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코스
* 박화성문학기념관.남농기념관.해양유물전시관.향토문화관 → 정다산유적지.운림산방→고산윤선도 유적지
* 옥공예전시관.행남사(목포)→청자도요지(강진)→분청사기요지(무안)
* 홍도→유달산.갓바위→월출산→땅끝→회동
* 조각공원.란공원→향토문화관→해양유물전시관→농업박물관
* 노적봉.고하도.이충무공유적지→왕인박사유적지→정다산유적→청자도요지→대둔사
산이 아름다운 흑석산의 이모저모..
흑석산의 유래 및 볼거리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흑석산은 해발 650m의 산으로서 산세가 험한 악산으로 유명하며 곳곳에 분포된 철쭉 군락지와 소사군락지가 유명하다. 흑석산 이름은 항상 바위가 검은빛을 낸다고 해서 흑석산이며 은굴, 은샘, 용목골, 치마바위, 장군바위 등 많은 전설을 가진 바위들이 등산로 옆에 있어서 등산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곳이다. 일제시대에 은을 발굴했다는 은굴도 있는데 6.25때 공비 소탕작전 때 중간을 폐쇄시켜서 더 들어 갈수는 없지만 이중, 삼중으로 굴이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약 100미터 정도 들어갈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벽에서 반짝이는 은가루를 볼 수 있다.
흑석산 가는 길
☞ 광주→강진성전→해남계곡→가학산자연휴양림(소요시간 1시간 30분)
☞ 목포→독천→미암→가학산자연휴양림 (소요시간 40분)
등산코스
1코스 : 휴양림→가리재→봉화대→전망대→바람재→깃대봉(2시간)
2코스 : 휴양림→작은애끼→큰애끼→은굴→용샘→시우바우→깃대봉 (정상까지 1시간30분)
3코스 : 깃대봉(정상)→흑석산→(능선타고 계속가기)→기도원 →태인 (하산까지 3시간30분)
<대둔사 (대흥사)>
전남 해남읍에서 동남쪽으로 12km쯤 떨어진 두륜산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대둔사(구 대흥사)는 514년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며, 그후 수 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임진왜란이나 6.25 때도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오래된 건물이 없는 이유는 임진왜란 뒤 대대적으로 절을 다시 지었기 때문이다. 선조 37년(1604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마지막 설법을 한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처영스님에게 '재난이 미치지 않고 오래도록 더렵혀지지 않을 곳'이라며 해남 대둔사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두라고 부탁했다 한다. 그후로 절은 사세가 번창하고 그의 법을 받아 근세에 이르기까지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하며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자리잡았다. 일제 때까지는 주로 대둔사라 불리다가 최근에는 대둔사라는 이름을 주로 쓰고 있다.
10리나 되는 울울창창한 숲길과 계곡물을 따라 가면 피안교, 일주문을 지나 부도밭을 만난다. 서산대사를 비롯, 대둔사에서 배출한 역대 스님들의 부도와 부도비가 가지런하다.
해탈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대둔사 가람이 펼쳐지는데 전체 경역이 넷으로 나뉘어 각 구역이 돌담으로 둘러 있다. 두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금당천)을 경계로 북원과 남원으로 나뉘고, 다시 남원 뒤편으로 뚝 떨어져 서산대사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 입장료 >
구 분 어 른 청소년,군인 어린이
개 인 1,200원 1,000원 800원
단 체 1,200원 1,000원 500원
<낙안읍성민속마을>
* 위치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서,남내리
* 관리청 : 낙안읍성민속마을 관리사무소 (061)754-6632
* 개요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때 파지성, 고려때 낙안군 고을터며, 조선시대 성과 동헌, 객사, 임경업장군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 302호에 지정되었다. 조선태조 6년(1397)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에 나섰고 300년 후 인조 4년(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했다. 다른 지역 성과는 달리 넓은 평야 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m, 너비 3~4m, 성곽 총길이가 1410m로 동내, 남내, 서내 등 4만 1천 평에 달하는 3개 마을 생활근거지를 감싸 안은 듯 네모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가까운 지금도 끊긴 데가 없고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순천시가에서 서쪽 22km 거리의 읍성민속마을은 6만 8천여 평으로 초가는 초라한 느낌마저 들지만,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치며, 남부지방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 토방, 지붕, 섬돌 위의 장독과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돌담은 모나지도, 높지도 않고 담장이와 호박넝쿨이 어우러져 고향을 연상케 한다. 마을주변 음식점거리도 옛정취를 자아낸다. 주변에 조계산 도립공원, 송광사, 선암사, 제석산, 동화사, 주암호 고인돌공원 등의 명소가 있다.
* 음식점 거리
- 잔칫집 분위기가 나게 평상과 큰 차일이 쳐져 있다.
