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떠 놓은 꽃 그림 가장자리에 흰색 호분을 펴 바르고 지분과 섞어놓은 홍매를 꽃의 중심에서부터 조금씩 바르면서 바림을 해 나가면 분홍색 모란꽃이 한 잎씩 피어오른다. 바람이 살랑일 때 느껴지던 모란꽃 잎의 숨결도 그리고 싶지만 나는 그렇게 섬세한 필치로 생동감 있는 숨결을 그려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민화를 그리던 이름 없는 어느 화공의 모란도를 사랑하던 소박한 열정을 생각하며 그리고 있다.
그림에 몰두해 있는 그 시간, 나와 물감과 그림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를 때,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 기쁨을 느끼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모란을 채색하다> 중에서
그날의 숙소 ‘차마객잔’까지는 2시간가량 더 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보다 좀 평탄한 내리막길이라 해도 이미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길들이다.
우리 일행 뒤로는 우리 몇몇의 짐을 나누어지고 노새 한 마리가 거센 숨을 몰아쉬며 마방 아저씨와 함께 따라왔다. 마방 일을 하다가 지금은 쉰다는 그 아저씨는 우리 일행들과 잠시 쉴 때마다 노새의 말발굽 사이에 낀 돌을 빼 주면서 가족처럼 데리고 걸었다. 노새의 짐 사이에는 아저씨가 꽂아놓은 오월의 산철쭉 꽃가지가 노새 걸을 때마다 말방울 소리와 함께 바람처럼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