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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14편의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고전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저자의 관점에서 정리하여 서술한 일종의 ‘다시 쓰기(re-write)’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방식은 단순히 텍스트의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하는 것이 아닌, 저자가 서 있는 현실로부터 다양한 글감들을 끌어다 활용하고 있다.글의 내용도 인간의 ‘영혼’의 문제를 비롯해서 현실 ‘정치’와 ‘윤리’적 삶의 문제, 그리고 ‘좋은 삶’에 대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영혼과 정치와 윤리와 좋은 삶>이라고 정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플라톤은 그리스의 철학자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배심원들의 투표로 인해 사형을 당하자,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한때 방랑을 떠나기도 한다. 그는 완벽한 인간으로서의 ‘철인’이 다스리는 정치를 내세웠는데, 이러한 ‘철인정치’의 바탕에는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내기도 한다. 즉 다수의 ‘우매한 대중’들로 인한 민주정이 지닌 문제점들을 직시하면서, 한 사람의 현명한 철인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더 좋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근거한다. 그의 사상들이 '독재'를 옹호한다는 후대에 혹독한 비판을 받게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저서들은 주로 소크라테스와 다른 사람들이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가운데 <국가>는 플라톤의 대표적 저작으로 꼽히는 책으로, 그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된다. 특히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국가였던 당시 그리스의 상황을 전제해야만 한다.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던 도시국가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21세기 현대의 문제로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플라톤 사상의 잘못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민주정에 대한 혐오와 일종의 독재로 해석될 수 있는 ‘철인정치’의 대한 애착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엄격한 계급의 구분을 강조하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소규모의 도시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아마도 저자는 <국가>를 읽으면서, 그 주제나 내용들을 취해 지금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고자 이 책을 기획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 결과 자신의 감상을 모두 ‘14편의 에세이’로 풀어내었고, 때로는 텍스트의 내용들에 침잠하여 때로는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서술하였다고 하겠다. 특히 저자가 바라보는 현실의 문제들을 전제하면서, 자신이 읽은 책이나 보았던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내용을 채우고 있다. 예컨대 ‘동굴의 비유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항목에서는 새로운 트렌드로 무장한 젊은 세대들로 분주한 ‘홍대’에서 나이 든 자신이 새삼 ‘꼰대’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밖에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이 자유분방한 필치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의 내용들이 얼마나 <국가>의 내용이나 주제들과 연관이 되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저자가 생각하기에 자신을 둘러싼 현실들과 연관시켜, 얼마든지 플라톤과 그의 사상들을 끌어와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애주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등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로부터 ‘스카이캐슬’로 상징되는 현대판 계급으로 치환되는 민감한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저자의 시각으로 소개되고 있다. 때로는 그리스 당대의 문제를 배경으로 삼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상황들도 글감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아직 플라톤의 <국가>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저자의 이러한 글쓰기 방식이 다소 어렵게 다가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들을 위해 텍스트인 <국가>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 앞부분에 간단하게 제시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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