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오면 한 번씩 꺼내 보는 나만의 이야기, 은밀한 비밀을 오늘 털어놓을까 한다.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가, 한반 동무 중에 익살꾸러기가 있었다. 나하고 노는 과가(장난꾸러기과) 같은 녀석이 하루는 내게 다가와서 은밀한 제의를 하는 게 아닌가. 당시 여름에는 뭐니뭐니해도 가장 찾는 먹거리는 아이스케끼였어. 나보고 그걸 실컷 먹을 수 있다잖아. 솔깃해진 나하고 그 녀석이 찾은 거는 옆반 동무였는데 형편이 무척 어려워서 겨울엔 찹살떡, 여름이면 아이스케끼 장사를 해서 집에 보탬을 주던 아이였다. 우리의 제의를 듣고선 아이스케끼 집에 소개해 주는 거는 어렵지 않은데 나와바리, 구역을 정하자고 했다. 뭐 선배가 시키는 일인데 당연히 따라야지 별 수 있간데. 당시 아이스케끼집은 구두닦이 통보다는 크고 단단하게 생긴 네모난 나무 상자를 매고 다니면서 장사를하는 중고등학생들과 어른들이 스무남가량 되는 판매원이 있었다. 그리고 가게에서는 빙설을 팔았다. 빙설을 요즈음은 빙수라하는데 노랗고 파란 색, 붉은 색으로 울긋불긋한 치장을 한 거라 먹음직했다. 요즈음은 팥을 많이 넣어주고 색깔도 은은하지만 당시에는 색깔이 빨주노초 파남보로 아주 선명했다. 물론 불량색소를 사용해서 그랬지만 아이스케끼에 비해선 값이 비싸서 욕심 내기에는 황공했지 뭐. 아이스케끼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달콤한 꾐에 빠진 녀석과 난 통을 메고선 가게를 나섰다. 아마 그 통 안에 삼사십 여개의 아이스케끼를 넣었지 않나 싶다. 통을 메고 나선 기분이 어땧느냐고? 나라를 구하려고 기다란 창을 메고서 전장터로 나선 잔다르크가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통이 사실 무거웠다. 그래서 대단한 신무기로 중무장한 특수여단 소속 전투병인양 더욱 의욕도 충만헸다. 생각해보라고 아이스케끼가 녹지 않게 보냉 기능을 장착한 아이스케끼통이 아닌가 말이다. 나와바리는 간단했다. 시장통은 자기 꺼랬다. 나도 두말하면 잔소리지 뭐. 시장통에는 우리 가게, 서점이 있으니 얼씬도 할 수 없었지. 나도 부모님 눈에 띄면 큰일 난다는 건 알았어. 그래서 우리 두 놈은 철도관사로 갔어. 당시 우리 읍네에 가장 반듯한 주택단지는 철도 공무원들의 거주지인 관사가 최고였어. 일제 시대에 지어진 철도관사는 한 사오십여호가 될까.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구획을 그은 단지에 짙은 회색 건물이 줄을 맞춰서 있었다. 한 개의 건물을 반으로 딱 잘라서 두 집이 사용했다. 세 칸짜리 방은 다다미였고 부엌하고 목욕탕까지 갖춘 현대식 주택이었다. 이십여 평 되는 마당에는 상추라든가 파를 심는 텃밭으로 사용했고 담장은 하나같이 측백나무가 빽빽히 늘어서서 훌륭했다. 왠지 그곳에 가면 잘 팔릴 거 같았서 그리로 간다니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이상도해라. 부촌에는 서로 갈려고 줄을 설 줄 알았다니까. 하긴 세상이란 험한 장터에서 살아가려면 눈치는 있어야하는데 나는 바보였어 바보. 가정집이 죽 늘어선 주택단지에서 아이스 케끼하고 아무리 소리를 높여서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날 부르는 사람 없었어. 생각해보게나. 한 여름, 방학 때했으니 지금의 더위는 아무 것도 아니지.
