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평화광장 2006.11.29.수
해남윤씨(海南尹氏)
해남윤씨의 시조 윤존부(尹存富)는 고려 중엽 때의 인물이다. 해남을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은 12세조인 윤효정이 강진에서 해남으로 옮겨 가면서 부터다.
윤효정의 아들 윤구는 홍문관부교리를 지내고 호당에 들어간다. 윤구의 아들 윤의중은 해남윤씨를 중앙 무대에서 명가의 반열에 들게 한 인물이다. 그는 1581년 판서를 거쳐 좌찬성을 지냈다.
고산 윤선도는 윤의중의 손자다. 고산은 광해군 4년에 처음 관직에 나간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짧은 벼슬살이와 긴 유배, 그리고 귀향, 은둔의 연속이었다. 고산은 그보다 50년을 앞서 살았던 송강 정철과 함께 "우리문학의 쌍벽"을 이뤘다. 현재 전해지는 그의 시조는 75수에 이른다. 오우가는 산중신곡의 일부다.
타고난 시인이었던 고산은 병자호란 뒤 은둔지로 택한 보길도 앞 바다를 막아 농토를 만들고 가난한 백성들을 이주시키기도 했다.
고산의 증손 윤두서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자화상은 국보 240호로, 그 외의 그림은 모두 보물 481호로 지정됐다.
대표적 집성촌은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마을이다. 한 마을 70여 호가 모두 고산 윤선도의 후예로 5백여 년 동안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 이곳에 터를 잡은 인물은 윤선도의 고조인 윤효정이다. 해남에 사는 초계정씨의 딸에게 장가들어 그곳에서 살다가, 도강김씨의 땅이었던 이곳 연동 마을을 사들여 옮긴 것이다.
충남 당진군 합덕읍, 전남 해남군. 강진군. 신안군 일원과 장흥군 대덕면. 장평면, 완도군 약산면, 화순군 청풍면, 진도군 진도읍,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면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2000년 현재 55,627명이다. 주요파는 ▲대호군공파 ▲소윤공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