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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거리 외교
등골 빼먹는 고약한 자식놈들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
리해관계따라 붙었다 떨어젔다 하는 것들이야
외갓집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해라
교묘히 파고들어 해꼬지만 할 것들이야
*등거리외교[等距離外交] equidistance diplomacy.
-어떠한 나라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각 나라마다 동등한 비중을 두면서 중립을 지향하는 외교 정책
동서 진영 등거리 외교를 통해 실리를 추구하다.
그 나라는 양국의 어느 쪽과도 밀착하지 않는 등거리 외교를 폈다.
그 나라는 등거리의 실리 외교 노선을 유지한다.
*중국, 한한령과 동북공정 철폐하고 미래로 나가야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한중수교 30년, 한중 관계 열쇠는 중국에 있다
이신욱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 연구교수 |
기사입력 2022.09.23. 09:24:55
1990년대 냉전체제의 붕괴는 세계화 물결을 전 지구촌에 가져왔고 이념으로 분단된 세계는 상호의존과 번영이라는 공동목표로 화합하는 계기가 됐다.
동서 분단을 야기했던 철의 장막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련 해체로 무너졌고, 사회주의 중국은 지도자 덩샤오핑은 실용노선과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하면서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의 대전환을 이룩했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통해 대공산권 수교를 적극 추진했고 그 결과 1992년 8월 24일, 베이징 영빈관에서 한국 이상목 장관과 중국 첸지천 외교부장이 "한중 선린우호 협력관계"에 합의하면서 한국전쟁 이후 단절된 한중 관계가 복원됐다.
한중 양국의 정치적 해빙과 더불어 양국관계는 나날이 발전했고 1992년 62억 달러였던 교역량은 상호분업적 국제관계를 통해 2021년 약 3000억 달러에 이르는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후진 농업국이었던 중국은 한국의 우수한 기술과 경제성장을 거울삼아 산업화에 성공했고 G2로 성장하여 미국과 경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중국의 경제발전 배경에는 지도자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과 흑묘백묘론(黑猫白猫)이라는 지도지침도 있었으나 국제관계적으로는 한국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 할 수 있다.
1990년 냉전붕괴이후 중국 공산체제에 의심을 가진 서방 자본은 중국진출에 무척 소극적이었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경제적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가진 중국이 어떻게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이느냐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러나 서해안 시대를 맞이한 한국의 적극적인 중국진출과 대중 경제협력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고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여 경제도약의 기회를 얻었다.
경제적으로 동북아에서는 새로운 국제분업 관계가 형성되었는데 중국의 주요 파트너 국가는 한국과 미국이었고 미·중 패권경쟁을 벌이는 2022년 현재도 이 관계는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부품생산, 중국은 부품 조립과 완제품 생산 그리고 미국은 소비를 각각 담당하면서 상호보완적 국제분업 관계는 매우 효율적인 국제무역 관계라는 것이 입증됐다. 한국은 반도체 생산의 60%를 홍콩과 중국에 수출하면서 한해 200억 달러라는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문화적으로도 수많은 영화, 드라마와 같은 한류 콘텐츠가 중국에 수출되어 한류 마니아층이 폭넓게 형성됐고 2014년 7월, 시진핑 주석과 함께 방한한 영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언급한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로 한류가 중국의 모든 연령과 계층에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수많은 중국 관광객들은 문화수도 서울과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명동과 제주도를 찾았고 부산과 인천의 지자체들은 차이나타운 설립하는 등 중국과의 우호 관계는 한류의 확대에 따라 그 친밀도가 높아만 갔다. 이것은 마치 1000년 전 고려풍이 원나라 수도 베이징에 불었던 것과 흡사하다고 하겠다.
김구 선생이 염원한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건설되는 데 이바지한 일등공신은 중국의 한류 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 분야의 강력한 소비자로 중국의 등장은 오늘날 BTS와 같은 한국가요, <오징어 게임>과 같은 한국 영화 등 한류의 세계화에 이바지한 측면이 크다고 하겠다.
이렇게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한중 관계는 2016년 7월, 한국에 사드(THAAD) 배치가 확정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문제삼아 '한한령'(한류 금지령)을 내렸고 수많은 중국 관광객들의 한국방문은 중단됐다.
사실 중국의 한한령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내려진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 사드는 북핵에 대한 방어용 무기로 한국의 핵심이익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원인을 찾는다면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북한을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민주주의의 물결을 막는 핵심 보루로 대해왔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몰락은 중국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시나리오로, 북한의 몰락보다는 핵 보유의 내부적 용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세계 10대 교역국이자 경제적 파트너 국가로 동북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지정학적으로도 북한 못지않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국가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에게 북한은 안보적으로, 한국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파트너 국가이기 때문에 한중수교 이후 지금까지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북핵에 대한 태도가 한국의 사드 배치를 가져왔다고도 할 수 있다.
