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의 이름은 왜 아론이어야 할까?
글: 김수경 Esther 목사
▪️본문: 레위기 16장 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אַהֲרוֹן)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אָרוֹן)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레 16:2, 개역한글)
And the LORD said unto Moses, Speak unto Aaron(אַהֲרוֹן) thy brother, that he come not at all times into the holy place within the vail before the mercy seat, which is upon the ark(אָרוֹן); that he die not: for I will appear in the cloud upon the mercy seat.(Leviticus 16:2, KJV)
🔹아론의 비밀🔹
생명 없는 조각목에서 거룩한 대제사장으로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 언제입니까?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티쉬리월(7월) 10일 욤 키푸르(יום כיפור) 대속죄일(Day of Atonement)'이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속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대제사장입니다.
성경에는 우연히 기록된 이름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전도서 7장 1절에서 “좋은(טוֹב 토브) 이름이 좋은(טוֹב 토브) 기름보다 낫다”(A good (טוֹב 토브) name is better than precious (טוֹב 토브) ointment;)고 고백하듯,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마다 우리를 향한 사랑과 구속사의 비밀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대제사장, '아론'입니다.
왜 이스라엘의 예배를 책임지는 첫 대제사장의 이름이 ‘아론'이어야 했을까요?
레위기 16장 2절, 그 침묵의 지성소 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첫째, 언약궤의 히브리어는 ‘아론(אָרוֹן)’
영문 성경을 보면 성경 전체에서 ‘방주’나 ‘상자’를 뜻하는 단어로 ‘Ark’가 쓰인 곳은 딱 세 군데입니다. 홍수 속의 ‘노아의 방주’, 갈대밭에 버려진 ‘모세의 상자’, 그리고 지성소 안의 ‘언약궤’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가슴 뛰는 차이가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상자는 거친 비바람을 막아주는 배를 뜻하는 '테바(תֵּבָה)'라는 단어를 쓰지만, 오직 지성소의 언약궤만은 히브리어로 '아론(אָרוֹן)'이라 부릅니다.
대제사장의 이름과 지성소 안의 언약궤는
놀랍게도 같은 이름입니다!
둘째, 나무 상자에 하나님의 호흡(헤이, ה)이 머물 때 생명이 시작
언약궤, 즉 히브리어 ‘아론’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광야의 메마른 땅에서 거칠게 자라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쓸모없고 생명 없는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짜인 상자일 뿐입니다.
그저 메마른 나무 상자에 불과했던 그 ‘아론(אָרוֹן)’에, 하나님의 숨결이자 거룩한 생명을 뜻하는 히브리어 알파벳 '헤이(ה)'가 스며들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글자 그대로 죽어있던 나무 궤인 '아론'에 하나님의 생명이 더해지자, 비로소 살아 숨 쉬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간 대제사장 '아하론(אַהֲרֹן, 아론 Aaron)'으로 피어난 것입니다.
셋째, 메마른 삶에 생명을 채워 넣으시는 하나님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일하심입니다. 사라를 통한 자식이 없이 늙어가던 메마른 노인 아브람과 사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호흡인 '헤이'를 불어넣어 아브라함과 사라라는 살아 숨쉬는 이름으로 새롭게 빚으셨고, 마침내 새 생명인 '이삭'을 웃음으로 피워내셨습니다.
대제사장 아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금송아지를 만들며 무너졌던 죄인이요, 본질은 그저 아무 가치 없는 조각목(쉿팀 Shittim) 상자(아론)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숨결이 임하자, 그는 1년에 단 하루 속죄일에 온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피를 들고 지성소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만나는 대제사장 아론이 되었습니다.
넷째, 광야의 조각목 같은 이들을 부르고 연단하심
이제 고개를 돌려 오늘 우리의 삶을 바라봅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광야의 온갖 차가운 비바람과 거친 풍파에 시달리는 조각목처럼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분이 계십니까?
남들과 비교하며 '나 자신은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없다'고 생각한 채, 낮은 자존감과 깊은 우울함의 나날을 보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반드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가장 거룩한 언약궤는 볼품없는 조각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임할 때 우리는 '정금'같이 단련된 거룩한 백성이며 왕같은 제사장으로 거듭납니다.
아무 가치 없는 조각목 같은 우리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의 생명(헤이)이 그 중심에 들어가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광야의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 철저히 다듬어지고 단련되어, 결국 조각목 위를 정결하게 덮는 '빛나는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혹독한 풀무불 연단의 시간을 통과한 자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거친 상황과 절망 앞에서도 꿋꿋하게 일어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세와 아론처럼, 이 시대를 치유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에 실어나르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당당히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은 ‘움직이는 언약궤’📜
언약궤의 히브리어 아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스라엘의 첫 대제사장이 되어야 했던 이유는, “너는 비록 광야의 조각목처럼 메마르고 생명 없는 존재일지라도, 내 숨결을 불어넣어 너를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나의 제사장으로 삼겠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포입니다.
우리 자신은 여전히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조각목 상자 같을지라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의 말씀이 살아 숨 쉰다면, 우리는 성령 안에서 움직이는 언약궤가 되어 즉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성도가 되어 이 어두운 세상을 치유하고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바람에 상처 입은 조각목 같은 우리를 정금 같은 제사장으로 빚어 가시는 그 위대한 생명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베푸시는 아론의 은혜가 오늘 지치고 낙심하기에 충분한 우리의 삶 위에 눈물겨운 위로와 소망으로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 묵상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 저희는 아무 생명 없고 볼품없는 광야의 조각목 상자가 하나님의 숨결을 만나 거룩한 대제사장 아론으로 피어났는지, 성경의 이름 하나 속에서도 저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구속의 신비를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지금 저희 주변에는 광야의 거친 비바람과 차가운 풍파에 시달리며, 겉도 속도 모두 상해버린 조각목처럼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물론 저희 자신도 종종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가 있습니다.
마귀가 속삭이는 부정적인 자아상에 속아서 "나는 왜 이리 초라할까, 왜 이리 볼품없을까" 낙심하며, 낮은 자존감과 깊은 우울함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연약한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세상은 저희를 쓸모없다 버릴지라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거칠고 마른 조각목을 택하시고 풀무불 속에서 연단하시어 하나님의 임재를 담는 가장 거룩한 언약궤로 빚으셨음을 믿습니다.
메마른 저희 심령 가운데 거룩한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모세와 아론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희도 이 어두운 세상을 치유하고 주님의 복음을 실어나르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게 오늘도 성령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광야의 비바람 속에서 상처 입은 조각목을 정금 같은 제사장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위대한 은혜와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저희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수경 Esther 목사
The 2nd Life Foundation 대표
뉴욕퀸즈교회 담임
이승만 기념사업회 장학재단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