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동 음악다방 <세시봉>.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등은 이 곳에서 영어 팝송을 번안하거나 자작곡을 선보였다.
낭만적인 청춘의 언어를 노래했다.
<세시봉(C’est Si Bon)>은 원래 프랑스 국적의 이탈리아계 가수 이브 몽탕이 부른 샹송.
영어의 ‘It’s so good’과 같은 뜻이다.
세시봉은 1953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대중 음악 감상실이었다.
1968년 송창식과 윤형주가 세시봉에서 <트윈 폴리오>를 결성했다.
악보를 구하기 쉽지 않던 시절, 미8군으로부터 간간이 흘러나오는 악보를 <송 폴리오(Song folio)>이라고 했다.
<트윈 폴리오(Twin folio)>는 ‘두 장의 악보’란 뜻이다.
두 사람은 1969년 말 <트윈 폴리오> 해체를 선언하고 솔로로 전향해 각자 다른 음악을 선보였고, 대중의 사랑도 계속됐다.
송창식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시작으로 <왜 불러> <담배 가게 아가씨> <한 번쯤> <사랑이야> <가나다라> 등을 작사, 작곡해 노래까지 불렀다.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고래사냥>은 최인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바보들의 행진>에서 극중 영철의 주제가로 쓰였다.
"나는 다음에 무진장 돈을 벌 겁니다. 빨간 지붕 양옥집을 살 겁니다. 정원에는 장미도 심고, 자가용도 살 겁니다. 나는 내 힘으로 돈을 벌 겁니다. 그리고 난 고래 사냥을 갈 겁니다.”
‘고래’는 평범한 청춘들의 꿈과 희망을 상징했다.
작사는 최인호, 작곡은 송창식이 했다.
대학 다닐 때 학교 응원가이기도 했다.
윤형주는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30분 만에 곡을 만들었다.
"조개껍질 묶어 / 그녀의 목에 걸고 / 불가에 마주 앉아 / 밤새 속삭이네 / 저 멀리 달그림자 / 시원한 파도소리 /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 잠은 오질 않네"
대천해수욕장의 백사장은 바다가 밀어올린 조개껍데기가 가루가 된 패각백사장이다.
패각백사장은 동양에선 유일하다고 한다.
대천해수욕장 분수광장엔 윤형주의 노래비가 있다.
'별의 시인' 윤동주의 육촌 동생 윤형주는 별을 노래하기도 했다.
"저 별은 나의 별 / 저 별은 너의 별 / 별빛에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
독일어 원곡의 번안곡 <두 개의 작은 별>이다.
세시봉 멤버들에게 음악은 공동 창작물이었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 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 피맺힌 투쟁의 흐름 속에 /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위에 /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 누구의 앞길에서 환히 비치나 / 찬란한 선조의 문화 속에 /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 앞에 /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 이 땅에 순결하게 얽힌 겨레여/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애국가’를 연상케 하는 이 곡은 김민기가 작사했고, 송창식이 곡을 썼다.
음반에 처음으로 수록한 이는 조영남이었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걸 / 사랑받는 그 순간보다 흐뭇한 건 없을걸 / 사랑의 눈길보다 정다운 건 없을걸 / 스쳐 닿는 그 손끝보다 짜릿한 건 없을걸 / 혼자선 알 수 없는 야릇한 기쁨"
김세환의 대표곡 <사랑하는 마음>은 송창식이 작사, 작곡했다.
김세환의 히트곡 <길가에 앉아서>는 윤형주, <좋은 걸 어떡해>는 이장희가 작곡했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학생이던 김세환은 윤형주의 소개로 1971년 이종환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미소 짓는 밝은 표정의 김세환은 포근한 목소리로 사랑을 받았다.
조영남은 TV 데뷔 때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1968년 TBC <쇼쇼쇼>에 야전점퍼에 검정테 안경을 쓰고 출연했다.
자신의 번안곡 <딜라일라>를 절규하듯이 노래하다 급기야는 상의를 벗고 러닝셔츠를 찢으면서 뒹굴었다.
<딜라일라>는 원래 톰 존스의 노래.
딜라일라는 구약성서 속 삼손을 배반한 델릴라의 영어식 발음이다.
조영남은 상처를 안기고 떠난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노랫말을 썼다.
이후 밀려드는 공연을 소화하느라 서울대 음대를 자퇴했다.
1970년 서울시민회관(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씨스터즈> 내한공연에 당시 인기 폭발이던 조영남이 초대가수로 출연했다.
무심코 <신고산타령>을 개사해 불렀다.
"신고사니이∼와르르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 얼떨결에 깔린 사람이 아우성을 치누나∼"
공연을 보던 경찰간부가 분노했고, 병역을 미루던 조영남은 병역기피로 구속 위기에 처했다.
우리나라 첫 여성 변호사 이태영 박사가 중재에 나섰다.
이 박사는 정대철 헌정회장(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의 어머니다.
"정치적으로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조영남은 순진무구한 가수일 뿐이다. 병역 기피죄로 감옥에 가두면 뭐가 시원하겠느냐. 내가 보증을 서겠다. 한 달 이내에 꼭 군대에 책임지고 보내겠다.”
사건은 구속 대신 군입대로 마무리됐다.
1987년 김한길과 옥수동의 열 평짜리 사글세방에서 함께 백수생활을 했다.
두 사람 모두 미국에서 단신 귀국했던 터였다.
1980년대 초반 조영남이 미국 서부 공연할 때 만난 주미 주재 신문 기자가 김한길이었다.
조영남은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김홍신(전 신한국당 국회의원)을 통해 그의 건국대 후배 김한길을 소개받았다.
어느 날, 김한길이 ‘섬진강 주변 500여 가구 훈훈한 교류’란 제목의 화개장터 기사를 가져왔다.
김한길이 작사하고, 조영남은 기타 선율을 얹었다.
<화개장터>다.
김세환,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 세시봉 원년 멤버들이 어제(10월 11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이상벽MC의 사회로 <마지막 콘서트>를 열었다.
정대철 국회헌정회장의 초청으로 콘서트에 다녀왔다.
1972년생인 내게 세시봉 멤버들은 한 세대 이전 분들이지만, 그들의 음악은 CD, 라디오 방송, KBS <열린음악회> 등을 통해 친숙하다.
정치부 기자 시절 정대철, 김한길 의원을 취재하면서 가끔 조영남 씨를 만난 일이 있다.
국회의원이던 2023년 TV조선의 <노래하는 대한민국, 영호남노래자랑> 녹화 때 정치인으로서 정대철 회장과 나, 두 사람만 초청을 받았는데, 초청 가수는 <화개장터>의 조영남 씨였다.
가을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 콘서트장은 시작 한 시간 전부터 60, 70세 팬들이 길게 줄을 섰다.
공연 중간중간 "오빠!" 소리가 터졌다.
떼창을 하고, 핸드폰 플래시 라이트를 켜 손을 흔들었다.
열정은 20, 30대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상벽MC는 "세시봉은 57년간 익어왔다"고 했다.
세시봉은 <마지막> 공연임을 약속했지만,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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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사진 윗줄 왼쪽은 울릉도에 있는 가수 이장희의 축하 영상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