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74) 착란, 혹은 의식의 확장 - ① 시인의 정신 영역/ 문학박사 전기철
착란, 혹은 의식의 확장
웹문서 http://news.joins.com/article/ 인제대, 천상병 시인 25주기 추모시화전
① 시인의 정신 영역
인간의 정신 영역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게 통설이다.
우리의 정신세계는 자연의 사물에서부터 광대한 우주에까지이다.
시간적으로는 120억 넌 전에서부터 현재까지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한 존재 안에 우주와 모든 시간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달을 보는 면은 항상 같다. 달의 앞쪽만을 우리는 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의식만을 정신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 의식 너머에도 무궁무진한 정신세계가 있다.
그것이 무의식이다.
우리의 의식과는 다른 세계, 즉 일상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정신 영역이 무의식이다.
이는 가끔 실수나 병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창조적 세계로 승화되기도 한다.
도스토예스키의 도박이나 고흐의 자해 등은 이러한 표면 의식의 너머, 무의식의 작용으로 나타난 증상이다. 예술가들의 이러한 비상식적인 행위는 우리 정신 영역 뒷면의 작용이다. 하지만 예술가에게는 창조적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즉 예술가의 정신분열이나 몽환, 착란, 편집증은 무의식의 영향에 의해 나타나는 한 증상이다. 인간의 정신은 눈에 보이는 면, 즉 밝은 면이 있는 반면에 어두운 면, 눈에 보이지 않는 면이 있다. 정신세계에서도 빙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면이 보이는 면보다 훨씬 넓고 깊고 풍부하다. 이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든 생명체는 태생적, 유전적으로 한 뿌리에서 나와 서로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우리가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기 힘들다고 했다.
이 어두운 면은 정상적인 생활이나 정신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꿈을 꿀 때,
정신적으로 허약할 때, 자기방어가 심할 때, 정신착란, 분열, 편집증, 폭력, 불안, 우울, 식수, 추사 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특징은 비상식적이며 자기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 비현실적이다.
정신의 어두운 면은 현실 너머, 사회적인 안전망 너머에 있다.
이 영역은 태초부터 시작된 동물의 진화 과정 전체를 통과하면서 축적된 것이어서
우리가 사회에서 배운 의식세계의 밝은 면보다 무궁무진하게 폭넓고 풍부하다.
이 어두운 면은 광활하여 정신세계의 보고(寶庫)이며,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활동 공간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러한 면은 오랜 진화 과정에 걸쳐 우리의 무의식에 저장되는데,
그것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의식세계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의식은 원시적 동물적 욕망의 창고이기도 하다.
그것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늘 분출하려고 하는 휴화산과 같이 의식의 표면 아래 숨어 있다.
그래서 그것은 언제든지 언뜻언뜻 의식의 표면으로 분출하여 합리적인 의식세계를 휘저을 수 있다.
그 무의식의 요인이 의식세계로 튀어나올 때는 늘 반항적이며 폭력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인간 정신의 광활한 영토인 이 무의식은 창조적인 활동을 하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정신의 무궁무진한 영역을 개척하려면 우리는 그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세계를 활용해야 한다.
이 세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표면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무의식의 표면으로 나와 문화가 된 형상의 꿈, 신화, 예술이다.
이러한 무의식의 세계를 시로 쓴다면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비현실적인 무의식의 문화는 우리가 동식물이었을 때부터 켜켜이 쌓인 단층들에서 올라온 정신 형상이다.
따라서 수천 년에 걸친 생명의 과정을 포용하는 정신세계의 확장은 곧 무의식의 세계로의 귀환이며 탐험이다.
따라서 무의식은 정신세계의 개척에 필요한 영역이다.
〈식스 센스〉라는 영화를 보면 한 초등학교 여학생이 다른 사람의 말이나 사건을 미리 예측하여
주위의 따돌림을 받는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어서 아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을 보고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다.
초감각, 초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감각 너머의 세계이다.
예술은 새로운 정신 영역을 개척하는 양식이다.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여 맛보지 못하는 세계를 탐구하고 개척하는 자가 예술가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정상적인 시각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정신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감각 너머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정신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
몽롱한 언어, 정신병적인 언어, 꿈의 언어, 착란의 언어 등을 통해 시인은 새로운 정신세계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언어는 정상적인 의식에서 보면 말이 안 되거나 왜곡되어 있다.
이 언어는 너무 뒤틀리고, 뒤집혀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정상적인 읽기로는 접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의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정신 영역을 개척하고 싶다면 자신의 무의식에서 건져 올린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불안과 우울, 혹은 편집증이나 정신분열에서 건져 올린 말들이다.
이 말들은 4차원에서 3차원을 보는 것과 같다.
4차원적으로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상을 바라보면 시간과 공간은 뒤집혀 있거나 뒤틀려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양자물리학적 인식에서도 잘 나타난다.
양자물리학으로 보면 상상이 우리가 느끼는 감각 세계보다 훨씬 현실적일 수 있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시간도 휘어질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공간도 휘어진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시간은 얼마든지 뒤죽박죽될 수 있고 불규칙적일 수 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면 그 사람은 죽은 게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시간 속에 들어가면 거기 그대로 있다.
