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신춘기독공보 / 이건철
못 / 이건철
1
고적한 오랜 잠 끝에
녹슬은 못들이 일어선다
정기 어린 이 아침
그러나 꿈의 통나무는 아직도
실려오지 않고 있다
못들은 이내
쓸모 없는 욕구가 되어
스러져버린다
2
고정관념 하나가
툭하고 떨어진다
못이 구식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정된 관념을
단순한 디자인의 나무필통에 꽂는다
3
자정 넘어 그 누가
불면의 관에 못질하고 있는가
깊디 깊은 밤을
차디 찬 금속성으로 멍들게 하는가
4
이 세상 끝까지
성결한 피가 묻은 그 못을
간직하게 하소서
타고난 죄 말고도
앙금처럼 가라앉은 나날의 죄까지
씻어지게 하소서
그래서 마지막 확신으로 물들어 떠나가는
노을이게 하소서
[당선소감]
성전건축 헌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던 차에, 우연히 CBS 홈페이지에서 기독공보사의 신춘문예 광고를 보게 되었다. 마감일이 거의 가까웠던 때라 서둘러 그 동안의 시들을 정리해 응모한 뒤, '작품이 선정되어 상금을 받게 되면 전액을 헌금으로 드리겠다'는 서원 기도를 드렸다. 기도의 응답이 정말로 놀랍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같다.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보잘 것 없는 재능을 거두어 쓰는 하나님의 뜻이 이 사람에게도 해당된다면, 강 끝까지 내 기도의 종이배에 말씀을 띄워 보내고 싶다. 저 믿음의 근원에 있는 분들이 생각난다. 기쁜 모습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좋다. 기회를 마련해 주신 담당자와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당선작 '못(이철건)'은 신앙시로서 성취도가 높은 작품이다.
이철건 씨의 '못'과 '어떤 고백'은 작품의 전개방법에서는 상이하나 바탕에 깔고 있는 신앙적 진실성을 공통점으로 하고 있다.
상당수의 응모작품이 이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나 시적 변용의 차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면 그의 작품들은
이런 아쉬움을 극복했기 때문에 시적 성취도가 높다.
'못'에서 못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건의 물증으로서의 못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이 못을 지니고 다닌다.
그것은 하나의 기호(sign)로 상징되거나 물표(token)처럼 품에 지니기도 한다.
'못'은 하나님의 공의의 세계에 도전한 인간 죄악세력의 상징적 물증으로 의식된다.
'못'에서 '꿈의 통나무는...'와 같은 작위적인 비유가 흐름을 매끄럽지 못하게 끊는 점도 있으나
'그 누가/ 불면의 관에 못질하고 있는가'와 같은 구절은 특히 고난주간에 읽는 선자(選者)의 마음에
또 다시 예수님의 손바닥에 못을 박는 오늘의 나는 아닌가하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이밖에 우수작 '顯現(Epiphany)(김춘배)'은 잠언적이다.
한 줄 한 줄 긴장감과 기대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또한, '브니엘의 아침(김소양)'은 압축과 간결한 표현이 돋보인다.
한국의 신앙인들에 의해 특유의 신앙고백적 경건문학이 꽃을 피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심사위원 이성교 / 시인ㆍ성신여대 명예교수, 박이도 / 시인ㆍ전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