- 보리밥, 추어탕, 감자탕, 표고무침, 빈대떡, 녹두전, 도토리묵, 더덕주, 동동주 등 모두 이 고장에서 나는 무공해 농산물로 만든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 교통
1) 순천에서 낙안행 시내버스 /1시간 간격(05:50~21:10)/30분 소요
2) 벌교에서 낙안행 군내버스 /20분 간격(06:00~21:00)/15분 소요
3) 벌교까지 가는 교통편
o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벌교행고속버스 /2회(09:20-16:00) 운행/4시간 30분 소요)
o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녹동행 직행버스, 벌교 하차/20분 간격/1시간 30분 소요)
o 여수시외버스공용정류장에서 녹동행 직행버스,벌교하차
/수시운행/1시간 30분 소요)
4) 승주IC - 857번 지방도로 - 3.6km - 죽학리 - 857번 지방도로
- 승평호반 - 14km - 낙안면 소재지
* 현지숙박
- 낙안읍성내에 민박 가능(약 17가구)
- 민속관광농원 (061)755-6644
낙안민속마을 근처 목촌리에 있다. 읍성 북쪽 오금재 고개옆 솔숲과 감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다. 단감나무, 매실나무가 자라고 유기농재배 각종 채소, 양념류를 심은 밭이 넓다(방갈로 6동으로 취사가 가능한 콘도형이다).
▲로얄 관광호텔 (061-741-7000)
▲금강 관광호텔 (061-752-8301)
안내문의 : 낙안읍성민속마을 관리사무소 (061)754-6632
< 고인돌 공원 >
주암호 주변인 송광면에는 고인돌 공원이 있다. 주암댐 수몰지역서 발굴한 수백기의 고인돌을 모아 놓은 곳이다. 전국 최초의 고인돌 공원인 셈이다.
이 고인돌 공원에는 지석묘의 하부에 있던 석실들도 함께 복원되어 있다.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대사를 배우는 소중한 배움터이기도 하다. 가족나들이 장소로도 제격, 한 순천시내 일원에도 빠뜨리지 않고 둘러볼 명소들이 많이 있다.
시청의 동편엔 풍수지리학적으로 순천시가 어둡고 침침한 지형이라 하여 이 어둠을 밝혀주기 위해 만든 장명 석등이 있다. 최 상징인 팔마비가 중심가 교보빌딩 정면에 느티나무와 함께 서 있고 김준선길 본가의 홈매도 지조를 상징하듯 청청하다. 순천시민들의 산책인 죽도봉 공원에는 팔마탑과 연자루가 있다. 신우대와 동백이 우거진 숲길이 아늑하며 강남정에서 내려석이라는 청백리의 송덕을 기리는 비로 순천시민의 정신적다보는 시가지의 모습도 한폭의 그림이다.
<해남,진도(땅끝마을)>
이곳은
우리나라 맨끝의 땅
갈두리 사자봉 땅끝에 서서
길손이여
토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땅끝마을은 갈두리 혹은 칡머리라고 불리었는데 이곳에 칡이 많아 그리 불리었다는 설과 사자봉의 형제가 칡과 닮았다하여 칡머리라 이름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의 유래가 아니라 이곳의 빼어난 풍광이다.
광주에서 두 시간거리, 해남읍에서 약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이 땅끝마을은 해발 1백22m의 사자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눈앞에 한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 다도해의 절경, 맑은 날이면 멀리 제주의 한라산까지 어슴푸레 보이는 전망은 가히 일품이다. 또 인근에는 울창한 송림과 고운 모래, 맑은 물로 유명한 송호리 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다. 가까운 바다에서는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다.
현재 이곳은 국민관광단지로 조성되면서 옛 봉화를 재현한 봉화대와 전망대를 갖춰 보는 즐거움을 두 배로 하고 있다.
가히 토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산초당>
다산은 한때 천주교에 매혹되어 관계를 가진적이 있으나 진작 손을 떼어서 천주교와 관계 없다는 자초지종을 고백하여 국왕으로부터 진실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집권층인 벽파가 시파를 탄압하려는 정치적 음모에 휩슬려 무죄인 다산은 유배를 떠나야만 했다.
다산초당은 11년간 걸쳐서 다산학의 산실. <주역사전>은 1808년에 탈고 <상례사전>은 읍 거 시적에 기고 하였으나 초당으로 옮긴 직후 1811년에 완성 <시경>(1810),<춘추>(1812), <논어>(1813),<맹자>(1814) <대학>(1814),<중용>(1814),<약경>(1816)
<경세유표> (1817),<목민심서>(1818), 차례로 저술하였다. 1818년 귀양이 풀리자 고향 돌아와서 흠흠심서, 상서고훈 등을 저술하여 그의 6경4서와 1표2서 완결하였다
< 청자 도요지 >
- 강진청자, 그 혼의 빛깔-
강진읍에서 약 18km, 승용차로 25분쯤 가면 대구면이 나온다. 고려초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약4백여년간 고려청자를 굽던 곳이다. 고려청자는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깊고 그윽한 비취색 빛깔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아름답다. 그 고려청자가 강진의 도요지가 없었더라면 결코 탄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어쨌든 이곳 대구면 사당리 용운리 계율리 수돌리 일대 18만여평에는 180기의 가마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1963년 사적 제68호로 지정.
이곳 강진의 도요지는 고려시대 내내 청자가 만들어진 점이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고려청자 제작기술의 발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외형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장인의 얼과 혼, 즉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정신은 오늘로 이어져 강진 사람들의 정신속에 그대로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가족 겨울 여행테마를 생각하다가 이 코스를 잡았는데
혹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립니다.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