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끝나면 오세요 – 금주일지 164(2023.2.24.)
지난 2020년은 광주 YMCA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광주YMCA 제41대 이사장을 지낸 나로서는 매우 뜻깊은 기념행사에 이모저모로 쓰임 받을 수 있어 다행이고 영광이다. 광주Y 역사편찬 위원회 위원으로서 <광주YMCA운동 100년사> 집필에 직접 참여하였고, 100주년 선언문 위원장으로서 선언문 작성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어감사하다. 특히 선언문 중 우리의 다짐 5가지 『우리는 한다』를 제안하고 문구를 완성한 것은 가슴 뛰는 일이다. 100년을 맞으면서 광주Y가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다』
하나, 우리는 모든 생명을 사랑한다.
하나, 우리는 기후위기에 앞장서서 대응한다.
하나, 우리는 사회적 약자와 늘 함께 한다.
하나, 우리는 서로 다름을 존중한다.
하나, 우리는 정의와 평화를 추구한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 읽어봐도 가슴 벅차고 뿌듯하다.
그리고 광주 y100주년 기념식을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각계각층의 국내와 인사들을 초청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증유의 코로나 상황은 해결될 기미조차 없이 계속 진행 중이었다.
광주ymca의 100주년 기념식은 어쩔 수 없이 소수의 대면과 다수의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광주y와 협약을 맺고 오래전부터 교류해 오고 있던 요코하마, 상하이를 비롯하여 마닐라, 몽골리아 등 외국 y 지도자들이 참가할 수 없어 많이 아쉬웠다. 특히 내가 직접 가서 숙박을 하며 교류 협력했던 요코하마와 상하이y 지도자들을 100주년 기념식장에서 만날 수 없게 된 것은 많이 아쉬웠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가 조금 주춤해지자 요코하마y에서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 방문한 것이다. 100주년이 3년이나 지난 후임에도 그때 축하하지 못한 마음을 아쉬워하여 늦게나마 직접 축하하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일본 사람 특유의 예절도 있겠지만 긴 시간동안 쌓아왔던 우정 때문이리라. 요코하마y 이사장님과 이사, 총주사(우리의 사무총장)를 비롯한 실무자 등 11명이나 되는 손님들이 광주 y를 찾아온 것이다.
오늘은 공식 환영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내가 요코하마에 갔을 때 융숭한 대접으로 숙식을 제공했던 코가 상을 비롯하여 오랜 인연을 이어온 히라노 상, 사타케 총주사, 아야 상 등은 특별한 마음으로 반가웠다.
나는 만찬 테이블에 코가 상, 히라노 상과 함께 자리하였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사타케 총주사가 우리 테이블을 찾아와 내가 2016년에 요코하마에 갔을 때 후지산 캠프장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휘호처럼 써 놓고 왔던 문구가 화제가 되었다. 후지산 캠프장은 원래 말 사육장이었는데 요코하마 ymca가 매입하여 국제 캠프장으로 건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캠프장을 만드는데 광주y와 이사님들도 후원한 바가 있어 더 애정이 가는 곳이다. 나 역시 방문하여 후원금을 보탠 바가 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는 중에 ” 말 먹이는 목장에서 사람 기르는 목장으로“라는 문구가 떠올라 붓펜을 들고 못쓰는 필체로 흔적을 남기고 온 바가 있다. 그런데 그 글귀가 지금도 후지산 캠프장에 그대로 게시되어 있단다. 사타케 총주사가 함께 묵었던 후지산의 밤 이야기를 어제런듯 실감나게 얘기했다. 내가 말을 받았다.
”후지산 캠프에서 보는 후지산 정상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지요! 다시 가보고 싶어요.“
”언제든지 오세요. 대환영입니다.“
그때 내게 홈스테이를 제공했던 코가 상이 거들었다.
”그런데 계양 상은 금주 중이라면서요? 우리집에 묵으실 땐 날마다 술을 드셨는데. 그것도 막걸리로 말이지요.“
”네, 그랬지요. 그때 코가 상께서는 갖가지 막걸리를 사 오셨지요. 사모님께서는 저녁마다 여러 종류의 안주를 준비해서 맛과 멋과 즐거움을 더해 주셨구요. 사모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잘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넘치고요.“
진심을 다해 감사드렸다. 그랬더니 코가 상이 대뜸 말한다.
”계양 상, 그럼 지금 오지 마시고 금주 끝나면 오세요.“
하자 옆에 있던 히라노 상이 말을 받는다.
”그래요, 계양 상이 술을 마실 수 있을 때 오시면 좋겠어요. 같이 한 잔 할 수 있어야 좋지 않겠어요?“
“알았어요. 금주 일정이 끝나면 요코하마 그것도 후지산 캠프장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지요.”
“네, 좋아요.”
합창을 하며 건배를 하였다.
그래. 나의 금주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가까이는 아내와 가족과 하하님들이 연결되어 있다.
뿐만 아니다. 주변에 다양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웃들도 직간접으로 나의 금주와 연관되어 있음을 느낀다.
오늘 밤엔 멀리 일본 요코하마 y의 친구들까지 나의 금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며 사뭇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이렇게 서로 얽힌 채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첫댓글 금주소식이 일본에까지 전파가 되었군요. 교수님의 금주해지를 기다리는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