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무엇보다 어머니를 생각해서 좋다. 나는 칠남매중에 부모님에게
가장 불효한 자식이다. 다른 형제들
과는 다르게 나는 신앙생활 하지
말라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했다. 집안의 제사등 관혼상제가 있을
때는 아버지와 늘 부딪혔다. 초등학교때 이미 나는 아버지와 제사문제로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해 설날 아침, 가족들이 다 차례를 지냈
지만 나는 방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때이다. 그리고
할머니와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는데 아버지께 내가 절을 하려할 때
뒤로 돌아 앉으셨다. "조상님께 절도 안하는 놈이 무슨 애비한테 절을
하나" 나는 당돌하게 "조상님들은 돌아가신 것이고 아버지는 살아계시니
당연히 새해인사를 드려야지요" 끝내 아버지는 나의 세배를 받지
않으셨다. < 참고로, 이런 내용은 주일학교 선생님들에게 신앙교육을
받았던 내용이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을 불효라고 생각했다.
신앙의 문제로 아버지의 뜻을 어긴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여전히
내마음은 불효자라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열살 때(초등학교3학년 여름방학때) 외갓집에 놀러갔다가
외사촌형이 쏜 화살촉에 왼쪽 눈동자를 정통으로 맞아 눈이 실명된
사건이다. 나는 어른이 되어 살아가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께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자주 울기도 했고 자주 무덤을 찾아 혼잣말로
아버지를 부르고 어머니를 부르며 슬프게 울었다. 내가 외갓집에서
눈을 다치고 돌아올 때 외사촌 누이가 나를 데리고 집으로 왔고,
곧 바로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청주 중앙안과로 급히 가셨다. 나는 병원
에서 여러날 치료를 받았고 또 학교도 가지 못하고 거의 한달동안 병원
을 다니곤 했다. 너무 어렸을 때라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
리지 못했고, 또한 외갓집의 외삼촌과 외숙모님 그리고 외사촌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술에 취하신채로 "저놈새끼 눙깔병신, 외갓집에나 가서
살아라" 나는 당시 그 말이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그래서 날이 새면
내 눈의 시력이 상실되었다는 것조차 기억도 안하고 살았다. 그리고
이렇게 긴긴 세월이 흘렀다. 수년전 눈을 적출하고 의안을 넣고 살아야
하는 수술을 두번씩 받았을 때 어머니 생각이 너무 많았다. 두분이서
이야기하실 때 "나의 이야기"가 나오면 어머니는 얼마나 기가 죽은채
힘드셨을까? "저놈, 눙깔병신, 외갓집에 가서 살라고 해!"라고 하실 때
어머니 가슴에 흐른 뜨거운 눈물을 나는 그 당시 알아차리질 못했다.
늦게서 알았지만 외갓집에 큰 일을 치루는 일을 제외하고는 어머니는
외갓집엘 아예 가지 않으셨다. 당연히 아버지도 외갓집엘 가지 않으셨다.
이건 훗날 형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가족모두에게 아픔을 안겼다.
형님도 내 눈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우신다.
나는 어머니께 큰 불효를 하고 죄를 지은 아들이다. 어머니 평생 마음에
못을 박은 못난 놈이다. 어떻게 하나?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돌아가셨으니 어떻게 이
불효한 것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특히 금년에는 왜 그렇게 어머니의
아픔이 보여지는지, 아버지에게 온갓 싫은 소리를 다 들으셔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는지, 꿈속에서라도 어머님을 뵙고 싶다
한번 어머니를 내 가슴으로 안아드리고 그리고 어머니 품에 안겨
위로를 드리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 우리형제들가운데 외갓집이 좋았다.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이 내안에 다른 형제들보다 내 안에 가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갓집은 아름다운 고향이다. 내 고향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자란 곳, 특히 어머니는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고운 딸
이셨고 당시 진사 進士이셨던 부유한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들뿍 받으며
자라셨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일찍 타계하심으로 어머니는
큰 외삼촌의 손에서 그리고 당숙들의 손에서 자라셨다. 그러니 얼마나
부모없이 외롭고 힘드셨을까? 그래서 일제때 조치원 소학교를
다시시다 중도에 그만두시고 계시다가 아버지 고종사촌 형님의 중매로
아버지와 결혼하셨다.
--- 오늘 어머니께 이런 편지를 썼다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가 너무 너무 보고슾습니다.
제 나이가 70이 되었습니다. 지금 살아계시면 어머니를 모시고 외갓집에
한번 가고 싶습니다. 그 때 다친 눈, 이렇게 멀쩡하다고 외갓집 가족들에게
염려끼쳐 미안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이 못난 아들을 용서해 주세요.
다음 주에는 오랫동안 가보지 못했던 외갓집을 다녀올께요. 두 분의
외삼촌을 뵌지 십수년이 지났고 외사촌들도 만나보려고 해요.
어머니 아버지 천국에서 저와 자식들을 보고 계시지요. 아버지께서
생전에 고향관내에서 최고의 명필로 유명하시던 그 붓글씨로 "정직"
이란 글을 습자지에 써서 저희들 방에 걸게 하시고 그렇게 살라고
하신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직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아버지,
오늘, 아버지가 늘 즐겨 부르시던 "동백 아가씨"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