이글이글 땅을 달군 한낮에 반듯하게 줄지어 선 주택단지를 쏘댕기는 메리야스 샤쓰 하나 걸친 조그만 꼬마를. 따거운 햇살에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에 땀을 훔치느라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꽤재재한 모습이 바로 나였어. 팔아보겠다고 댕겨봤지만 하나도 팔지 못한 애달프고 고단한 그 어린 고학생을.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되는 이 가난한 나라에서 아이스케끼라도 팔아서 공부해보겠다는 어린아이의 불타는 향학열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감. 하나 팔면, 그땐 개시한다고 했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개시를 엄청 소중하게 생각했거든. 장사꾼이 하루 장사 개시하기 전에 그저께 산 물건을 바꿔달라거나 물러달라고 가게에 오면 큰일났어. 거지들도 개시하기 전에 동냥하러 가게에 들르지 않았다. 그게 바로 장사꾼의 예의라고 했다. 누가 가르쳐 주대? 장날이면 꼬박 들러 100원짜리 동전하나 구걸해가던 우리 서점 단골 거지한테. 나도 장사꾼 집 아이여서 알건 알았지.
하나라도 팔면 통을 열고 연기가 무럭무럭 나는 아이스케끼를 꺼내 먹을텐데. 야속하게도 누구 하나 이 어린 고학생을 불러주질 않았어. 인심 사나운 땅이였어 내 고향은. 아~ 생각난다. 저쯤에서 "아이스케끼~ 사려"하는 내 고함소릴 듣고서 누가 나와서 날 불렀는데 얼마나 반가웠을까. 덜그럭 소릴 내는 통을 메고 달려가는데 아뿔사 자전거를 타고 잽싸게 달려간 아이스케끼 어른 장사꾼이 팔아버린거야. 기동력이 좋은 기병대와 나같이 걸어다니는 보병이 상대가 될까. 참 분하더군. 어른이 아이 손님을 채가도 되는거야 뭐야. 어쩌겠나 떠난 버스가 돌아올까. 해가 저물때까지 난 한 개도 팔지 못헸어. 자꾸만 통을 열고선 이 더위에 아이스케끼가 녹지는 않을까 들여다보는 통에 뿌연 분이 나던 아이스케끼는 살살 녹아들기 시작했어. 그때 나를 꼬득여 장사길에 나서게 만든 녀석이 나타났어. 그놈은 나보다 멀찌기 떨어진 동네로 간다했거든. 그래도 그 녀석은 대여섯 개를 팔았다고 자랑하데. 그 놈도 풀이 죽었는데 날 보더니 용기가 생겼나봐.
두 녀석이 통을 깔고선 나한테 마수꺼리(개시)를 해 주겠다네. 참 고마운 우정이 아니겠니. 나도 이제 하나를 팔았단 말이야. 당장 통 안에서 또 하나를 꺼내서 내 입으로 집어 넣었지 뭐. 얼마나 먹고 싶었던 케끼였나 말이야. 그날 내가 먹었던 달디단 아이스케끼 맛을 어찌 잊을손가. 나도 그 녀석 껄 하나 팔아줘야 공평한 거 아냐. 흐흐흐 우린 아주 우정이 넘치는 좋은 아이들이었어.
맙소사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건 꼭 그 끝이 좋질 않았어. 사이 좋게 아이스케끼를 팔아주고 사주는데 그녀석 뒷멀미를 집어 댕기는 사람이 있었어. 나도 알아. 걔네 할머니야. 하필 그녀석 집이 철도관사였는데 거기에서 죽을 치고 서로 팔아주고 사주고 있었으니 이웃이 일러바쳤을 거 아니야. 그녀석은 질질 끌려가고 나도 황급하게 도망쳤어. 지는 해를 등에 지고서 터덜터덜 걷는 내 그림자가 왜 그리 길었는지 몰라. 종일토록 부질없이 걸어다녔으니 오죽 다리가 아팠을까. 내가 처음으로 인생이란 이렇게 애달프고 씁쓸하다는 걸 알았다니까 그날에.
아이스케끼 집에 넘기니까 사장님 표정이 좋질 않았어. 네 개나 팔았으니까 돈을 달라는 거야. 있을 턱이 있나. 두 놈이 주고받거니하며 사먹었으니. 아마 마지막 팔았던 게 그녀석이었을 거야. 그랬으니 아이스케끼 값 5원이었던가 그돈은 그 녀석 주머니에 있을건데. 그리고 그날 내가 가져간 아이스케끼가 다 녹아버렸으니 반품을 받아 줄 수 없다는거야. 서른 개인가 몽땅 물려주게 된거야. 우리집에 뒷멀미를 잡히고 끌려가서 돈을 받아내더군. 엄마한테 내가 돼지게 맞을 일만 남았는데 할매가 잽싸게 날 빼돌려서 야단치는 거야. 눈물이 쏙빠지게. 순전히 구라야. 나도 알아 우리 엄마 진을 빼려고 할매가 미리 야단치는 척 선수친 거지 뭐.
