐르는 모습.
* 回倒瀾~東障; 唐 韓愈(자 退之)의 ‘進學解’에 “障百川而東之 回狂 瀾於旣倒. ”여러 갈래로 흐르는 물(老,佛 등 사상)을 동쪽〔儒學〕으로 막아 흐르게 하고. 미친 물결에 넘어진 것을 다시 회복케 하였다”에서 인용하여, 東流하는 花川에 비유한 것임.
제2경 마암노도(馬岩怒濤)
갈모 쓴 장사(壯士)일까 반석 위 뾰족한데
파도가 후리치니 천둥소리 내다가
큰물이 밀려올 때는 난장이로 쪼그려
造物爲此弄(조물위차롱) 조물주가 이것으로 희롱 하려는가
土沙還非豪(토사환비호) 토사는 크지 않아 돌아오지 아니 하네
石盤楚堆馬(석반초퇴마) 펑퍼짐한 바위는 초나라 퇴마 같고
波激吳江濤(파격오강도) 물결은 성난 오강의 물결 일세
聳觀勢奔猛(용관세분맹) 솟는 물은 화난 맹수가 뛰듯
亂耳聲怒號(란이성노호) 귀가 어지럽게 성난 소리를 내네
白日㤼聞雷(백일겁문뢰) 한낮에도 천둥치듯 무섭게 들리니
長年驚避高(장년경피고) 언제나 놀라 높은 곳으로 피하게 하네
試問水落後(시문수락후) 큰물 지난 뒤 물어 보련다
何似蘇仙皐(하사소선고) 소동파가 노닐던 언덕과 어디가 닮았는가
* 馬岩: 부용대 앞 ‘갈모바위’. 楚堆馬: 不明(楚王 項羽가 탔던 말 ‘騅’(추: 푸르고 흰 말)를 가리킨 듯하다. 吳江: 양자강 하류. (여기서는 項羽가 죽은 吳江인 듯).
* 蘇仙皐: 蘇軾(1036-1101, 호 東坡, 宋代 第一의 詩人이 놀던 언덕, 「赤壁賦」로 유명하며, 芙蓉臺를 赤壁으로 보고 인용한 詩句임.
제3경 화수용월(花峀湧月)
꽃산 위 솟은 만월 옥토끼 깡충 뛰니
시인은 잔 거두고 물끄러미 하늘 보다
호호호 선녀 웃음에 허리춤을 끄르네
舍東有花山(사동유화산) 마을 동쪽에 화산이 있어
山上完立月(산상완입월) 봉우리 위로 둥근 달이 솟네
月光滿江山(월광만강산) 달빛이 온 강에 가득 차니
斗覺淸魂骨(두각청혼골) 문득 내 마음도 맑아지네
幾停謫仙盃(기정적선배) 귀양 온 신선은 거듭 잔을 멈추고
更探堯夫窟(경탐요부굴) 또 다시 요부굴을 찾는 구나
夜喜天心到(야희천심도) 한밤중 하늘 가운데로 이르면 즐겁고
曉惜雲間沒(효석운간몰) 새벽엔 구름에 잠기면 섭섭하다네
如此使作主(여차사작주) 이 같이 주인으로 모시며
百年長對越 (백년장대월) 일생동안 마주보며 살겠네
* 花峀; 화산. 斗覺; 문득 생각남. 謫仙; 하늘에서 지상으로 귀양 온 신선 즉, 시인. 堯夫窟; 착한사람이 사는 곳. 天心; 임금의 마음, 하늘의 가운데.
제4경 산봉숙운(蒜峯宿雲)
구름은 줏대 없이 야산만 넘나들다
마늘봉 꼬드기니 못 이긴 척 달려와
벗님이 반쪽만 떼어 내 손안에 쥐어줘
油然雲出峀(유연운출수) 산에서 뭉개 뭉개 구름이 나오면
峞乎山入雲(외호산입운) 뾰족한 봉우리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네
無心自朝暮(무심자조모) 아침부터 해지도록 마음을 비우고,
旦可消塵氛(단가소진분) 밤새워 쌓인 풍진 쓸어 없애네
山能不負吾(산능불부오) 산은 나를 맡아주지 않는데
雲誰特贈君(운수특증군) 구름은 뉘라서 특별히 자네에게 보냈나
山外有喧爭(산외유훤쟁) 산 밖에 시끄러운 다툼 있어도
雲間無見聞(운간무견문) 구름 속이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네
早曉君其許(조효군기허) 이른 새벽마다 자네가 허락해
一半吾願分(일반오원분) 원컨대 절반만 나에게 나누어 주게나
* 蒜峯; 마늘봉, 달리 만은봉(晩隱峯)이라고도 부른다. 油然; 구름이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모양, 峞乎山; 다른 산보다 더 뾰쪽한 산.
