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1
9. 사랑 손님과 어머니 줄거리(주요섭)
옥희네 집에는 세 식구가 산다. 한 사람은 스물네 살 난 과수댁인 옥희 어머니이고, 또 한 사람은 중학교에 다니는 외삼촌이다. 그런 옥희네 집에 낯선 손님이 나타난다. 그는 큰외삼촌의 친구이고 죽은 옥희 아버지의 친구이기도 한데, 옥희네 동네의 교사로 부임해와, 마침 하숙할 곳이 적당하지 않아서 옥희네 사랑채에 들게 된 것이다. 옥희는 그 사랑방 손님이 좋다. 어느 날 옥희가 점심을 먹고 사랑에 나가보니 아저씨가 점심을 먹고 있다. 그는 옥희는 어떤 반찬을 제일 좋아하누? 하고 묻는다. 옥희는 삶은 달걀이 좋다고 한다. 그러자 아저씨도 삶은 달걀이 제일 좋다고 한다. 옥희는 뛸 듯이 기뻐하며 안방으로 뛰어가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그후 옥희는 매일 좋아하는 달걀을 먹게 된다. 그러던 어느, 옥희는 어머니를 놀라게 해주려고 벽장 속에 숨었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집안에서는 옥희를 찾아 야단이 난다. 그 일이 있은 다음날 옥희는 어머니에게 좀 좋은 일을 해주고 싶어서 유치원 선생님 책상 위에 꽂힌 빨간 꽃을 가져다 어머니에게 준다. 어머니가 그 꽃은 어디서 났니? 퍽 곱구나 하고 묻자, 옥희는 엉겹결에 사랑아저씨가 엄마 갖다주라고 줬다고 대답해버린다. 엄마의 반응은 아주 예상 밖으로 나타나, 몹시 놀라며 그런 걸 받아오면 안 된다고 야단친다. 어머니의 표정으로 보아 옥희는 그 꽃이 곧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니는 꽃병에 꽂아서 풍금 위에 놓아둔다. 그 날 밤 옥희는 사랑방에 나가 아저씨 무릎 위에서 논다. 그런데 문득 풍금소리가 울려나오는 것이다. 옥희는 안방으로 뛰어가 본다. 거기에는 소복을 하고 달빛을 받으며 풍금을 타는 어머니가 있는데 두 뺨에선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딸을 보고 말한다. 옥희야! 너 하나문 그뿐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아저씨는 어머니에게 전하라고 옥희에게 봉투를 준다. 그것을 받은 어머니는 몹시 당황하며 봉투를 연다. 거기에는 밥값과 함께 종이쪽지가 들어 이다. 그날 밤 옥희는 밤 중에 깨어나, 어머니가 아버지 옷을 꺼내놓고 앉아 있는 것을 본다. 어머니는 옥희와 함께 기도하다가, 시험에 들지 말게......시험에 들지말게..... 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그후 어머니는 어떤 때는 매우 즐거워하다가 금세 풀이 죽어 우울해하곤 한다.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옥희는 아저씨가 짐을 꾸리는 것을 본다. 어머니는 옥희와 함께 언덕에 올라가, 아저씨가 탄 기차가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가 찬송가 책갈피에 고이 꽂아 두었던 꽃송이들도 아저씨의 떠남과 함께 버려진다. <조광(1935)>
핵심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 배경 : 1930년대, 예배당과 유치원과 학교가 있는 어느 조그만 마을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문체 : 섬세한 여성적 문체. 경어체. 구어체
- 표현 : 인간의 심리를 어린애를 통해 보여 줌
- 구성 : 평면적 순행 구성으로, 사랑손님과 어머니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특별한 사건 없이도 생생하게 포착되고 있다.
- 주제 : '어머니'와 '사랑손님' 사이의 애틋한 사랑과 전통적 인습 사이의 갈등. 어머니와 사랑손님과의 사랑
등장 인물
- 어머니 : 젊은 과부로서, 죽은 남편의 친구인 사랑 손님에게 연모의 마음을 갖지만,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아이에 대한 사랑. 세상 사람들의 이목 등 당대 풍습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는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고 마는 여인.
- 나(옥희) :여섯 살 난 계집아이로, 이 작품의 관찰자로 등장하여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는 역할을 맡음. 어머니와 아저씨의 사랑을 순수한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대로 기술함.
- 아저씨 : 옥희 아버지의 친구로, 학교 선생으로 부임해 옥희의 집에 하숙을 함. 옥희 어머니를 사모하지만 결국 그녀의 곁을 떠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한국 소설사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나'는 실제적인 화자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미묘한 연정 속에 갈등. 번민하는 어머니의 심리적 추이를 뚜렷하게 묘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어린아이의 천진한 눈과 감수성을 통해 사건을 관찰함으로써 어른들 사이의 애정 문제를 깨끗하고 신선한 감각으로 처리하였다. 여기에서 어린 소녀의 천진난만한 태도와 호기심도 큰 몫을 담당한다. 서술자가 어린이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심리 세계가 지닌 세부적 갈등의 내용은 나타나지 않으나 그 미묘한 태도와 분위기가 주된 서술 대상이 된다. 어린 딸을 두고 남편의 추억을 간직하며 살아가려는 의지와 새로운 남성에 대한 미묘한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옥희 어머니의 모습이 더욱 애틋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동심의 눈을 통해 젊은 미망인과 남편의 옛 친구 사이의 미묘한 연정과 심리적 갈등을 선명하게 부각시킨 소설이다. 특히 어린 소녀를 관찰자로 삼음으로써 자칫 잘못하면 세속적인 사랑의 불륜 관계라든가 멜로드라마적인 상황의 전개가 될 뻔한 이야기들이 동심의 경이와 신비에 의해 고도의 예술적 향취로 승화되었으며 1인칭 소설이 빠지기 쉬운 감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단락 단락이 하나의 완결된 구조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어 열거식 구성 형태를 지닌 이 작품은 읽는 이에게 선명한 인상을 주며 세련된 필치와 재치 있는 대화로 사건의 전개를 아기자기 하게 만들고 있다.
어머니와 사랑 손님 사이의 애틋한 사랑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 중심적으로 제기되는 갈등은 인물과 봉건적 윤리 의식의 사회가 가지는 갈등으로 봉건적 애정 윤리가 지닌 비극과 모순을 다루었다. 작품의 주동 인물인 어머니는 세상의 비난을 염려하여 사랑하는 이에 대한 불타는 연정을 포기하고 욕망의 억제와 봉건적 사회 질서가 요구하는 데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식에 집착하는 인종적 여인상을 보여 준다. 이러한 내용의 심각성 속에서 관찰자이며 서술자인 천진난만한 '나'의 행동은 두 어른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전달자 구실을 하는가 하면 마음 속에 싹트는 연정이나 망설임을 뚜렷하게 만들기도 하여 긴장된 사건 전개에 기여한다.
이별의 상황을 예비하는 기차 정거장의 에피소드와 같이 복선의 적절한 사용과 풍금, 달걀, 꽃 등의 소재들을 통한 심리적 매개 관계, 이별을 의미하는 하얀 손수건과 같은 사물의 중의적 사용 등 세련된 기교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작자가 초기의 신경향파 문학에서 벗어나 휴머니즘 계열로 전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의 말기까지도 합친 거의 유일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 황민수 외 <즐거운 소설여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