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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크 랑시에르의 인터뷰를 모아 엮은 것이다. 인터뷰 모음집이란 특성상 랑시에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나에게는,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낯선 용어들과 익숙하지 않은 내용들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매체들과의 인터뷰 질문과 답변을 접하면서, 랑시에르의 사상과 철학적 토대들이 지닌 특징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여기에 수록된 내용들은 1976년의 첫 인터뷰로부터 마지막 인터뷰인 2009년까지는 30년을 훌쩍 넘긴 기간의 기록이라고 하겠다. 그래서인지 패기 넘치던 30대의 젊은 모습으로부터 70을 목전에 둔 노학자의 원숙한 깊이를 지닌 생각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여러 해 전에 랑시에르가 한국에서 열린 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 기사를 읽으면서 랑시에르라는 인물은 그저 영화와 관련된 저명인사 정도로 기억했었던 것 같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주요 내용은 영화와 관련된 것이라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랑시에르의 주 전공이 철학이라는 사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지닌 비판적 지식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그의 진면목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영화와 정치, 글쓰기와 철학, 사회 현실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들, 언어와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깊이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대담자들의 질문과 랑시에르의 답변을 통해서, 그의 관심 영역이 방대한 분야에 걸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랑시에르는 알튀세르에게서 학문을 배웠지만, 지나치게 이론적이었던 알튀세르의 입장에 반발해 결별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철학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노동자 등 사회의 소수자들과의 연대를 중시하고, 오래된 문서들에 담긴 의미를 자신만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의 답변들을 통해서 알튀세르와의 만남과 결별, 마르크스 이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 영화에 관심을 갖으면서 독특한 영화론을 전개하는 것 등등 그의 삶의 궤적이 진솔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첫 인터뷰가 바로 영화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은 그가 일찍부터 지녀온 영화에의 관심의 일단을 확인시켜준다고 하겠다. 영화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앞부분의 인터뷰들을 읽으면서, 그의 답변에서 거론되는 영화 제목들이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여 처음에는 그저 영화에 대한 그의 생각들만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질문과 답변을 통하여, 비록 거론되는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할지라도 랑시에르가 지닌 영화에 대한 철학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주로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점차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미학을 정립하여 여러 권의 관련 서적을 출간했다고 한다. 노년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영화에 대한 관심을 통해서, 랑시에르에게 영화라는 장르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피곤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라는 이 책의 부제도, <르몽드>지에 실렸던 글을 이 책에 수록하면서 다시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는 평생 다양한 분야의 저서들을 출간했는데, 인터뷰들은 대체로 랑시에르의 저서들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적 궤적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과 답변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 진행된 인터뷰들에서는 60대에 접어든 그의 사유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때로는 철학이 주전공이라 구체적인 문제보다는 다소 추상적이고 개념 위주로 사고하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아마도 랑시에르의 저서들에 대해서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그가 거론하는 영화나 사건 등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인터뷰들에서 반복적으로 토로되는 그의 말을 통해, 조금씩 랑시에르 사상의 본질적 이해에 다가설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가 사용하는 표현들이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예컨대 ‘계쟁’이나 ‘몫이 없는 자의 몫’ 그리고 ‘말 없는 말’ 등이 바로 그러하다. 예컨대 ‘몫이 없는 자들’은 ‘자신의 말이 말로 셈해지지 않는 자들, 자신의 활동이 오로지 사적인 것으로만 간주되던 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러한 표현들을 소수자들의 정당한 몫이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에서 그들의 몫을 제대로 인정해야한다는 의미로 읽었다. 또한 계쟁(litige)으로 변역되는 용어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일종의 갈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소수자들과 주류 사회와의 이해가 충돌하는 방식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그가 사용하는 용어들에 대해서 아직까지 명확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답변 속에서 어느 정도 어렴풋한 개념 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을 수확으로 여기기로 했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의 저서들을 통해서 확인해 볼 것을 기약한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랑시에르와 그의 사상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서서히 어떤 형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여겨졌다. 특히 후반부에 수록된 글들에서는 대담자들이 질문을 던지는 질문 속에서 랑시에르 사상의 특징들을 정리하기 때문에, 앞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용어나 내용들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대담자들이 질문에 앞서, 랑시에르의 저작이나 철학적 사유의 바탕에 깔린 문제들에 대해 요약적으로 제시하면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랑시에르의 답변을 통해서,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비판적 지성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랑시에르와 그의 사상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900면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인터뷰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그의 생각들에 대해 깊이 있게 접할 수 있었다. 거듭되는 대담자들의 질문과 랑시에르의 답변을 통해서, 철학과 영화를 비롯한 현실의 문제에 대한 그의 사상적 면모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이제 그의 저작들을 하나씩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마도 그때는 이 책이 보다 깊이 있는 독서를 위한 좋은 지침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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