제5경 송림제설(松林霽雪)
짙푸른 소나무 숲 강가를 치장하지
첫눈이 내린 뒤라 옥띠를 뽐내지만
개인 후 노선(老仙)을 보니 흰 수염만 남았네
定鼎萬松樹(정정만송수) 솥을 세운 듯 수많은 소나무
遠村臨江別(원촌임강별) 멀리 마을 바깥 강변에 서있네
何處見奇姿(하처견기자) 어디서 보아도 신기한 모습
歲寒初霽雪(세한초제설) 찬 겨울 첫눈이 개인 뒤라네
群林百卉眺(군림백훼조) 숲속 나무와 풀들을 바라보니
索莫生意絶(삭막생의절) 삭막하여 생기가 끊겼네
蒼髥帶玉立(창염대옥입) 검푸른 수염에 옥띠 둘러 서있고
白鬚咽毛節(백수열모절) 온 몸은 하얗게 단장하고 서 있구나
恐與三春木(공여삼춘목) 아마도 봄철 나무 때문이겠지
一倒看無別(일도간무별) 석양볕에 한번 보아 분별할 수 없네
* 松林; 만송정 소나무 숲. 亭亭; 높이 솟은 무양. 白鬚咽毛節; 수염, 목, 몸, 관절이 하얗게 보이는 모습. 恐與; 아마도~겠지. 三春; 봄철 석 달(맹춘, 중춘, 계춘) 倒看; 거꾸로 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비취다. 즉, 석양.
제6경 율원취연(栗園炊煙)
밤나무 골짜기에 초가집 몇 채 있어
봄에는 이내 끼고 가을 되면 송이 열려
밥 짓는 저녁연기가 낙조(落照) 마냥 붉어져
遠郭園有栗(원곽원유율) 저 멀리 언덕의 밤나무 숲
江村正炊烟(강촌정취연) 강촌에 밥 짓는 연기 오르네
朝因洞霧凝(조인동무응) 아침이면 골짜기에 안개가 모여들고
莫逐峯嵐連(모축봉람련) 저녁에는 봉우리 따라 이내가 이어가네
依微春雨中(의미춘우중) 봄비 내리면 아련히 보이고
掩映秋霞邊(엄영추하변) 가을철 저녁엔 노을로 가려지네
佳名賁晋里(가명분진리) 이름도 아름다운 분 마을과 진 마을
美實供周筵(미실공주연) 잘 익은 열매로 때 맞춰 잔치에 올리네
老去脚自弱(노거각자약) 늙어가니 다리는 절로 약해져
煩君數升傳(번군수승전) 자네들 수고로 몇 되 전하네
* 율원; 마을 북쪽에 있는 밤나무 골짝이. 莫(모); 暮(저녁 무렵)와 같음. 희미하게 보임. 賁(분); 64卦의 하나(離下艮上의 象, 剛과 柔가 왕래 교착하며 무늬를 이르는 象), 晋(진); 64卦의 하나(坤下離象의 象, 즉 지상에 광명이 나타나는 象). 둘 다 지명 이름. 煩君; 자네를 번거롭게 하다.
제7경 수봉상풍(秀峰霜楓)
남산 끝 낭떠러지 푸름이 가득한데
찬 서리 수풀 덮어 단풍잎 드러나자
담쟁이 슥 기어올라 내 허벅지 감느니
江外聳一峯(강외용일봉) 강 건너 솟은 봉우리엔
巓厓合生楓(전애합생풍) 산에도 벼랑에도 단풍나무 어울렸네
薜荔索洛之(벽려삭락지) 담쟁이와 여주도 엉겨 붙어 있어
壁滿靑蒙蒙(벽만청몽몽) 벼랑 가득 푸름 일색이네
淸霜一夜飛(청상일야비) 하룻밤 찬 서리 내리니
爛漫堆新紅(란만퇴신홍) 불타듯 새로이 붉은 빛 들어 보이네
足以當春花(족이당춘화) 넉넉함이 봄날 꽃인 양
錦帳開空中(금장개공중) 하늘에 펼쳐진 비단 휘장 같다네
隨時助佳景(수시조가경) 철따라 아름다운 경치 펼쳐지니
亦見造化工(역견조화공) 이 역시 천지의 조화가 나타남 일세
* 秀峰; 남산. 薜荔(벽려); 담쟁이와 여주. 索洛(삭락); 새끼처럼 엉켜 붙은 모양(洛은 絡). 蒙蒙(몽몽); 빈틈없이 덮여진 모습.
