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벌써 깊숙한 봄의 한가운데에 와 있습니다.
토요일엔 한사코 가까운 교외로 벗꽃놀이를 가자고 졸라대는 가족들을 달래놓고 내심 이번 주말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습니다. 제발 이번주 토요일엔 별다른 일이 없어야 하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생선회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냥 좀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가 흠모하는 맛을 찿아내기 위해 수고스러움과 번잡함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집에서 조리도 하는, 일종의 마니아(?)인데요 그러다보니 당연 저의 집사람은 질색이지요. 집안에서 피할 수 없는 생선비린내를 차치하고래도 뭐 조금 할려고 하면 제가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늘어 놓는 버릇이 있다보니 우리 마나님께서는 맛있는 요리를 해다 바쳐도 그리 반기는 편이 아닙니다. 취미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조심하고 또 조심하건만 버릇이 고처지지 않는 천성이다 보니 어쩔수 없는가 봅니다.ㅎㅎㅎ.
보통 요즈음 외식산업이 발달하여 스시나 사시미로 불리는 일식(日式)의 생선회가 주종을 이루지만 특히 저는 옛부터 즐겨오던 고유한 전통과 토속의 맛이 배어 있는 생선회를 즐깁니다. 어찌보면 생선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계절음식이자 각 지방의 토속적인 맛이 녹아있는 향토음식이기도 하지요.
벼익는 가을철이면 몸에 기름이 오를때로 올라있는 고소한 풍미를 맘껏 자랑하는 집나간 며느리도 전어 맛을 못잊어 돌아 온다는 가을 전어회의 맛은 한국사람이면 어느 누구나 공감하는 맛이고,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면 요즘엔 기술이 좋아진 탓에 예전엔 보기 힘들던 방어나 고등어 등의 등푸른 생선들이 멀리 제주도에서 활어상태로 서울로 많은 양이 입성을 하는데 그 신선한 맛과 함께 겨울철 부족하기 쉬운 각종 영양을 섭취하여 추운 겨울을 건강하게 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한 나른한 봄날, 속절없이 쏟아지는 춘곤증으로 온몸이 무기력해지는 송화가루 날리는 오월이면 강의 수면에 떨어지는 송화가루를 받아 먹으며 임진강의 불어난 물살을 타고 오르는 황복어를 잡아 백지장 같이 얇게 저민 쫀득쫀득한 육질이 입안에서 녹아 내리는 황복어회의 황홀한 맛은 가히 지금까지 제가 먹어본 음식중의 백미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워낙 비싸고 귀한 음식이다 보니 미식가를 자처하는 아우라도 딱 한번밖에 먹어보질 못했지만 그 맛의 기억은 뇌리에 생생히 각인되어 있지요.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입안에서 신비로운 송화(松花)의 향이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바로 6월로 들어 서면서….시골에선 한창 모내기로 눈코뜰새 바쁠 농번기에 김포나루나 강화도 앞바다에서 올라오는 벤뎅이 회… 전어와 마찬가지로 크기가 작은 잡어이다보니 뼈채로 썰어 먹는 고소하고 찰진 담백한 별미의 벤뎅이회에 막걸리 한사발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지요. 말그대로 워낙 속알딱지가 좁아서 급하고 융통성 없는 성질 탓에 어부의 손에 잡히자 마자 죽어버려 활어 상태로 유통이 불가능하니, 오뉴월 제철이 돌아오면 직접 맛을 보려는 전국에서 바다물때에 맞추어 몰려든 미식가들이 서해의 김포 대명항이나, 인천의 연안부두의 전문 식당에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여름철 장마가 시작되면서 날씨가 눅눅해지고 제법 무더워지면 아무래도 날로 먹는 음식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선회음식은 멀리하게 되는데 그렇다구해서 회좋아 하는 사람들이 그냥 않아서 굶고 있을 수만는 없는 법이지요. 7~8월이면 텃밭에 심어논 제법 딱딱하게 약이오른 싱싱한 풋고추와 햇마늘을 겯들여 막된장에 찍어 들깻잎에 싸먹는 병어회의 쫄깃하면서도 두툼한 육질맛도 일품이지만 무더위에 지친 몸에 원기를 불어 넣어주는 영양제와 다름이 없지요.
가을 초입, 벼 이삭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벼꽃이 피는 그야말로 한창 곡화차 만드는 시기에 서해의 안흥항에는 삼치가 지천으로 올라옵니다. 냉동실에 살짝 얼려 놓았다 사각사각 두껍게 베어 초장에 찍어먹는 별미… 보통 삼치는 벤뎅이와 마찬가지로 성질이 너무 급해서 역시 활어로는 곤란하고 선어형태의 회로 먹거나 연탄불에 구우면 입안에 철석 안기는 감칠맛이 일품입니다.
