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31] 소금
소금
―김성규
내소사를 지났다. 비 오고, 늦가을이다. 낙지들이 수조 속에서 한사코 다리를 비트는
곰소항 어느 횟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한다. 나갔던 물이 들어온다. 저기가 고창이지요?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서요. 슬레이트 지붕 처마 끝에서 떨어진 낙숫물이 튄다. 신발이 젖는다. 생면부지, 전혀 모르는 사내다.
―김성규 (1977~ )
가을이 깊어집니다. 단풍 구경 다니는 차들과 그 차들이 싣고 다니는 관광객의 옷차림도 울긋불긋해집니다만 홀로 오솔길을 따라가는 무채색의 방랑객도 남모르게 많아집니다.
조락(凋落)과 석양과 썰물의 풍경 속에 있고 싶은 여행객은 서해의 고적한 마을을 순례합니다. 일기예보와 관계없는 여정이라 중간에 비를 맞기도 합니다. 시간 다툼 할 일 없으니
아무나의 처마 밑에서 늦가을 비와도 사귑니다.
'나갔던 물'이 들어오는 밀물 시간에는 낮게 깔렸던 마음도 얼마간 설레게 마련이지만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고' '생면부지'에게 고백이라도 해야 하는 삶은 밀물 건너편의 '고창'이나 바라봅니다.
듣는 이쪽도 '젖는 신발'에게 무엇인가 고백합니다. '소금' 같은 침묵입니다. 나도 그 곁에 앉아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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