제8경 도잔행인(道棧行人)
벼랑에 걸린 잔도(棧道) 선녀가 지나가면
심수(深水)엔 고기 뛰고 어부는 분주한데
땔감 진 늙은 나무꾼 임 제치고 쉰다네
道棧懸郭外(도잔현곽외) 저 건너 벼랑에 걸린 잔도에
歷歷數行人(력력수행인) 두어 사람 지나가는 것 보이네
不知遠近向(부지원근향) 가는 곳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但見往來頻(단견왕래빈) 왕래하는 사람 꾸준히 보이네
細雨或披蓑(세우혹피사) 가랑비 오면 도롱이 걸친 사람
斜陽時負薪(사양시부신) 석양엔 땔감 진 사람도 가네
路危無息肩(로위무식견) 가파른 길 숨 몰아쉬지 마소
江幽稀間津(강유희간진) 가물가물 벼랑길 쉴 만한 곳도 별로 없네
靜坐較閑忙(정좌교한망) 조용히 앉아 바쁘고 한가함 견주어보니
無營則安身(무영칙안신) 할 일 없는 사람 몸 편안한 줄 알겠네
*道棧/棧道; 벼랑에 가설된 비계 길. 歷歷; 분명히 보이다. 江幽; 강이 아래로 가물가물 보인다. 間津; 나루와 나루 사이.
제9경 남포홍교(南浦虹橋)
나루와 앞강 사이 일곱 색 섶다리가
길손은 잘 건너도 사공은 불안한가
무지개 살살 디디면 추락할 일 없나니
南浦隔前江(남포격전강) 남쪽 나루와 건너 앞 강 사이
臥波有長橋(와파유장교) 강물에 길게 누어있는 다리가 하나
每歲十月成(매세시월성) 해마다 시월이면 생기는데
晴虹不曾消(청홍불증소) 날 맑아도 무지개 그대로 서있네
行人未病涉(행인미병섭) 나그네는 걱정 없이 건너는데
舟子還停招(주자환정초) 뱃사공은 불러 세우며 오라 하네
截流勢甚壯(절유세심장) 흐르는 힘센 강물 막고 서 있으니
濟物功亦要(제물공역요) 물 건너는 데에도 힘이 들겠구나
我有題柱志(아유제주지) 나는 글 지을 마음을 품고
散步聊消遙(산보요소요) 먼 길을 즐기며 오고 가네
* 虹橋; 소나무를 베어 가설한 다리로써 시간이 흐르면 붉고 푸르고 갈색이 섞여서 무지개 같은 모습이다. 題柱; 글.
제10경 원봉령우(遠峯靈雨)
조용히 단비 맞은 원지산 새 풀들아
하늘은 풍진 씻어 성쇠(盛衰) 흔적 없애니
의원도 신명 날거다 민초 고통 덜으려
小草有遠志(소초유원지) 원지산에 있는 작은 풀
峯上生無數(봉상생무수) 봉우리 위로 무수히 자라는데
邦人爲取新(방인위취신) 사람들은 새 것만 뜯고
焚之除宿莽(분지제숙망) 묵은 풀은 불로 태우네
天心急洗痕(천심급세흔) 하늘은 곧 흔적을 씻어 버리려
知時零以雨(지시령이우) 때 따라 조용히 비를 내리네
蔥蒨漸看長(총천점간장) 푸른 잎이 우거져 자라는 모습 보며
悠然當我戶(유연당아호) 유유히 나는 집에 돌아오네
願爲良醫採(원위양의채) 바라 건데 진실한 의원이 뜯어가서
使斯民病愈(사사민병유) 백성의 병을 고쳐주면 좋으련만
* 遠志; 원지과의 다년생초, 뿌리는 강장제로 쓰임. 宿莽(숙망); 묵은 풀.
