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세계는 얼마나 넓은 것일까 란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아마 그것은 우주의 어떠한 지식들과 맞담아 있을 것이다.
나는 공부를 깊게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찍이 포기했다. 그래서 겉핥기 식으로 깊게 말고 여러가지 종류로 넓게 꿈을 펼치기로 했다. 각자가 꿈꾸는 세계관은 다르다. 세계관 역시 여러가지이고 이로써 품어져 나오는 생활과 생각의 토대의 양상 역시 여러가지일 것이다.
어떠한 기사는 무의식이 의식과 이어져서 습관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았을땐, 나의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생각의 깊이와 넓이 같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 암튼,, ,, .. . 그것은 중요하다. 생각한다고로존재한다는 명언은 누군가가 한 실제 말이고 그것은 철학의 하나이나 기독교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여러 철학자들이 한 말들이 있다.
20살 중반까지 나는 주로 구두를 싣고 다니기를 즐겼었는데, 그것은 혹 나중에 걷기 힘들어질 때를 예비하기 위해서였다. 걷는 각도와 속도를 기억하고 그것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시내에 구두를 싸게 파는 곳을 많이 갔었고 쿠팡에서 주로 주문을 넣는 것은 구두였다. 구두보다는 단화가 맞는 것일까. 3샌치까지는 신고다녔으니 단화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했다. 책은 의기소침하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좋은 친구였다. 아직 친구이긴 하지만 바쁘고 눈이 뻑뻑한 탓에 요세는 많이 읽지는 못한다. 덕분에 대신 나는 생각이 빠르고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 문제가 생길지라도 생활의 기반 상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쓰기를 배우려고 했다. 아니 20대가 들어서기 전 나의 꿈은 책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정서의 안정으로 치료를 자발적으로 했기때문에 그것을 나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의 구성과 순서로 글을 쓰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긴 글은 쓰지 못한다. 대신 여러 종류의 글로 나뉘는 간단한 글은 쓸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의식적일 때는 글을 쓰지 못한다. 의식적으로만 써야하는 양식들이 나의 생각을 막기 때문이다.
글 쓰기를 통해 나의 문제나 스트레스를 돌려서 생각하고 이야기를 만들듯이 바꾸어 생각을 전환하는 방법을 주로 쓰고 있다. 덕분에 나는 내가 아픈 것에 대해 주변에 많이 들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