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근 목사의 시무연장 공동회의를 앞두고...
벌써 70살이 되었다. 그 동안 뭘했는가? 아찔한 생각이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은혜와 손길이
아니면 나는 감히 엄두도 못낼 목회자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내 이름을 걸고 내
인생을 걸고 주님앞에 나를 드러내놓고 돌아본다.
서울모자이크교회와 함께 한 내 인생은 한마디로 은혜다.
부족한 내가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한걸음씩 온것 뿐이다.
이제 조심스레 나의 이력서를 써 본다.
신학대학(4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3년) 졸업하고
목사임직을 받고, 다시 유학길에 올라 미국 샌디에고 엘가혼에서
다시 석사와 박사과정(5년,Ph.D)을 끝냈다.
대학부터 시작해서 박사학위과정을 끝내는 데까지 12년이
걸렸다. 그리고 대학에 교수로 31살에 시작해서 65세까지
가르치는 일에 몰두했다. 수천명의 신학도들을 만났고
제자들은 지금 한국과 세계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령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 서유럽, 동유럽,
아시아 전지역 그리고 남미와 북미, 특히 미국에 많은
제자들이 시대적 사명을 머금고 묵묵히 생명수의 우물을 파서
생수를 마시게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의 교회사역이력을 돌아본다.
나는 학부시절 2학년때(23살)부터 교유전도사를 시작했다.
충신교회 전도사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면서 부터
우이중앙교회의 교육전도사로 시작해서 그 후에 강도사고시를 거쳐
목사임직을 했다. 우이중앙교회는 나의 모교회나 다름이 없다.
그곳에서 나는 결혼을 했고(담임목사, 박기풍목사님주례)
목사임직을 했고, 미국유학할 때 많은 지원을 받았고
돌아와서는 대학에 있으면서 부목사로 그리고 나중에는 담임목사로
위임식을 하고 위임목사가 되었다.
나는 대학에 대학원장으로 제직하면서 한때 할렐루야교회(김상복목사님)
의 부름을 받고 대학부 담당, 협동목사로 섬기기도 했다.
개인적인 사유로 우이중앙교회를 사임하고는 곧바로
잠원동 신반포중앙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하여 목회를 했다.
이때는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목회현장을 돌아보게 한 시간이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숭실대학교 사회봉사관을 빌려
교회를 개척했다. 열린문교회다. 그리고 10년임기제사역을
마친후 나는 다시 서울모자이크교회를 개척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미국유학중에 그리고 안식년때에 교포교회 사역했던
것은 내게 큰 경험이었다
맨처음 유학하면서 나는 남가주 교포교회가운데 작지 않는
나성서울교회를 목양했다. 그 때가 1982년도다.
유학해서 한참 공부에 매진할 때인데 교회를 섬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내가 존경하는 평신도인
김재성박사(행정학.UC 버클리) 이상수박사님(교회사 전공,UCLA)의
권유로 주말에만 와서 설교하는 목사로 사역을 했다. 내나이
서른살때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놀라워 했다. 어떻게 그 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느냐는 부러움의 눈치였다.
지금은 두분이 다 고인이 되었지만 나는 그분들이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닌 집사들로서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는데 그분들을
통해 나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같은 것을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 교회와 목회자들을 많이 도와주셨던 분들이다
김박사님은 대학총장을 역임하셨고 이박사님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시면서 간간히 후학들에게 강의를 하셨다.
나는 그분들을 만날 때는 흥분하고 신이나서 심부름할 자세로
가지만 그건 어림없는 일이었다. 나보다 15살이나 더 많은
선배들이고 실력자들이었는데 언제나 저를 깍듯이 목회자로
성직자로 대해주시고 도와주셨다. 이미 하나님앞에 다 가신
분들이지만 오늘 새롭게 그 분들이 떠오르고 앞으로 남은 나의
생은 그 분들처럼 남을 돕는데 특히 후배들을 돕고 교회를
돕는 일에 마음을 다 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나는 이 교회를
1차유학을 하고 한국에 돌아오게 됨으로서 불가피하게 사임을 했다.
그리고 두번째 미국에서 목회는 샌디에고이다. 내가 박사학위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간 것은 1985년이다. 그래 가을에 나는
샌디에고에서 반석장로교회를 개척했다. 장경조장로님댁에서
약 17명이 시작되는 교회였는데 내가 청빙을 받은 것이다. 그 교회에
청빙되어 간것은 참으로 재밋는 일이다. 어느 날 기숙사에
한국분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나갔더니 다섯분의 한국인 어른
들이 찾아오셨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났는데 한국에서 제가 있던
대학의 김형석교수님의 소개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김교수님의
고종사촌이라고 하면서 그리고 고모라고 하면서 교회개척을
앞두고 있는데 목사님을 청빙하려고 하는데 목사님이 공부로 인해
바쁘시면 수요저녁예배와 주일설교만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샌디에고 반석교회다.