* 여기서 의원은 병을 고쳐주는 의사만을 뜻하지 않는다, 민초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모든 정치인, 사회 지도층, 공직자 등을 포함한다.(한상철 주)
제11경 반기수조(盤磯垂釣)
수변(水邊)에 너럭바위 낚시터 좋을시고
빈 줄을 드리우고 피리만 불어대다
시흥(詩興)에 잔뜩 취한 채 석양빛만 낚느니
立岩下磯盤(입암하기반) 형제바위 아래 물가의 바탕바위
盤處宜垂釣(반처의수조) 펑퍼짐한 곳 앉아 낚시하기 좋을시고
不問餌有無(불문이유무) 미끼야 있든 없든 간에
倚竿時一嘯(의간시일소) 낚시대 드리우고 휘파람 분다
水淸知魚樂(수청지어락) 물 맑아 고기 노는 것을 알 수 있고
絲輕任風棹(사경임풍도) 낚시 줄도 가벼이 바람 따라 흔들거리네
行吟自忘機(행음자망기) 시 읊조리면 낚시하는 일도 잊어버리고
沙汀明返照(사정명반조) 어느덧 모래 위에 석양이 비추네
此中興如何(차중흥여하) 이런 때 일어나는 취흥을 무어라 할까
回頭莞而笑(회두완이소) 고개 돌리며 빙그레 웃음을 짓네
* 盤磯; 형제바위 곁의 바탕바위. 倚竿(의간); 낚시대를 드리우고 그냥 두다.
제12경 적벽호가(赤壁浩歌)
강 건너 부용대(芙蓉臺)서 한 가락 부른 노래
동파는 바람 타고 적벽부(赤壁賦)로 화답하니
만물은 무상(無常)하다오 주연(酒宴) 마련 어떻소
赤壁陟江上(적벽척강상) 강 건너 솟아있는 적벽 위에서
臨風撥浩歌(림풍발호가) 바람 타고 큰 소리로 노래 부르네
歌聲滿天地(가성만천지) 노래 소리 천지를 가득 채우니
萬物於吾何(만물어오하) 만물이야 어찌되든 무슨 상관있으랴
一歌聲正長(일가성정장) 한 가락 노래 소리 길게 퍼지고
再歌心更多(재가심경다) 다시 한 번 부를 마음 거듭 일어나네
歌罷夢依然(가파몽의연) 노래는 끝나도 흥은 남아 있어서
羽衣飛相過(우의비상과) 신선의 옷자락이 스치고 지나간듯하네
何如壬戌秋(하여임술추) 동파가 보았던 적벽은 어떠했을까
北岸今東坡(북안금동파) 부용대가 바로 그 언덕 일세
* 赤壁; 부용대. 壬戌秋; 蘇東坡(參照 2 馬嚴怒濤의 詿)의「赤壁賦」즉 ‘壬成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遊於赤壁之下’를 생각하며 읊은 것임. 東坡는 宋의 元豊5年(1082) 陰 7월 16일 밝은 달을 보며 三國의 영웅 魏王 曹操와 吳王 孫權을 생각하고, 자신의 流人 신세를 비교하여 탄식하였다. 결국은 인생은 無常하다는 깨달음을 읊은 것이다. 蛇足이나, 그가 본 赤壁은 百萬 魏軍을 擊破한 古戰場은 아니었다.
제13경 강촌어화(江村漁火)
강촌에 깃든 어둠 점점이 찍힌 불빛
뭇별이 내려와서 수면 위를 비추자
혹여나 고기 놀랄까 연기 맞춰 배 돌려
暝色迷江村(명색미강촌) 강촌에 어둠이 깃드니
點點見漁火(점점견어화) 점점이 나타나는 고기잡이 불빛
明垂閃衆星(명수섬중성) 뭇별이 내려와 반짝이며 불 밝히는데
降照然群朶(강조연군타) 붉은 빛 무리지어 빛나는 구나
散燄或驚魚(산염혹경어) 날라 흩어지는 불꽃에 혹여 고기 놀랄까
飛烟時繞柁(비연시요타) 연기 날리면 때맞추어 방향 돌리네
取適政如此(취적정여차) 이 같이 바르게 잡고 나아가면
寓興無不可(우흥무불가) 흥에 빗대어 못할 일이 없겠지
靜觀到夜深(정관도야심) 조용히 바라보고 밤이 깊어지면
濠上誰知我(호상수지아) 물 위의 누가 나를 알아볼 것인가
* 江村; 하회마을. 降照(강조); 진홍빛으로 비취다. 群朶(군타); 무리지어 늘어서다.
