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6)
# 도로아미타불
훤칠한 선비, 주막에 들어가
비싼 고려청자 맡기고 보관증 받아
신세한탄만 하고 있던 주모
꽃단장 하고는 선비방으로…
석양이 새빨갛게 물든 합강 나루터에 막배가 닿자 대여섯
사람이 배에서 내려 뿔뿔이 흩어지는데, 갓을 눌러쓴 훤칠한
선비 한사람은 사방을 훑어 보더니 성큼성큼 주막으로 들어갔다.
치마끈을 바짝 올려 매, 엉덩짝 선이 그대로 드러난 젊은
주모가 은근슬쩍 눈웃음을 치며 선비를 맞았다.
객채 끝, 독방을 잡은 선비는 국밥에 막걸리 한 호리병을
마시고 주모를 부르더니 단봇짐을 풀어 비단보자기에 싼
상자를 꺼냈다.
“나는 닷새나 엿새쯤 여기 묵을 참인데 이것은 참으로 귀한
물건이니 잘 보관해 주시고 보관증을 써 주시오.”
주모가 부르자 안방에서 주모의 기둥서방이 지필묵을 들고 왔다.
“이것이 뭣이요?”
비단보자기를 풀자 조그만 오동나무 상자가 나오고 그 상자를 열고
한겹두겹, 한지를 일곱겹 벗겨내자 은은한 고려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이 나왔다.
“이거 얼마나 합니까요?”
“문전옥답 쉰 마지기로도 못 사는 물건이니 잘 보관해주시오.”
주모와 기둥서방이 보관증을 써 주고 오동나무 상자에 잘
넣은 고려청자를 안방으로 들고 왔다.
그러곤 다락문을 열고 깊숙이 넣어두고 자물통을 잠근 뒤
열쇠는 주모의 고쟁이끈에다 단단히 묶었다.
주모가 퍼질러 앉아 방구들이 꺼져라 한숨을 토한다.
“허구한날 새벽부터 밤늦도록 손님 시중 들어도 이렇게
꾀죄죄하게 살아가는데 저 선비는 무슨 복을 타고나
쉰마지기 문전옥답을 저렇게
대수롭지 않게 들고 다니나….”
듣고 있던 기둥서방이 곰방대를 털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고려청자를 빼앗아 버리면 될 거 아녀.”
“어떻게? 보관증을 써줬는데.”
“보관증을 훔쳐뿌러!
바지 안주머니에 넣더구먼. 뒷일은 내가 처리할터.”
눈이 반짝이던 주모가 엽전 한 움큼을 쥐어주자 기둥서방은
투전판으로 향하며 내일 아침에나 돌아오겠단다.
주모가 부엌에서 발가벗고 목간을 하고 명경을 펴놓고
얼굴엔 분을, 머리엔 동백기름을 바르고 장롱 속에서
노랑저고리 분홍치마를 꺼냈다.
“똑똑”
선비가 일어나 문을 여니 웬 아리따운 여인이
개다리소반에 술상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호롱불빛에 자세히 보니 주모다.
색기 띤 눈웃음을 흘리며 술 한잔을 따르고
“이건 겨우내 익은 오미자주요.
한잔 드시고 쇤네도 한잔 주시구려.”
“서방님은 어디 보내놓고?”
“서방은 무슨 서방, 먼 친척 오라버니지.
저잣거리 투전판에 가면 내일 해가 중천에 올라야 돌아오지요.”
오미자술잔이 왔다갔다 하다보니 한뼘두뼘 다가온 주모가
선비 곁에 바짝 달라붙었다.
주모가 빈잔을 상에 놓고 버선발로 술상을 밀어 호롱불을
껐다. 서른이 안된 건강한 선비와 농익은 주모가 불덩어리가 되어 껴안았다.
밑에 깔린 주모는 요분질을 해대고 교성을 토하면서도
손은 선비의 바지속 주머니를 더듬었다.
옷매무새를 고치며 선비방을 나온 주모는 부엌으로 들어가
남아 있는 불씨를 살려 고려청자 보관증을 불살라버렸다.
이튿 날부터 기둥서방이 부지런히 부잣집을 돌아다녔다.
삼일째 되는 날, 만석꾼 황부자가 고려청자를 사겠다고 해
주모는 열쇠를 따고 다락문을 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고려청자 보따리가 사라지고 없다.
선비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담판을 준비했다.
주모를 쓰러트릴 궁리 중에 제발로 들어오니 사정없이
주모 사타구니를 담금질하며 주모 고쟁이에 꿰찬 다락
열쇠를 준비해둔 찰흙덩어리에 찍어 본을 떴던 것이다.
이튿날 그 열쇠본을 들고 저잣거리 대장간에 가서 열쇠를
복제해 주모가 장보러 간 사이 안방에 들어가 다락문을 열고
가짜 고려청자 보따리를 꺼내 강물에 수장시켜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바지속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어두었던 보관증이 사라졌다.
선비는 주막을 뺏으려고 온 사기꾼이었다.
양쪽 모두 도로아미타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