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 / 김종철 시창고
재봉 / 김종철 시창고
2004. 6. 4. 8:14
복사https://blog.naver.com/gulsame/40003026765
재봉 / 김종철
사시사철 눈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쉬고있다
마른가지의 난동의 빨간 열매가 수실로 뜨이는
눈 내린 이 겨울날
나무들은 신의 아내들이 짠 은빛의 털옷을 입고
저마다 깊은 내부의 겨울바다로 한 없이 잦아들고
아내가 뜨는 바늘귀의 고요의 가봉,
털실을 잣는 아내의 손은
천사에게 주문 받은 아이들의 전생애의 옷을 짜고 있다
셀레이는 신의 겨울,
그 길고 먼 복도를 지내나와
사시사철 눈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
아내가 소요하는 회잉의 고요안에
아직 풀지않은 올의 하늘을 안고
눈부신 장미의 알몸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눈뜨지 않고 지내며
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뢰가
지금 새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눈이 와서 나무들마저 의식의 옷을 입고
축복 받는 날
아이들이 지껄이는 미래의 낱말들이
살아서 부활하려는 직조의 방에 누워
내 동상의 귀는 영원한 꿈의 재단,
이 겨울날 조요로운 아내의 재봉일을 엿듣고 있다
1968년 한국일보 당선작
김종철 시인
1947년 부산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서울의 유서遺書」「오이도烏耳島」「오늘이 그날이다」「못에 관한 명상」「등신불等身佛시편」「어머니, 우리 어머니(형제 시집)」
영문 시집「THE FLOATING ISLAND」(EDITION PEPERKORN)가 있음.
제13회 정지용문학상, 제3회 편운문학상, 제6회 윤동주문학상, 제4회 남명문학상 등을 수상함.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 교수,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겸임 교수 역임.
현재 계간 『문학수첩』 발행인 겸 편집인, 한국시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