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신춘기독공보 / 신현주
그대 오시는 날 / 신현주
로즈마리 허브 차를 준비했습니다. 음미(吟味)하며 차 향보다 진한 미소로 행복해 할 그대 모습 떠올립니다. 기뻐하는 그 모습에 온누리 밝아지고 소생(蘇生)케 하는 힘을 얻습니다.
손 씻기 즐기는 그대 위해 세면대 옆에는 하얀 세마포(細麻布) 수건을 걸어 놓았습니다. 햇살 좋은 날 태양 빛을 잔뜩 머금은 겁니다. 정사각형이 되게 걸어 양끝을 잡아당겨도 접었던 자국이 선명합니다.
그대를 위한 식탁에는 올리브유 등잔이 켜지고,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를 개봉하여 기쁨은 충만할 것입니다. 작은 꽃바구니는 민들레 쑥부쟁이 찔레꽃 금낭화 같은 꾸밈없는 들풀로만 장식될 것입니다
그대 머무를 방에는 아가서(雅歌書)와 릴케의 시집을 머리맡에 두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던 눈물 골짜기 변하여 생명 샘이 된 그 애절함을 담은 일기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바로 그대가 이루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책상에는 땅의 시간 다 할 때까지 써도 닳지 않을 만년필을 올려놓겠습니다. 그대는 이제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지 마시고 이 펜을 사용하십시오. 생명책(生命冊)에 그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이 펜으로 또박또박 적으십시오. 내가 그대를 사랑하고 있음도.
그대가 돌아가시는 날, 무지개 빛 작은 보석함을 그대 가방에 살며시 넣어 드리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그대와 나만의 비밀을 간직한 언약의 반지를 담을 금장식이 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함입니다.
기약(期約) 없음에도 내 입술과 내 마음속에 남겨둔 그대의 온기로 살아 왔으나 이제는 결코 혼자 보내지 않을 겁니다. 그 동안, 다시 올 약속 기다리며 준비한 꽃신 신고 꽃단장하고 흰옷 입고 함께 떠날 채비가 되었답니다. 모든 것 훌훌 버리고 그대를 따라 나설 겁니다. 결코 손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여, 어서 오소서.
마라나타
* 마라나타는 신약성서 요한계시록 22:20과 고린도전서 16:22에 나오는 말로서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주 에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뜻이다.
[당선소감]
시간이 고여 세월 되고 보탠 꿈에 눈물로 거름 주니 결합과 분해를 거듭한다. 꽃 피었는가 바라보니 돌연변이다. 부끄러움에도 축복 받으며 입가엔 함박웃음 가득 담는다.
영롱한 보석이 눈에서 쏟아져 내 가슴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려고 다듬어도 죽어야만 나오는 찬란한 빛, 오히려 까맣게 타 버려 탄소가 된다. 아침을 기다리며 어느 날은 말씀 연구로, 어느 날은 기도로, 어느 날은 시로 밤을 새며 뜨거움을 풀어낸다.
누가 봐도 일중독이라는데 쉼은 곧 죽음임을 직감한다. 결과물이 치유라지만 치유를 위해 땀과 피를 쏟는 모순 속에서, 밤을 하얗게 새고도 아침이 오면 일을 시작하는 시간으로 오해한다. 시공을 초월한 종말론적 삶 속에서도 밤마다 꿈틀거리는 열정으로 주님 오심을 기다린다.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기다렸듯, 초대교회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렸듯이, 오늘도 주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목사의 '영성'과 신학자의 '지성'과 시인의 '감성'의 조율을 위해 힘쓰고 있다.
주님을 향한 오랜 기다림을 글로 풀어냈더니 졸작임에도 당선작으로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드리며, 이 감동을 강릉영락교회 교우들과 함께 나눈다.
[심사평] "믿음에서 오는 정서적 안정감"
계절에 따라 새 생명이 돋아나듯이 인간의식도 반복해서 새로워 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중 문학작품을 쓰기 위해 습작하고, 점차 성취도를 높여가는 일련의 작업도 인간의 자유의지로써
얻어낼 수 있는 창조적 성과이다.
그 같은 차원에서 보면 많은 분들이 보내주신 작품들은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이번 작품들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바의 일단이다.
두 선자가 골라 낸 것 중에 <그대 오시는 날>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는 문학적 상상력이 유연하게 발전한다. 입담이 좋은 시인이다.
시적 어법이 간결하고 시어는 사실적이다.
8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연마다 성경에서 얻은 믿음의 말씀들을 바탕에 깔고 있다.
원본이 되는 성경말씀을 토대로 <그대 오시는 날>을 준비하고 고대하는 화자(話者)의 기원은 매우 평온하다.
믿음의 확신에서 얻을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이 시의 내적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신앙인의 일상성으로 '예수님 맞이하기'의 기원을 자연스레 시의 틀을 얹은 것이다.
<오후 4시의 부활(復活)>도 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구약시대의 예언과 신약시대의 그 실현이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염두에 둔 듯 극적인 구성으로 교차되며
시적 성취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오월> <요한 계시록> 등은 서정시가 요구하는 정서의 분출이 십분 발효된 느낌이다.
최종심에 올랐던 작품에 <독서론(讀書論)>, <천둥에게>, <갑바도기아>,
<서양화에서 절규를 보고 동양화에서 희망을 건지다>,<예수>, <나무> 등이 더 있었다.
- 심사위원 이성교, 박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