뱃가죽이 등어리에 붙었는데도 난 밥이 들어가질 않더군. 아마 인생이 이리도 쓰디쓴 거라고 체험해서 허탈했던가 봐. 잠자리에 들었는데 늦게 들어오신 아버지는 허허....하곤 웃고말았어. 당신을 따라 장사꾼으로 나서기엔 너무 한심한 게 외려 좋았던가봐. 그저 고시나 하다못해 읍사무소 공무원이라도 하기를 바라셨겠지. 밥도 먹질 못한다고 장손 걱정을 하는 할매한테 그러대 "저놈아가 더우 먹어서 그런거지 걱정 마소. 아이스케끼 서로 팔아주고 사주느라 헛돈 쓴 놈 밥은 무슨 밥이요" 야단치시는 건가 왜 그리 웃어쌓는지 모르겠더라고. 내 장사꾼 흉내는 비참했다. 진짜 고학생한테 물어봤더니 시장통에 돌아다니면 얼쭈 다 판다고 했다. 잘 된거지. 나까지 아이스케끼 판다고 돌아다니면 진짜로 돈이 궁한 고학생을 힘겹게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이야기 나온김에 덧붙일 게. 여름에는 뭐니뭐니해도 빙수라고 얼음물이 최고였다. 자전거 뒷자리에 둥그런 플라스틱 통을 달고 다니는 얼음물이 단연 최고였다 암매. 안이 들여다보이는 통에는 커다란 반이나 자른 수박통이 둥둥 떠있었다. 복숭아라든가 몇가지 과일도 눈에 보였는데 물론 얼음이 커다란 걸로 둥둥 떠있었고말고. 이걸 통하고 연결된 호스로 컵에 따뤄주면 그맛이 얼마나 달사하고 시린지 상상만해도 온 몸이 떨린다. 설탕을 넣었을까? 사카린인지 정체불명의 단 거를 넣고 수박이 우려낸 물까지 뒤섞인 얼음물을 사이다에 비할까.세월이 좋아진 오늘에도 그만큼 시원하고 달싸했던 얼음물은 없을거야. 얼음하니 당시에 얼음이 얼마나 귀했는데. 아이스케끼집이든가 얼음집에 얼음을 배달시키면 톱으로 썰어낸 얼음 토막을 자전거 뒤에 싣고선 쏜살같이 배달해줬거든. 수박 냉채를 한다든가 미숫가루 타먹을 때 유용하게 사용했을거야. 우리는 생긴 거는 냉장고 같이 생겼는데 전기줄이 없었어. 근사하게 생긴 냉장고에 얼음을 넣어두면 그게 바로 냉장고지뭐야. 내 대학교 3학년 때까지 그걸 썼는데 그것도 부자집에나 해당했지. 여름엔 수돗가에 물을 받아놓고선 수박을 둥둥 띄우거나 막걸리 주전자를 넣어두곤 했어.
어~허 옛날이네 그때가. 지금 생각으로 따지면 무척 불편했을 거라고. 하지만 당시엔 그것도 참 행복했어. 여름 밤이면 으례 낙동강으로 나갔어. 백사장에 옷을 벗어두고 물에 들어가보라고. 친구들 시골집에 가보면 더 아슬아슬했어. 마을 뒷곁에 흐르는 개울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밤이면 다 나왔다고. 묵시적으로 개울 상류쯤엔 처녀들하고 아줌씨들이, 아랫쪽으로는 총각들이 아저씨들하고 목욕을 했거든. 우린 살금살금 그 경계를 침범하다간 걸려서 누나들한테 죽도록 욕얻어먹었단 말이야. 보긴 뭘봐. 그믐날 밤에 보이긴 뭐가 보였을까. 그 무덥던 여름, 밤어스름에 개울에 몸 담그는 재미마저 없었다면 길고긴 여름날 쏟아지는 땡볕을 온몸으로 쐬면서 콩밭에서 농부들은 김매기를 어찌했을까?
들리는가? 아니 보이는가? 막 동구 밖 콩밭에서 김매고 돌아오는 아제 손에 잡힌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얼룩배기 울 황소가!!! 그 넘어로 장엄하게 노을이 지는 풍경을. 세상은 지나고 보면 다 이리 아름다운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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