제14경 도두횡주(渡頭橫舟)
외딴 곳 사람 적어 산천은 청량하나
온종일 나루터엔 빈 배만 비껴 앉고
배고픈 모래톱 위로 갈매기만 모이네
境僻人事少(경벽인사소) 외진 곳에 사람 적으니
江山更淸幽(강산경청유) 강산이 더욱 맑고 그윽하구나
無人來渡水(무인래도수) 찾아와 물 건너는 이 없는데
盡日橫派舟(진일횡파주) 온종일 물가에 배만 외로이 누어있네
空將濟川具(공장제천구) 빈 배는 건널 손 위해 갖추어져 있고
載沈還載浮(재심환재부) 태우면 잠길 듯 하곤 다시 떠오르네
風過臥檣鳥(풍과와장조) 바람 지나가면 돛에 새가 누워 쉬고
雨餘集沙鷗(우여집사구) 비 온 뒤 모래톱엔 갈매기 모여 드네
卬須我友涉(앙수아우섭) 나는 내 벗이 건너기를 기다리고
舟子莫浪愁(주자모랑수) 뱃사공은 저녁 풍랑을 걱정 하네
* 沙鷗; 모래톱에 있는 갈매기. 卬須(앙수); 내가~하기를 바라다.
제15경 수림락하(水林落霞)
산색(山色)은 여전하오 억새 핀 수림 고개
물가에 어리어라 새로 단 정자 편액
경개(景槪)도 주인 있으니 맑은 노을 날아와
水林山色古(수림산색고) 수림이 고개 산색은 예 그대로이고
今人幽想遐(금인유상하) 지금 사람은 아득히 옛 일을 생각하네
謙菴有遺躅(겸암유유촉) 겸암이 남긴 자취 밟아보니
骨構傳克家(골구전극가) 부친이 물린 일 잘도 이어 엮어가네
起亭五步內(기정오보내) 정자에서 나서서 다섯 발자국 이내에
新扁照水涯(신편조수애) 새로이 단 편액이 물가를 비추네
江山連有主(강산련유주) 강산은 이어져 주인이 있어
勝事堪成誇(승사감성과) 빼어난 경치를 자랑스럽게 일구었구나
何處更奇絶(하처경기절) 어느 곳이 더 아름다울 것인가
落日飛晴霞(락일비청하) 해지면 맑은 노을이 날아드네
* 겸암; 류운룡(柳雲龍)의 호. 류성룡(柳成龍)의 형으로 종가이다.
제16경 평사낙안(平沙落鴈)
기러기 누구 따라 여기에 왔다든고
금모래 의심나면 줄지어 날아가세
먹이만 조심한다면 그물 걱정 말게나
秋江浩空明(추강호공명) 가을 강은 넓고 하늘은 높고 밝은데
何來遵渚鴈(하래준저안) 무엇 따라 기러기는 이곳에 왔을까
陣疑沙壅水(진의사옹수) 무리는 모래톱 막힌 물을 의심하고
行如肉貫串(행여육관관) 한 줄에 꿰어진 듯 줄지어 날아가네
衡陽聲不斷(형양성불단) 형양땅 그리는 목소리 끊이지 않는데
瀟湘眼還慣(소상안환관) 소상강 찾는 길 잊지 않고 예대로 돌아가네
己飽江山興(기포강산흥) 강과 산의 흥을 넘치게 보았으니
豈謨稻梁豢(기모도량환) 내 어찌 나락과 수수로 모이를 줄까 보냐
如能戒口腹(여능계구복) 입과 배를 조심할 수만 있다면
網羅非汝患(망라비여환) 그물은 너의 걱정거리가 아니겠지
* 형양; 중국 호남성에 중남부에 있는 공업 및 수륙도시, 기러기가 추우면 여기서 지내고, 따뜻해지면 다시 북쪽 안문(雁門)으로 되돌아간다. 소상; 중국 호남성 동정호(洞庭湖)로 합류해 들어가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을 일컫는 말. 경관이 빼어나다. 환(豢); 기르다.
* 평사낙안; 많이 쓰이는 관용구로 강변의 가을 운치를 대표한다. 내려앉는 기러기는 갈대와 잘 어울린다. 수묵화의 화제(畵題)나, 詩語로 자주 인용한다. 여기서는 ‘하회’의 넓은 모래사장을 말한다. 위 한시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고 싶다.(한상철 주)
----
* 《古書硏究》 제37호(2019년)
* 졸저 『鳶飛魚躍』 정격 단시조집(9) 제2-1번 속명승보 8(52~68면). 2020. 7. 15 도서출판 수서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