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돌
―이철성(1970
호수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물속의 얼굴은 나의 얼굴 오랜 여행에 검게 그을린 나의 얼굴 피곤과 외로움 속에서 더욱 분명해진 나의 얼굴 그러나 사방에서 나타난 물고기들
얼굴을 쪼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호수를 치는 한 줄기 바람에 얼굴은 기우뚱 나였다가 내가 아니었다가 물 밑에 일렁이는 낯선 여자였다가 바람에 꺾여 떨어지는 한 나뭇잎이었다가 쫑긋 그걸 쪼아대는 한 마리 물고기였다가 이내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일렁이는 일렁이는 깊은 물 속의 돌 -중국, 주자이거우(九寨溝)
―이철성(1970~ )
흔히 이승에 와서 살아가는 일을 여행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일상을 벗어나는 그 여행은 떠나온 제 본래 모습을 발견해 보고픈 귀향의 심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한 여행자가 있습니다. '피곤과 외로움'의 삶을 되돌아보는 여행 자입니다. 호수를 만나 그 앞에 앉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행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관광이 아니지요. 호수에 비친 제 모습을 보려는 일이지요.
내 얼굴 그림자에 물고기들이 놀고 있습니다. 바람이 오면 물결에 기우뚱거리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나는 물고기이기도, 바람이기도 일렁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깊은 물속의 돌'이 살아와 일렁입니다.
( 시인 장석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