요즈음 같이 봄빛이 완연한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은 숭어회가 그 맛의 절정에 다다릅니다.. 숭어는 보통 춥고 긴 겨울동안 서해안의 개뻘속 유기물등 미생물등을 먹고 자라는데 날이 풀리고 수온이 올라가면서 영양분 섭취도 늘고 활동이 왕성하니 이맘때쯤이면 제법 고기의 근육이 탄력이 생기고 단맛이 깊어집니다.. 특히 영산강의 하구나 서해안의 대천, 서산지방의 개뻘은 찰지고 기름져 알배기 숭어들이 산란을 하고 새끼들이 자라기 좋은 곳이고 그래서 그곳에서 잡히는 숭어가 깊은 맛을 잃지 않는 당연한 이유입니다.
또한 바다고기 중에서 철가리를 가장 심하게하는 물고기중의 하나가 숭어입니다.
가을에서부터 서서히 맛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겨울을 지나 마침내 복사꽃이 피는 사월, 기름끼가 숭어의 눈에까지 잔뜩끼어 눈꺼플을 덮어 눈이 어둡게 되는데 이때가 고소하고 달디단 숭어회 맛의 절정을 이룹니다. 옛날부터 오죽하면 ”봄숭어가 앉았던 자리 뻘만 훔쳐 먹어도 달다”하였으며 숭어가 주로 서식하는 갯뻘을 특별히 감탕(甘湯)이라 했지요.. 그렇게도 맛이 있던 숭어가 초여름 보리이삭이 패일 때 쯤이면 육질이 퍽퍽해지기 시작하고 맛이 없는 그야말로 “개도 먹지 않는 여름숭어”가 되어버리지요.
길가에 봄빛에 놀란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것을 본 아우라가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지요. 꽃이 져버린 후에 후회를 않으려면 우선 필수적으로 무서운 마눌님한테 요리허가를 득해야 합니다.(보통 요식행위에 불과하나 허가 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겁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ㅎㅎㅎ.)
아침식사을 후딱 해치우고 급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며 득달같이 수산시장에 갔습니다. 내마음을 어찌알았는지 시장초입부터 숭어를 판다고 대문짝만하게 써붙여 놓았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런데,
헉!!! 우리 아들놈 말마따나 “헉”입니다.ㅎㅎㅎ
팔뚝보다 큰 그야말로 자연산 숭어 한마리가 단돈 이천원이라니요....
왜이리 값이 싼가 했더니. 산지에서 잡아온 놈들을 많은 양을 대형 수조에 넣어 파는데 바다에서 갓잡아온 놈이다 보니 적응이 안되어 생존기간이 짧은 데다 시장에 일시에 유입되는 수량이 많아서 쌀 수 밖에.. 하여간 보통 횡재를 한것이 아닙니다만 한편으로 맛 있는 숭어가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생각하니 일면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요..
필수적으로 즉시 현장에서 혈류량이 가장 많은 아가미 부위를 칼로 절단해서 즉시 피를 제거합니다. 죽은 다음 집에 와서 뒤늦게 피를 빼면 피가 제대로 빠지지 않아 비린내와 특히 숭어의 경우는 흙 냄새같은 게 나게 마련인데 회맛에 좋지않은 영향을 주게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혈기왕성할때 이렇게 피을 제거 하는 것이지요
한사코 살생을 하기 싫으니 그냥 가져가라는 가게의 사장님한테 사정 좀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비늘을 벗기고 회를 칩니다
제가 쓰는 회칼들입니다.. 살기가 흐르죠? ㅋㅋㅋ
자사호가 차의 맛을 좋게 하듯, 최상의 회맛을 살려내기 위해선 좋은 칼이 필수입니다.
심지어 “회맛은 칼맛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보통 생선회요리가 발달한 일본의 횟칼이 유명한데요. 우리나라의 독도와 인접한 시네마현 지방의 강가에서 채취하는 사철(沙鐵:쇳가루)을 소나무숫으로 정련한 옥백강(玉白鋼:타마하카네)이란 재질을 이용한 전통제작법의 칼을 최상으로 치는 데요. 희소한 재료와 제작방법이 복잡하다 보니 가격도 엄청 비싼편이라 구입이 쉽지 않은 데 오래전에 어렵게 장만한 놈들 입니다. 이런 칼들은 보통 날카로움이 한결같은 엣지로 손상 없이 대상물의 세포를 정밀하게 절단하여 생선회의 비린 맛을 적게 해주고 맛을 향상시켜 주지요. 자사호도 마찮가지 이듯이 횟칼도 성능에 따라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명품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회와 회국수의 맛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초고추장이지요
초장맛을 제대로 볼 요량으로 작년가을 옥천사과를 사다가 식초를 담그어 놓았었는데 일조량이 워낙 풍부하였던 탓에 높은 당도로 깊은 감칠맛에다 산도가 꽤 높아졌습니다.
100% 토종 사과식초.(노하우를 공개할 테니 궁금하신분은 연락주세요.ㅎㅎ)
코를 갖다 대니
쿼~어허~ 커억……
코안이 쏴아 한 것이.신내가 엄청나네요 베리. 굿 .
전 두텁게 썰어 즐기는 편이라….
이렇게 생선회 겉껍질이 살짝살짝 뭍어나게 하려면 내공이 좀 필요합니다.
