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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정말 마음에 드는 장소를 만나면,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때로는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을 하면서, 그동안 살았던 익숙한 공간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구체적인 공간에 머물고, 그곳에서 나만의 삶을 꾸리고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장소’가 필요하다. 그 장소에 얽힌 좋고 나쁜 경험들은 그대로 내 삶의 궤적이 되고, 내 기억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동일한 사건을 경험했던 이들이라도, 그곳에서의 기억이나 느낌은 사람들마다 제각기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유쾌했던 일이 다른 이들에게는 불쾌한 기억으로 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동일한 장소에서 서로 다르게 느끼는 생각은 단순히 개인적인 느낌이나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이라 하겠다. 특히 ‘남성/여성’으로 구별되어 각각의 ‘장소’가 환기하는 기억과 의미가 다르다면, 그것은 차별과 억압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할 중요한 문제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고 느꼈던 ‘장소’에 대한 의미를 천착하게 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이 책에서는 모두 13개의 장소를 목차로 제시하면서, 각각의 장소가 ‘남성/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예컨대 가장 앞에 제시된 ‘부엌’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아마도 대부분의 남성들은 ‘어머니’ 혹은 ‘집밥’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연상될 것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사람들에게 ‘집밥’은 강렬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이다. 그러나 '부엌'이라는 공간은 남성들에게는 구체적인 생활이 아닌, 단지 이미지로 환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통적인 관습에서 '부엌'은 남성들과는 유리된 공간이자. 가까이 하면 안되는 곳으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머니 혹은 딸로 이어지는 ‘여성’들이라고 생각했다.
간혹 언론에서 주부들의 가정에서의 노동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기도 하지만, 부엌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정에서의 노동은 ‘여전히 유노동 무임금’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른바 '명절 증후군'이라 소개되는 상황은 이러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명절 연휴에 여성들은 부엌일에 매달리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안방이나 거실에 편안하게 밥상과 술상을 받는 모습이 연상된다. 물론 최근에는 ‘직장에 다니는 아내와 가정을 돌보는 남편’이라는 경우가 언론 등에 소개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하겠다. 그래서 “부엌일은 이토록 필수적이고 귀중한데, 왜 사회적 기술이 아닌 것일까?”라는 저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부엌일은 누가 누구를 돕는 차원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 마땅히 해야할 일로 인식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이밖에도 연단과 교실 그리고 광장 등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장소’를 통해, 남녀 간의 성차별과 여성에 억압적인 현실에 대해서 고발하고 있다. 예컨대 젊은 남성 혼자만의 여행은 대견스럽게 생각하지만, 젊은 여성 혼자만의 여행에 대해서는 별스럽게 생각하는 ‘여행지’의 시선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직장이나 사회단체의 회의에서도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성행하고 있음을 경험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제시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여성들이 저자와 유사한 경험을 겪었던 기억을 꼽는다면 추가되는 목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구체적인 ‘장소’를 통해 이뤄지고 있지만, 실상 그 이면에는 남성중심의 제도와 관습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각각의 장소에서도 성차별적인 행위가 없어져야 하겠지만, 문제의 근원은 역시 남성중심의 사고와 인식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남성/여성’의 차원이 아닌, 개별적인 ‘인간’의 시각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와 관습 속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있는 ‘성차별적 현상’을 하나씩 줄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차니)
같은 장소를 대하더라도 사람마다 그에 대한 감정과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면, 분명 그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명예남성'으로 인식하였고, 그러한 삶을 반성하며 젠더 관점에서 우리의 문화를 자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하여 같은 장소라도 성별에 따라, 그 역할과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우리의 고착된 관습과 문화에서 비롯되었음을 이 책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차츰 변하고 있다는 것이 인지되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여전히 남성중심 문화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가 주시하면서 그 의미를 고찰한 장소는 모두 13개로 부엌, 연단, 교실, 광장, 거리, 쇼핑센터, 여행지, 장례식장, 화장실, 일터, 헬스클럽, 파티장, 회의장 등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저자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 반영되어 있지만, 대체로 저자가 소개하는 공간들의 특징은 여전히 남성중심의 문화가 짙게 녹아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제시한 ‘부엌’은 한 가정의 건강을 책임지는 장소이면서,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공간'으로 인식되어온 곳이다. 과거에는 남자들이 부엌 근처에만 가도 '남자가 부엌에 가면~'하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엌은 여자들의 장소라는 관습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21세기의 현실에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러한 말들이 통용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남성중심적 문화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두 번째 장소인 ‘연단’은 대중들에게 연설을 하는 곳이다. 