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오십견이네요. 운동으로 풀어야하고 온찜질도 효과 있습니다."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평소 알고 지내던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아픈 어깨를 진찰하였는데 그 분이 이렇게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운동의 필요성을 자주 듣기 때문에 주말에는 산에 다니면서 걷기운동을 하였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기도하고, 비교적 높다는 바위산, 등산로를 올라가기도 하면서 나름대로는 체력을 다진다고 생각하였는데
지난 여름부터 오른쪽 팔과 어깨 부위가 아파왔다. 어느 주말, 아주 험하기로 유명한 얌누스카 산에 가던 날 바위에 오르면서 남편이 팔을 잡아 주었는데 "뚝" 하는 소리가 나더니 더 아파오는 것이었다. 그 산은 얼마나 험하던지 마치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야누스 얼굴처럼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였다. 앞에서 보는 산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로키산의 전형적인 바위 모습으로 올라가는 길 양 쪽에는 들꽃들이 피어있고 침엽수 그늘을 따라 걷는 그 길은 천국처럼 아름답기만 하였다.
앞산 정상에 올라 이제는 뒤 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곳에 커다란 바위 서너개가 있었다. 하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지나다녔던 지 마치 비닐 장판처럼 매끌매끌하였고 구멍이 뚫어진 또 다른 바위를 지나자 그 산의 또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온통 길에는 산정상 바위에서 떨어져 쪼개어 진 작은 돌조각들이 덮혀있고 그 좁은 길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였다. 그 때부터 나의 몸은 긴장되어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걷는 것은 그래도 좀 나았다. 절벽을 붙잡고 다른 쪽으로 건너야하는 곳에 철사줄이 매달려있고 우리는 그 줄을 잡고 천길 낭떠러지가 내려다보이는 길을 지나야만 하였다.
"덜덜" 떨면서 겨우 지옥같은 그 길을 지나 이제는 한숨 놓으려는데 내려가는 길은 더 지옥이었다. 작은 돌조각들이 마치 미끄럼틀을 타듯이 아래로 쏟아내려졌다. 꼭대기에 앉아있으면 저절로 스키를 타고 내려가듯이 미끄러져 내려간다고 일행 중 누군가 "자갈 스키" 라고 하면서 앞장서서 내려가고
우리는 손을 잡고 앉아서 그대로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돌조각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걸었다. 등산을 한 것인 지, 등반을 한 것인 지 아니면 정말 스키를 탄 것인 지 정신이 몽롱하였다. 내려와서 산 위를 쳐다보니 아직도 꼭대기에서 돌조각들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돌아오던 그 주말, 나는 바로 레크레이션 쎈터에 가서 등록을 하였다. 2층에서 운동을 하고 따스한 물로 찜질도 하니 한결 팔이 부드러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사물함 열쇠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사무실에 찾아가서 잃어버린 상자를 찾아보았으나 나의 것은 없었다.
"참 이상도 하네. 그 열쇠는 번호를 알아야 사용하는 것인데 어디서 그 열쇠를 찾지?" 그러면서 또 며칠이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사용하는 사물함 쪽에 사람들이 많기에 다른 쪽으로 옮겨갔는데 그 곳 사물함에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이 사물함은 하루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느 날까지 물건을 빼지 않으면 우리가 강제적으로 열고 물건을 처리하겠습니다." 아, 누가 물건을 넣어놓고 귀찮아서 빼가지 않았나? 그 때 문득 혹시 저것이 내 열쇠인가?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번호대로 돌리니 "찰각" 소리가 나면서 열렸다.
아, 이일을 어쩌면 좋을까? 오십견에 더하여 거의 치매 초기 증세인 건망증까지.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었다. "사십 넘어봐라. 너도 살이 좀 붙을 것이다." 늘 삐쩍 말라 다니는 나에게 나이먹으면 살이 찐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오십이 넘어가는 요즈음 나는 배만 "뽈록" 나오는 뽈록배 아줌마 - 제 3의 성- 이 되어가고 있다.
어느 책에서 보던 할아버지들의 대화가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시간"이라고.
남의 일처럼 여겼던 오십견과 심한 건망증 그리고 뽈록배 이제 시간과 함께 남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의 일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여지. 그리고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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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십견, 건망증"
한번씩 겪고 가는 일상이라 생각해야죠.
아쉽기는 하지만 받아들이고 ㅎㅎ
키를 찾았으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