사진이 좀…
전 작업중이라 이유 많은 우리 마눌님의 손을 빌렸더니,
생각보단 허접합니다.
맛이요?
……(침 넘어 가는소리)……………
달고 맛이 있어 입에 쩍쩍 늘어 붙습니다.
자산어보에서도 숭어의 고기맛이 달고 물고기중에서 최고다”라고 써있는 것을 보면 정약전도 복숭아꽃이 피는 계절에 숭어회 맛을 본 모양입니다.
같이 산 간재미와 숭어회를 겯들여 제 주특기인 회국수도 한그릇.
사과향의 향긋하고 새콤한 풍미가 반갑군요.
한점 드시지요.ㅎㅎㅎ
이건
그동안 한꺼번에 일년농사 지으시느라 고생이 만만치 않으셨을
차산에서 고생하시는 꿈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동안 여기저기 홍길동처럼 활보하고 다니시며 명품을 만드시느라 고생이 많으셔서 기력이 많이 허해 지셨을 터인데. 부디 눈요기라도 하셔서 불끈 힘이 솟아 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나서 진하게 우린 보이 곡화청차 한 잔 빼놓을 수 없지요.
소화도 잘되고, 몸이 개운해 지는 것이
역시 생선회와 보이차는 찰떡궁합인 듯 합니다.
제철숭어 한번 먹어보자고 황금주말을 통으로 헌납했지만
기분 좋은 포만감 때문인지 하나도 아깝지 않군요. .
인생 모 이씀니까 .
이리저리 맛난 음식 찿아다니며 실컷 먹어보다 가는 거죠 뭐.ㅎㅎㅎ
첫댓글 저도 회 좋아합니다. ㅎㅎ 근데 아우라님 곡화차 아직도 남았어요 ?
홍또님 오랫만입니다....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고 아껴마시고 있습니다.ㅎㅎㅎ.
기도기간이라 1일1식에 음식 가리고있는 중인데 ㅠ,ㅠ 항아리가 좋아보이네요 식초만드는법도 공개해주세요^^*
본의 아니게 방해를 드렸군요. 죄송합니다 은빛물결님!..천연발효식초는 우리 현대인들의 몸안에 있는 독소를 제거해주는 훌륭한 슬로우프드입니다. 보통 글이 너무길어 지루하니 언제한번 시리즈로 식초에 대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지상 최고의 슬로우 푸드는 보이차로군요^^
식초...저도 매일 마시는 식초-홍초를 마시고 있습니다. 이제 몇년되었습니다. 맛잇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시면 만들어서 먹어야겠습니다. 기다립니다~~~~^^
저는 해마다 가을에 보통 포도식초(Balsamic Vinegar)와 사과식초를 담그는데요. 잊지않고 그때에 사진과 함께 한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와우!!!저는 강원도 산골 출신이라 회는 잘 모르는데 이번주는 당장 수산시장으로 가야겠습니다.
아이디의 강력한 포스.. 어쩐지 첨에 제가 그아이디로 등록을 하였다가 뻐꾸맞았는데..ㅎㅎ..올해는 생선이 생산량이 많고 불경기 탓인지 가격이 아주 저렴하더군요.
아우라님의 음식에 대한 식견, 포스가 느껴집니다. 차에 대한 이야기에도 그런 것을 이미 느꼈지만...회는 부산도 만만찮은데 이번 주말은 저도 숭어회로... 잘 먹었습니다^^
에쿠궁~ 지기님한테 당분간 카페의 온도가 내려가지 않도록 하라는 엄명을 받아서, 나름 생활속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었는데... 과찬의 말씀을 해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또 주저리주저리 지루한 글 이였습니다.
회도 뜨실줄 아시고 회를 얼만큼 좋아하면 그렇게 할수 있을까요 ? ㅋㅋ 저도 정말 좋아합니다 ^^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럽게 됩니다.ㅎㅎㅎ
아우라 님의 내공이 부럽사옵니다. 여몽은 앞으로 사시미의 "사"자도 꺼내지 말아야겠네요 . 삼청동에서 차회 한번 하시지요 ~ ^^
여몽님 안녕하세요. 가끔안부인사 드려하는데.... 반갑습니다. 불러주시면 언제라도 달려가겠습니다.
제가 바빠 요즘 여길 잘 들어오지 못했는데 오늘 들어와 보니 아주 멋진 사진과 입맛을 돋구는 모습이 올라와 있네요.^^ 아우라님 행복하셨겠습니다. ^^ 꽃도 멋있구요. 회도 더불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룹니다. 거기다가 약간 따뜻한 보이 한잔 정말 좋을 듯 합니다. 부럽습니다.^^
그리말씀해 주시니 고맙고 감사합니다.세계여행님께서도 화창한 봄날처럼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사시미칼을 보니 고수의 포스가 느껴집니다....... 저희 동해안 쪽은 숭어가 별맛이........
숭어는 뭐니뭐니해도 갯벌의 각종 미네널등 풍부한 영양분을 섭취한 숭어가 맛이 좋습니다. 계절을 타는 탓에 이젠 숭어맛도 내년을 기약해야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