둘째, 한국의 강력한 문화의 힘이 한한령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시대 중국은 광전총국을 중심으로 정보, 문화, 영화, 예술, 종교 등을 통제하는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시기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에게 한류란 자유민주주의의 문화침략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고 시진핑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한류가 한국에 대한 호감을 높여주는 반면 중국 현실과 비교를 통해 정치적 불만의 원인이 된다는 판단이 한한령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소련은 비틀즈 음반 유입을 차단하는 데 실패했고 비틀즈에 열광한 소련 젊은이들은 '비틀즈 세대'가 되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적극 참여, 소련 붕괴를 이끌어낸 역사적 경험이 있다.
따라서 중국 젊은이들에게 한류와 BTS는 열광의 대상이지만 중국 정부에게는 민주주의의 물결이라고 받아들여졌고 한한령이 시행되어 지금까지 유지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에 이어 9월 16일, 중국 정부 서열 3위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한국 국회) 상무위원장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미중 패권경쟁시대 한국의 중요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먼저 방한한 바이든 대통령은 ‘칩4 동맹’을 통해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고 한국, 대만, 일본, 인도 등 중국 주변국들과 동맹관계를 형성하여 중국을 고립시키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미국의 봉쇄전략을 돌파하여 중국만의 물류, 세계화 전략을 구상하고 있어 G2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대한민국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며 6위 군사대국으로 OECD회원국이라는 세계적 위치에 도달한 선진국이며 세계화 시대를 리더하는 중견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반면 다수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한미일 연합과 북중러 동맹이라는 신냉전구도는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고 미중 양대 초강대국을 사이에 둔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30년 한중 양국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상호발전적 국제관계와 우정을 쌓아왔다는 점은 주지해야 할 사실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한반도 정책을 북한과 한국 사이를 오가는 등거리 외교를 할 것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제2의 한국전쟁은 남북 당사자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중국에게도 큰 불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交友)편에 나오는 '급난지붕'(急難之朋)이란 '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후진 농업국가였던 중국을 산업화로 이끌었고 2008년 쓰찬성 대지진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방문하여 구호를 도왔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록 적성국 군인이지만 한중 관계와 인도적 측면을 고려하여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중공군의 유해도 송환해 주었다. 한중수교 30년 중국의 최고의 친구는 단연 대한민국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중국 정부에 한반도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할 것을 권고하고 싶다. 좋은 친구 한국을 위해 북한을 평화로운 대화의 길로 나오는 글로벌리더십을 보여야 할 것이고 상호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한한령과 동북공정과 같은 한국에 대한 압박정책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침략으로 얼룩진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상호협력과 신뢰를 통해 발전하는 세계화 시대이다. 만약 중국이 지금의 사드 압박과 한한령 같은 압박정책을 철회하고 대국다운 리더십을 보인다면 좋은 친구 한국은 동북아에서의 좋은 파트너 국가로 변모할 것이고 한반도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전환되며 중국에게는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MB, 등거리외교를 아는지요.
by anarchopists 2019. 12. 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01 07:5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한반도의 역사상 우리는 평화 유지, 전쟁억제, 나라의 안전을 위해 주변나라와 여러 형태의 외교관계를 맺어왔다. 대체로 우리 주변의 큰 나라인 중국과는 전통적인 친중국 정책, 곧 조공외교를, 그리고 주변 작은 이민족들과는 근린우호외교 또는 ‘역조공외교’을 써왔다. 그러다가 중국세력이 약해지고 주변 이민족세력(우리가 역사에서 말해왔던 오랑캐五囊犬)이 강해지면 등거리외교로 나라의 안위를 도모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인 조선조 17세기 초, 광해군(光海君, 1575~1641)의 외교정책이다.
당시 조선은 안으로 왕권의 정통성문제로 왕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는 기득권세력(西人)의 ‘정신적 모태’인 명나라의 국가적 안위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기득권세력이 오랑캐라고 멸시하는 여진=만주족 후금(청)나라가 명과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이에 광해군은 기득권세력의 전통적인 친명배금(親明背金)외교를 버리고 명과 후금 사이에 등거리외교(中立外交)를 취하였다. 이러한 전술적 외교정책은 안으로 기득권세력의 반발이 있었고 밖으로 명의 압력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후금의 침략을 막으면서 나라의 안위와 당시 백성들의 편안을 도모할 수 있었다.
