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기독신춘문예 / 김현수
受難의 序曲 / 김현수
1
때는 늦은 저녁
식탁 앞 호롱불이 파르르 떨다.
그 날 따라 지쳐 보이는 눈망울에
정적이 드리우는 데
모인 사람 세어보니 열둘이라
잡수시다 문득
슬픈 기색 띠시더니
그 중 하나를 부르시고
따로 보내시다.
그 자가 유다라
배신의 올무가 그의 삯이니
차라리 태(胎)에 없었더라면…
2
이윽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다.
한 입 떡에 살을 담고
한 잔의 포도주에 피를 삼아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나눠주신 그 떡에 생애를 심으시니
그저 먹을 뿐이라
손수 주신 그 포도주에 언약을 세우시니
그저 마실 뿐이라
먹고 마심이 그 나라 이루기까지
마지막이라고…
3
그렇게 살아 오셨건만
선생님 가실 줄도 모르고
이기에 물든 자들
서로 묻기를 큰 자라니
그 나라는 벼슬이 아니요마는
사람의 일을 도모하는도다.
높은 자리 마다하고
낮고 낮은 인생 중에 오셔서
섬기는 자로 칭하시니
도리어 유업으로 줄 아버지의 나라를 가르치시다.
4
늦은 밤 오기 전에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다.
허리 굽혀 스스로 낮아지신 선생님
때묻은 발 씻기시며 우러러보시니
차마 거둘 수 없어
온몸을 맡기니 큰 죄를 사하심이라
종의 본을 보이시더니
서로가 씻기라 부탁하시다.
5
시몬아,
네가 나를 따른지 삼년이라
갈릴리 뱃사람 시절에
내 너를 택했노라
눈먼 자가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귀머거리가 들을 적에
시몬아,
하늘 나라 말하니
아이들도 듣더구나
오 천명 먹일 때에 빈들이라
너는 보았느니라
시몬아,
이제 너는 무엇을 보려느냐
고향에 두고 온 그물이 네 인생은 아니니라
형제들을 부탁한다.
시몬아,
네게 이를 말이 있노라
믿음이 약하니 내 너를 위해 기도하매
사람은 다 그렇단다.
6
가신단 그 말
무슨 하늘 무너지는 소리랴
그 옛날 부르실 적에 따랐건만
내 주여, 어디로 가신단 말인고.
주님 가실 길 저도 따르오리다
어디인들 못 가오며 죽음인들 외면하랴
내 주님 서신 곳에 나도 서며
내 주님 앉은 곳에 나도 앉으리니
목숨 바쳐 쫓겠나이다.
선생님 물끄러미 바라보시다.
막지 못할 삼 세 번의 거듭 부인이라니
새벽 잠 설친 닭이
둥지 틀며 울어댈 때
네가 크게 울리라
차라리 말이나 말 것을…
7
이제, 기도할 시간
피땀 흘린 자리 뒤돌아보니
모두들 잠들었구나
나약한 육신이여…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해
지친 인생들의 잠을
가엾이 바라보시다.
동틀 녘에 깨우시니
발빠른 무리
아무 죄 없는 선생님을 잡으려는도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다.
저들이 가까이 왔다.
자, 가자…
[당선 소감]
올해 사순(四旬)의 나날들을 나직이 보내는 동안 제 심상(心象)을 어설픈 시어(詩語)로 소박하게나마 담아내려 했을 뿐인데, '수난(受難)의 서곡(序曲)'이 당선작까지 이르러 과분하기 그지없습니다. 예수님의 자취를 이 한 몸으로 얼마나 따를 수 있을까 고민은 하지만 결국 제 갈 길로 떠나고 말 제자들이 제 서글픈 초상(肖像)임을 몇 줄 시를 통해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시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듯, 다시 한 번 가장 낮은 자세로 돌아가라는 견성(見成)의 책(責)으로 알고 제 졸시(拙詩)를 뽑아 주신 분들께 성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아울러서 늘 도움의 손을 펴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리며, 이 모든 일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다만 수난의 길에서도 저를 비롯한 만인을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께 감사의 하염없는 노래를 일생 부르고자 다짐을 곧추 세울 뿐입니다
[심사평]
응모작이 전년에 비해 양적(量的)으로는 약간 줄어들었다. 그러나 작품 수준은 전반적으로 우수한 서정시가 많았다. 이것은 신앙시를 의식하고 쓰던 작의(作意)가 우선, 서정시로의 격식을 갖출 때 어떤 형태의 작품이든 가능성이 있다는 순수예술에의 인식이 확산된 것으로 보아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어떤 종교적 이념이든, 그것은 서정적인 언어로 변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절규가 되거나 기도문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受難의 序曲(수난의 서곡, 김현수)'은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선자가 읽고 느낀 첫인상은 노래하듯 쓴 시요, 훌륭한 칸타타의 가사를 읽는다는 느낌이었다.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인지하고 믿고 있는 극적인 사실을 시로써 그 긴장을 풀어내며 강한 호소력을 전달하는 힘을 갖고있다.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줄거리를 시로 재구성해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로서의 시적인 힘, 신앙적인 감동을 함께 표출한 작품이었다.
당선작 외에 우수한 작품은 '발자국(이종수)', '일몰(유재숙)', '오렌지빛 향기(선광현)', '싸리길의 기억(우봉하)', '사이에 낀 시간(정미자)', '참숯 가마에서(김국종)' 등이다. '고난의 발자국'은 간결함과 어휘 구사의 정확성이 눈길을 끌었다. '일몰'의 경우는 시상(詩想)의 전개가 우수하며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서정시로의 장점을 잘 표현한 느낌이다.
- 심사위원 이성교 시인, 박이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