그리고 3년간 나는 박사학위 논문쓰기와 목회를 병행하면서
1988년 공부를 마치고 다시 귀국길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교회는
사임하고 후임목사님이 오셨다.
세번째 미국에서 목회는 로스안젤레스에서 시작했다. 이 교회는
내가 대학에 있으면서 안식년(연구년)을 맞아 1년간 해외에서
연구하며 보내는 시간인데 마침 친지중에 한 분이 있어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는데 목사님이 안식년으로 미국에 오시니 그냥
시작하겠다고 해서 나성빌립보교회를 시작했다. 물론 이 교회도
그 형제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참 재미있던 기간이었다. 나는
일년의 안식년이 끝나갈 무렵 대학에 부탁을 해서 일년을 더
연장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다만 한달에 두번은 서울에 와서 한주간씩
있어야 한다고 해서 나는 그해에 미국을 24번 왕복하면서 목회를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 교회는 내가
한국에 돌아가야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시작한 교회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장난이 아니라 이렇게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교회를
개척하게 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간증이 많았던
교회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신학대학원 설립을 하는데 일조했고
대학에서 초대대학원장으로 그리고 교목실장으로 그리고 교회의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바쁘고 바쁜 일정을 보냈다.
인생을 돌아본다는 것은 일단 반성(反省)이다. 돌아봄이 그런 뜻이다.
어떻게 살았는지? 결과는 좋았는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쳤는지? 대학교수시절 양심적이었는지? 가족들과 가정에 진정
충실했는지? 교회생활중에 목회자로서 점수를 후하게 줄 수 있는지?
개인의 사생활과 사회생활에서 덕을 끼치며 살았는지? 사치하거나
돈을 함부로 쓴 적은 없는지? 목회를 개인의 이익위해 이용하지는
않았는지?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는지?
남에게는 하라고 시키면서 나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 인간은
아니었는지?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눈가림만 한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대접이나 받는 것으로 생각한 것을 아닌지?
주의 일을 하면서 섭섭하게 여겨 속으로 화를 낸 적은 없는지?
설교와 가르침에 마음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양심적으로 말씀을
제대로 분별하고 해석하여 영적 양식에 부족함이 없도록 애썼는지?
교인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그걸 은혜라고 차각하지는
않았는지? 교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조차 파악도 목하고
설교한답시고 목에 힘을 준 목사는 아닌지? 하나님의 일을 뒤로하고
개인의 욕심과 탐욕에 빠져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한 적은 없는지?
교인들을 이용한 적은 없는지, 교회를 내것처럼 행동한 적은 없는지?
이런 질문은 끝이 없다. 다 자격없는 목사의 걸어온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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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를 다시 돌아본다.
이제 이런 이력서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꼰대의 이력서다.
철지난 학력, 학위, 그리고 여러가지 일들, 그것은 철지난
상품에 불과하다. 시효만료다. 난 그걸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요즘시대 이것은 낭비라고 할지도 모른다. 뭐 별것도 아닌것
가지고 공부하고 시간보내고 많은 돈을 쓰고 도대체 뭘하겠다고
이렇게 요란을 떨고 힘든 길을 걸어온건가?라고 비난받기 쉽상이다.
누구도 어디에도 심지어 가족간에도 자랑하고 칭찬하고 높여
주는 시대가 아니다. 그냥 자기가 알아서 자기 일하면 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자기가 누릴 것 만큼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누리는 것이 우리 시대다. 이걸 잘 수용하지 못하면 섭섭해서
병이 나고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 아, 어떻게 할까? 과연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실까? 그리고 내가
시무연장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는
어떤 사인이 온다면 나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도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실지, 최소한 하나님의 곁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소리를 듣고 싶다. "하나님, '예스'(yes)에요.
아니며 '노'(no)예요?" 주님, 당신의 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 " 설교자와 설교" "목회학" "지성의 제자도"를
숙제처럼 홀로 탐독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이전의 분들, 물론
현존하시는 저자도 있지만 나는 이미 이분들의 글을 섭렵했다. 다시
책을 든다. 다시 경건한 신학자들의 마음을 읽는다. 이 길에 대한
나의 태도와 사역에 대한 나의 통섭적인 점검, 그리고 사명자로서의
합당한 의식과 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나를 자가평가를
해보는 거다. 기도해 주셔야 한다. 박목사를 위해 기도해 주셔야 한다.
기도없으면 사막이고 돌밭길이다. 기도로 은혜의 길을 만들어
주셔야 한다. 교우들에게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하다.
그리고 서울모자이크교회에 대한 나의 통찰이다.
이것은 다음 글에서 만나도록 하겠다.
10월15일 오후 6시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회 목양실에서 박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