조선의 근대가 되었다. 그때는 이 나라 정치외교상 격변기다. 일본을 포함하는 유럽열강들이 호시탐탐 조선을 침략하고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에 조선의 외교정책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내용이 전통적인 친중국외교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하여 유럽화하고 새로 부상하는 일본에 대한 친일본외교다. 결국 당시 조선의 왕, 고종의 무능과 그의 부인 민비(閔妃)의 교만으로 빗어진 친중국외교는 당시 변화하는 국제사회를 읽어내지 못한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이 결과는 조선의 멸망과 함께 ‘민족의 노예상태’가 되고 말았다.
인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웃 사람과, 나라는 이웃 나라와 등지며 살 수는 없다. 늘 주변과 관계를 적절하게 잘 유지해야만 자신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근대 이후, 근대라는 이웃(유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동아시아(그 중 대표적인 것이 중국)는 근대의 변화 속에서 ‘역사적·사회적 쇠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근대유럽과 이웃관계를 잘 유지한 일본만이 나라의 안위를 유지하며 나라를 부강시켰다.
현대에 들어와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근대문명으로 내실을 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981년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 중국공산당의 당권을 장악한다. 덩샤오핑은 낙후된 중국 사회주의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개혁개방조치를 단행한다. 개혁개방정책은 정치ㆍ경제(20년 동안 평균 9%대 성장률)ㆍ사회적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나타냈다. 이와 함께 발생할 수도 있는 대내외 모순을 제거하기 위하여 ‘반제국주의’(反帝國主義), ‘반수정주의’(反修正主義)라는 방어적 전략을 수정하고 ‘국가방위와 대외개방의 통일”이라는 공세적 전략으로 바뀌게 된다.
이 결과 중국은 지금 종이호랑이가 아닌 살아있는 호랑이로 부상하였으며, 경제적으로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 그리고 군사적으로 미국을 대적할만한 수준에까지 오고 있다. 나아가 외교적으로 중국은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다시 노리는 경계까지 왔다. 한마디로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아직도 정치경제면에서 미국의 앞잡이다. 미국이 먹고 남은 그릇을 설거지하는 하는 수준이다. 곧 미국에 대한 ‘자발적 식민지’노릇을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내놓을만한 이념이나 사조(思潮)조차 없이 미국식 ‘퍼먹고 놀자 주의’에 빠져 있다. 문화적으로는 더구나 더 그렇다. 완전히 타락하고 부패한 미국식 자본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일국의 대통령이 외국의 의회에 나가 박수를 45번이나 받고 5차례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이 나라 권력형 언론들이 대서특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미의회 의원들 앞에서 한국 대통령의 45분 연설에 1분 꼴로 45번의 박수를 받았다는 보도는 미국의 정치인(대통령과 미 의회 의원들)들이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가지고 놀았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곧 대학생이 유치원생을 가지고 놀았다는 그런 기분이다.
미국은 그들의 국가적 이익과 관련된 ‘한미FTA의 한국의 국회비준’이 필요했다. 그리고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제어할 굳건한 한미동맹(제주강정의 해군기지, 평택 미공군기지 건설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발언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의회에서 행한 연설 내용을 토막별로 보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상하원 의회 지도부의 각별한 노력과 의원 여러분의 전폭적인 지지로, 전례 없이 신속하게 통과시켜 준 것을 높이 평가하고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또 “한국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와 '압제로부터의 자유'를 동시에 성취”했다. “한국이 이렇게 성장하는데 미국의 도움과 방위공약은 큰 힘이 되었다.” 이런 자기비하적 발언에 박수가 안 나올 까닭이 없다.
또 “GM의 한국 자회사는 쉐보레를 한국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판매 개시 6개월 만에 27%나 판매량이 증가했다.” 이런 말은 미국인들에게 신나는 이야기다. 또 “동북아시아의 경제적 활력이 지정학적 변동과 함께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세력균형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하면서 “20세기와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미국의 지도력은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여전히 중요하다”고 했다. 완전 미국 찬양 발언이다. 이는 미국찬양대회 나온 유치원 어린이의 웅변내용과 같았다. 미국의 의회의원들은 기분이 좋다. 그래서 “잘 한다고” 박수를 많이 쳐주었다. 이명박도 유치원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으리라 생각한다. 이 나라 인민들은 굴욕을 느끼는 데 말이다. 제발 이제는 미국에 대한 ‘자발적 신민지 나라’ 노릇을 하는 발언은 그만 두었으면 한다. 이제는 중국과 미국의 패권놀음에 우리가 어떤 외교를 해야 할 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11. 11.1,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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