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되어준 사람 2 – 5만 원과 편지 한 장
우중충한 하늘을 제치고 햇볕이 반짝 대지를 밝힌다.
그늘 찾아 불어오는 바람에 후텁함을 씻겨 낸다.
햇빛과 바람의 공존, 우리의 삶 또한 햇빛과 바람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왕 비출 햇빛이라면 추운 겨울 호호 시린 몸을 감싸줄 목화솜 같은 따스함으로, 이왕 불어줄 바람이라면 뙤약볕 아래 농부의 진땀을 식혀줄 시원한 바람으로 와 주길 바라는 마음을 나도 모르게 갖는다.
그분, 박 권사님은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일원이었다.
당시 연세가 70대 중반이었고 축산업을 하는 사업가였다. 150 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키, 체구를 지녔다. 온화한 성격에 화통하고 배포가 컸다. 아주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고 씩씩한 기운은 4, 50대 젊은이를 방불케 했다. 교회에선 믿음 좋은 그야말로 신실한 신앙인으로 헌신 봉사의 본보기가 되었다. 신앙의 기초가 튼튼하고 단단한 분이었다.
개인적으로 가까이 다가가 본 적은 없었지만 사리가 분명하고 누구와도 소통 공감력이 좋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한 주 두 주 보인 듯 안 보인 듯 그분이 앉았던 자리가 비어가더니 어느새 그 자리를 다른 교인이 채우고 있었다.
문득 불안감이 들었다. 그분과 같은 구역 식구를 붙잡고 그분의 근황을 여쭸다. 사업이 쫄딱 망했다고 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할 분이 아닌데, 놀랍고 염려가 됐다. 그렇다고 도울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그때 우리집은 남편의 실직과 환자가 된 나로 인해 곤궁한 상태인지라 옆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유야무야 시간이 흐르며 권사님에 대한 안타까움이 희미해져 갔다.
제아무리 큰일일지라도 남의 일은 강 건너 불이다. 내 소관 밖의 일일 수밖에 없다.
외부 활동이 소원해진 남편은 교회 생활을 열심히 했다. 신학 공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남편은 성가대 외에 전혀 소동아리가 없는 교회에 성경 통독반을 신설했다. 많은 교인이 참여하여 조용하던 주일 아침이 교인들로 들썩이며 활기가 돌았다. 서로 무관심했던 교우들 간에 소통하며 친밀감이 생겼다. 건조한 교회에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남편과 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기울였다. 거기에다 담임목사님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던 남편은 교인들 개개인의 사정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리 박 권사님 댁에 다녀옵시다.”라며 남편은 내게 흰 봉투를 건넸다. 1만 원짜리 지폐 5장과 손 편지가 들어 있었다. 본인의 힘든 상황에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까?
박 권사님의 널따란 집은 적막강산이었다. 몇 개월 만에 뵌 권사님은 기가 다해버린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저 묵묵히 서 있는 우리 부부 손을 잡고 권사님은 처절하게 울었다. 설핏 들은 경제 손실과 빚은 월급쟁이인 우리 경제 관념으로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감히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죽지 못해 목숨 부지하고 있다는 권사님께 드리려고 준비해 간 봉투를 무슨 말인가 얼버무리며 손에 쥐어드리고는 뺑소니치듯 권사님 댁을 나왔었다. 단돈 5만 원! 그리고 손 편지 한 통!
봉투가 얇아서 초라한 우리 손이 부끄러웠다. 차라리 건네지 말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민망함과 자책으로 일그러진 마음은 남편과 나의 입을 침묵하게 했다. 권사님의 충격적인 도산은 간혹 해일처럼 몰려와 가슴을 섬뜩하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시들해졌다.
권사님에 관한 별 소문도 소식도 없었다. 무소식이 곧 희소식이려니 하고 억지 위안도 삼았다.
그날도 여느 주일과 마찬가지로 남편과 나는 교회 통독반 준비를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대예배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동아리실에 들어가 차 준비, 책상 정리 등을 하고 있었다. 교인들이 한 분 두 분 모이기 시작했다. 얼추 통독 반원들이 다 모여 기도로 시작할 즈음, 살며시 문을 열고 작디작은 체구를 잔뜩 움츠리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박 권사님이었다.
조용하던 예배실이 놀람과 반색으로 들떴다. 권사님에게 예전의 밝고 씩씩한 모습이 비쳤다.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던 권사님이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기도와 염려로 다시 이 자리에 나올 수 있게 됐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이 자리를 빌려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얼마 전, 저는 사업이 몽땅 망했습니다. 도저히 살 수 없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죽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계양 장로님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위로금 5만 원과 직접 쓴 편지를 가지고요.”
그 순간 난 너무 창피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 권사님은 계속하여 말을 이어 나갔다.
“장로님 부부가 간 뒤에 봉투를 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5만 원과 편지는 억만금보다 컸습니다. 자식 같은 이 장로님 부부의 진심 어린 사랑이 눈물겨웠습니다.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힘을 냈습니다. 힘이 났습니다. 이계양 장로님 부부가 저를 살렸습니다. 제 생명을 건져냈습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이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더니 우리 부부를 향해 “이계양 장로님 강두희 권사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하며 우리를 가슴 열어 꼬옥 껴안았다.
권사님은 다시 사업을 재개하여 2년 전 영면에 들기까지 활동을 하셨다.
권사님은 자신에게 약속한 대로 살아 계신 동안 우리 부부를 자식처럼 아껴 주었다.
우리 부부를 소개할 때면 으레껏 생명의 은인이라고, 우리가 의인이라도 된 듯 부추겼다.
실낱같은 한 줄기 빛이 된 돈 5만 원과 편지 1장.
실낱같은 한 줄기 생명이 될 줄이야.
첫댓글 아침부터 눈물 줄줄 ㅠ
절망적인 어려움에 처했을때에
한줄기 희망이 되어주셨군요.
그 희망을 붙잡고 다시 일어선 박권사님도 훌륭하십니다.
두분도
훌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