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앓으며 버린 꼰대의식(최철호)
최철호 2018. 02. 09
남자가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하면 한 번 더 쳐다보던 시절이 있었다.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지금도 그것을 현실로 사는 건 쉽지 않을 거다. 8~90년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일상에 드리운 가부장 의식과 문화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칠 때에도 지금 생각하면 내게 이상한 감정이 있었다. 현장을 외면하는 남자들을 보면 “남자들이 어떻게 저렇게 생각 없이 살까!”하면서도, 함께 외치는 여자들을 보면서는 “여자들이 뭐 이러고 있냐!”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어릴 때, 할머니는 손자를 특별대우 하셨고, 남자는 부엌일이나 살림에 얼씬도 못하게 하셨다. 20대 젊은 시절 내 모든 것이 질풍노도와 같이 변했지만 이 부분은 굳건했다.
결혼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직면하게 했다. 아내는 따뜻하고 냉철하게 근원에서 물었다. 물론 아내에게는 불쑥 다가온 십자가였을 거다. 차분하게 할 말 다하는 아내의 물음과 문제제기에 말씨름이 길어질수록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나를 보곤 했다. 엄격한 인식론을 재밌게 공부했고, 많은 논쟁으로 훈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 부질없었다. 궁색할수록 큰 소리 치거나 엉뚱한 걸 갖다 붙여 논점을 흐렸다.
호주제가 있던 그 시절, 혼인신고 하려는데 호주 란에 남편이름을 써야했다. 아내가 생각 좀 해보자고 했다. 말씨름이 벌어졌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러지 말고, 그냥 쓰자. 내가 호주라고 뭘 어떻게 하냐?”하며 짜증을 냈다. “별 것도 아닌데 왜 꼭 이렇게 써야해?” 그래, 맞다. 미세하게 작동하는 부당한 지배문화는 당연한 문제제기를 까칠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멍청하게 잘난 체하는 남편이 내는 짜증으로 더 힘들었을 게다. 이후 아내 손에 이끌려 호주제 반대운동을 함께 했다.
민주, 평화, 생태, 통일이라는 관념이 살아있으려면, 먹고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일상의 삶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내가 감동하고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관념의 진정성과 실제성은 삶에서 검증된다.
나름 잘 나가던 남자들이 밝은누리에 함께 한 뒤, 한동안 혼란을 겪는 일이 생겼다. 아이와 놀아‘주고’, 설거지 ‘해주는’ 좋은 남편, 아빠라 자부했는데, 그 생각 자체가 문제 되기 시작했다. “네가 먹은 것 치우는 데 해주긴 뭘 해줘!” “네 삶 네가 사는 건데!”
옛 삶에 길들여진 말과 무의식이 새 삶에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곤했다. 간혹 사태파악 못하고 길게 헤매는 안타까운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그 때 내가 살았던 꼴 보다는 모두 나은 것 같다.
이제 밝은누리에는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아빠들이 낯설지 않다. 엄마 아빠가 이모 삼촌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자연스럽다. 회의나 공부 할 때도 남자들이 아기들이 함께 하는 게 일상이다. 살림과 육아, 생명살림을 자기 일로 알고 배우지 못한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삶과 괴리된 공허한 관념을 즐기고, 뭔 일이든 경쟁하고, 툭하면 싸우고, 전쟁 소문 무성한 세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