저자는 그동안 '연단은 성별화된 이분법의 중심 장소 중에서도 두드러진'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사회가 변해가고 있기에 '잘나고 높으신 분들이 독점하는 권위주의 장소로서의 연단'이 아니라, 격식과 지위를 따지지 않는 장소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생각의 저변에 아마도 연단이 가지는 기존의 권위적인 고정관념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남성과 권력자들에 의해 독점되지 않는, 여성과 소수자들도 자유롭게 올라설 수 있는 연단을 만들자는 저자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과 달리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부하던 시절, ‘교실’은 어쩌면 성차별이 발생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대체로 여학교에서는 '신사임당'으로 상징되는 '현모양처(賢母良妻)'가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런데 실제의 신사임당은 '현모'일지언정, 결코 오늘날의 기준으로 ‘양처’라고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권위적인 남편을 떠나 친정에서 자식들을 키웠던 매우 주체적인 여성상이었음에도, 20세기의 교실에서는 신사임당의 모습을 왜곡시켜 학생들에게 강요했었다. 어쨌든 모든 가치가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침윤되어 있었기에, 저자가 겪은 '교실'의 풍경은 여성차별로 기억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남성중심적인 문화의 조선시대 에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신사임당처럼 오늘날의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거론되는 장소는 바로 ‘광장’이다. 대중들이 모인 장소를 '광장'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남성중심적 문화가 관철되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공간보다는 보다 자유로운 '평등 관계'가 형성되었고, 소수자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넓다고 광장이 아니고, 모인 사람이 많다고 광장이 아니라, 소속 출신 성별 등을 따지지 않고 공동의 세계를 함께 만들려는 포용의 광장이라야 진짜 광징'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장소에 대한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사회적 문화적 맥락까지를 고려해야만 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저자가 경험한 ‘거리’ 역시 남성과 여성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장소라 할 수 있다. 과거 여성들의 옷차림이 남성들의 성적 호기심을 유발한다는 해괴한 논법이 통용되기도 했었고, 여성들이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을 경고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인식 역시 일종의 '거리의 성차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성별에 따른 ‘박탈과 배제’의 논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성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안정한 거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특정한 사람에게 안전하지 않은 거리는 누구에게도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쇼핑센터’로 대표되는 장소는 여성들을 위한 공간인 것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소비자이자 동시에 응대하는 노동자로서 시장과 쇼핑센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존재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다수일 뿐 아니라 그 장소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면서도' 여성들이 괄시받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여행지’에서 느꼈던 여성에 대한 부당한 시선에 대해서도 진술하고 있다. 특히 혼자 여행을 하는 경우, 여전히 여성을 특별히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숙소의 경우 여성 혼자 투숙하려고 하면 방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남학생들에게는 이른바 '무전여행'이라도 갈 것을 강조하면서, 여성은 그저 조신하게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안전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에서의 장례식 문화는 남성이 주도를 하고, 여성들은 배경처럼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아닌 아들이 상주가 되고, 아내가 죽으면 남편은 상복조차 입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별적 관습'이 당연한 풍속인 것처럼 여겨지는 문화는 평등한 관뎨가 성립하는 환경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저자 역시 이러한 ‘장례식장’의 문화에 대해서 그 부당성을 절감하면서, 반드시 고쳐져야 할 관습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새삼 발견하게 되는 우리 일상에서의 성차별적인 문화들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도 집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야만 하는 ‘화장실’은 여성들에게 편안하지 못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여러 해 전에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화장실 몰카'로 대표되는 각종 범죄의 주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변에 화장실을 찾아볼 수 없는 환경에서 정작 '볼일'이 급할 때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대부분 그냥 참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겐 존엄성을 존중받는 화장실, 안전하고 위생적인 화장실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화장실 평등은 모든 평등의 출발이다." 화장실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인식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다.
이밖에도 저자는 일터와 헬스클럽, 그리고 파티장과 회의장 등에서 발견되는 ‘성차별’의 현상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무심하게 생각했던 장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서있는 위치가 다르면 보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실감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남성으로 살아오면서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들을 저자를 통해서 여성의 위치에서 조금은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상 그것은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가 오랜 동안 습속으로 만들어 온 것일 터이다. 누군가는 그러한 습속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른 입장에서 그것은 그저 불평등의 지속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이 나왔을 것이다. 여전히 평평한 구도를 만들어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남성들은 평등으로의 변화를 혜택의 박탈 혹은 상실감으로 느끼는 이들도 있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래서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인식이 필요한 것이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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