우리의 감각은 극히 불완전하고 상대적이다.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인식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또 다른 감각이 수없이 많다.
달리는 〈탁상시계〉라는 그림을 보면 시계가 흘러내린다.
또한 쇤베르크의 12음 가법에서 우연성을 중시하는 〈달에 홀린 피에로〉라는 음악이나 존 케이지의 〈4분 33초〉와 같은 우연성의 음악은 기존의 정상적인 부드러운 리듬이 아니라 기괴하거나 황당한 리듬을 연출한다.
다른 감각으로 받아들이면 손가락이 휘어져서 얼굴을 먹어 치우기도 하고, 눈이 등 뒤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예술가는 합리적인 세계를 허물기 위해 우연성의 언어, 혹은 카오스의 언어를 쓴다.
그것은 합리적인 정신 너머를 보기 위해서다.
시인은 일반적인 정신세계 너머를 탐구한다.
그래서 시인은 끊임없이 합리적이며 정상적인 의식을 흔들어버리고 싶어 한다.
어떤 시인은 시를 주로 밤에 쓰는데,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 며칠 밤을 뜬눈으로 꼬박 새운다고 한다.
그 시인은 온몸과 정신이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자아라고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없을 정도로
몽롱한 상태에서 시를 쓴다고 한다.
그때 만족할 만한 시가 나온다고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투적인 시밖에 쓸 수 없다고 한다.
또 다른 시인은 술이나 LSD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쓴다고 하고,
또 다른 시인은 불안과 불면에 시달릴 때 시를 쓴다고 한다.
이는 모두 정상적인 정신 영역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에술가란 어쩌면 정상적인 정신 너머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예술가가 자신의 정신적 증상을 승화하기 위해서 창조적 작업을 한다고 본다.
예술가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착란을 일으킨다.
때문에 시인은 경계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소설가나 평론가가 냉철한 현실 인식을 중시하여 비평적이고 서사적인 데 비해 시인은 자기 안으로 숨기 때문에 자신을 거의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외부 세계와 잘 어울리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그 정신적 특성상 자폐적인 증상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산문이 객관성을 중시하는 3인칭의 문학이라면, 시는 주관적인 1인칭의 문학이다.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시인은 우울, 불안과 착란에 쉽게 노출된다.
이러한 정신의 증상은 창작을 통해 승화되지 않으면 병적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는 프라이트가 도스토옙스키론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시인에게 모든 것은 자아의 정신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의 왜곡된 정신 현상은 상상력의 발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빨랫줄에 걸려 있는 게 빨래가 아니라 얼굴이라고 생각해보자.
혹은 전깃줄에 앉아 울고 있는 게 새가 아니라 구름이라고 생각해보자.
옥상에 올라가면 얼굴이 비에 젖는다.
날개를 단 얼굴이 젖은 채로 푸드덕 운다.
옆집 소녀의 연애편지 같은 얼굴이 젖는다.
새들의 말이 젖는다.
한 가닥 남은 바이올린의 현이 운다.
구름으로 떠오르는 얼굴
얼굴들
얼굴과 비와 새와 구름이 뒤섞여 비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하여 무작위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시에서 미적 세계가 창조된다.
시를 쓰려고 하는 이는 때로는 합리적인 소통의 머리를 뒤흔들어놓아야 한다.
위 시에서는 빨래가 얼굴이 되었고, 날개를 달았으며, 그것은 연애편지가 되기도 하고
새들의 말이 되기도 구름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정상적인 인식이 아니다. 하지만 시적 상상력으로는 있을 수 있다.
■ 다음은 착란으로 만들어진 문장이다. 이를 통해 시적 상상력을 느껴보자.
㉮ 담배 연기가 날개를 펴 허공에는 천막이 출렁이고 죽음보다 고요한 침묵이 못을 박는다. 사람들의 슬픔이 구름으로 떠다니는 항구에서는 고향을 잃어버린 개들이 긴 침묵을 끌고 다니다.
㉯ 거짓말하는 손이 냄비에 우울을 볶는다. 욕설을 끌고 다니는 파리의 나른한 낮잠 위에서 졸아든 시간이 튄다.
위 ㉮, ㉯의 문장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의식 영역을 벗어나 있다.
언어의 계기적 인과관계가 허물어져 있고 사물이나 자연의 정신적 인지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문장은 정신의 착란에서 비롯된다. 뒤틀리고 뒤집혀 있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가 날개를 펴기도 하고, 침묵이 못을 박으며, 개들이 침묵을 끌고 다닌다는 건
시적 상상력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손이 우울을 볶고, 파리가 욕설을 끌고 다닌다.
이러한 상상은 정상적인 의식의 껍질을 깨뜨리게 한다.
< 연습 > 몽롱한 정신 상태에서, 즉 꿈속인 듯이, 불안이나 취한 상태에서 헤매듯이 쓴 다음을 참고하여 시를 써보자.
[다음] 죽은 어머니를 건넌다. 밤이 작은 돛단배처럼 출렁인다. 언덕 너머 묵은 목소리, 묘비인 양 우뚝하다
< ‘언어적 상상력으로 쓰는 시 창작의 실제(전기철, 푸른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1. 1.12.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74) 착란, 혹은 의식의 확장 - ① 시인의 정신 영역/ 문학박사 전기철|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