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68)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 - ④ 분노도 시인을 만든다/ 시인 정일근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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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분노도 시인을 만든다
지난 1991년 도서출판 빛남에서 묶은 내 두 번째 시집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에 수록된 시편들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숨막히는 더위
고물 선풍기가 뿜어주는 더운 바람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적의로 괴로워했다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미성숙의 벽에는 우울한 시대의 푸른 곰팡이가 피고
숨어서 김지하의 시들을 몰래 읽으며
늘 혁명의 전야처럼 살고 싶었다
적의, 우울한 시대, 김지하, 혁명 전야. 그런 말들과 함께 나의 성년식이 시작됐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담임선생님이 권유하셨던 K은행 입행 대신 대학진학을 선택했다.
가장인 어머니의 가게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아들의 장래가 걱정되셨는지 대학진학을 하락하셨다.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맨 처음 눈을 뜬 것은 시와 역사의 현주소였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때가지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만이 시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다.
문예부장까지 지냈던 상고시절 진해에서 마산까지 버스 통학길이 지루해 가끔 박인환의 시들을 외웠고,
내가 가지고 있던 시집은 김소월 시집과 백일장에서 부상으로 받은 윤동주 시집, 단 두 권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오던 시집들을 읽고 쇠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시도 있으며, 시는 이렇게도 쓰는구나. 나는 비로소 작은 우물 밖을 나온 개구리였다.
그 개구리에게 시의 세상은 참으로 넓고 험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내가 받은 문학교육이 편협됐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그런 현실에 절망하기 시작했다.
판금된 김지하 시집 필사본을 숨어서 읽으며 내가 살고 있던 시대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교과서의 문학교육만 편협된 것이 아니었다. 역사도 왜곡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시월의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 삼국통일 되듯이 남북통일 되지요”라고 신나게 불렀던
유신의 실체는 남북통일을 막는 최대 장애였으며, 유신 시대는 그때도 계속되고 있었다.
진해에 있던 대통령 별장 덕에 어린 시절 대통령 행차 길에 나가 고사리 같은 환영의 손을 흔들며 좋아했던,
중절모를 쓴 박정희는 일본 육사 출신의 독재자였다. 절망은 분노를 낳는다.
그 분노 앞에서 나는 시와 역사에 복무할 것을 선서했다.
대학 1학년 나는 야학 선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과정이었다.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대부분 현장 노동자였던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대학 강의실보다 야학에서 배운 것이 더 많았다.
야학의 동료교사들 중에는 해군에 근무하는 학·석사장교들이 많았다.
그들에게서도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형도 야학에서 만났다.
그는 대학원을 마치고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군복무를 했는데 야학에 동참했다.
마산 양덕에 있던 그의 아파트 서재는 내 문학수업의 바다였다.
사면을 빼꼭히 채운 그의 이론서들이 나를 가르쳤으며 그와 밤을 새워 마시던 술이 나를 성숙시켰다.
그 시절 나는 자주 분노했다. 그리고 분노는 혁명의 꿈으로 이어졌다.
혁명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 내가 택할 수 있는 혁명의 방법은 시일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면 뒤틀린 현실과 바르게 흘러가지 않는 역사에 대한 분노가 시를 쓰게 만들었다.
시로써 현실에, 역사에 대해 혁명하고 싶었다.
야학 7년을 보내고 나는 ‘야학일기’란 연작시로 당시 무크지였던 『실천문학』을 통해 분노의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분노도 없는 법.
조국과 역사에 대한 사랑이 분노를 낳고 그 분노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그대, 분노가 일면 터트려라.
분노도 시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 ‘나를 바꾸는 시 쓰기, 시 창작 강의 노트(유종화, 새로운눈, 2019)’에서 옮겨 적음. (2021. 1. 3.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68)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 - ④ 분노도 시인을 만든다/ 시인 정일근|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