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보니 2003년 부터 나갔던데.....
그리고.... 은진 아빠 말처럼 60의 나이를 먹고 있는 우리니 세월이 무상하지요.
우리가 만났던 한창이던 때를 곱으로 넘어 지나 왔으니 말이요.
나도 몇년 전 부터 소식이 궁금해 찾았는데....
겨우 주 목사님과 전화가 되어 아프리카 선교를 갔다는 말을 듣고 받은 전화번호로 몇번 시도를 했었답니다.
정말 어제는 감격적이었오.
이렇게 찾아 주다니.... 고맙고 감사할뿐이네요.
난 93년 9월 캐나다 갔다가 2004년 6월에 돌아 왔답니다.
딸 아이 둘 대학 졸업을 다하기에 하다가만 사역을 다시 한다고 거제 YMCA 사무총장 맡았었네요.
2년 뒤 2006년 8월 동티모르에 파견가서 현지 조사를 마치고 돌아와 2007년 9월 여기 통영으로 왔어요.
여기는 초기 개척 YMCA라 아직도 헤메고 있고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아마도 딴 짓 적게 했다고 봐주시나봐) 아이들이 제 역할들을 잘해 줘서 그런데로 마음 놓고 산답니다.
작은 아이 가람은 밴쿠버에서 변호사 개업했고 큰 아이 보람은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을 마치고 통번역사가 되어 지금은 S-oil에 근무한답니다. 가람이는 결혼해서 나에게 손자를 안겨 줬는데 요녀석이 벌써 3돐이 지났어요.
보람(77년생)은 적당한 배필을 찾고 있는데.... 그렇네요.ㅎㅎㅎ
우리는 모두 다 캐나다 국적이랍니다. 올 때 생각은 60까지만 하고 캐나다로 돌아가 월페어 받아 살 작정을 했었는데.... 아직도 여기 YMCA가 미자립이니 이것 제대로 세워 놓을려면 3~4년은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참, 나도 동티모르에 갔다 와서 열대의 습성과 기후를 조금은 이해한답니다.
3달만에 5Kg씩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더만요.
개에게 물렸었는데 파상풍 주사 맞을데가 없었고요.
이것도 한국 YMCA에서는 야전생활을 가장 잘한다고 차출된거였답니다. 물론 외국 생활의 경험도 유용했고요.
그래서인지 카메룬이, 파파야와 바나나, 야자수등의 열대야가 낯설지가 않아요.
그리고 그 고단함이.....
나 역시 컴퓨터 인터넷 하기가 힘이 들어 아예 대사관에가서 라인을 하나 뽑아 썼답니다. ㅎㅎㅎ
은진이?
어떻게 그렇게 늦게.... 아마도 숨은 얘기가 많겠지요?
홈페이지를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네요.
난 선교가 그리스도의 사람다운 참 희생과 봉사의 사랑이 아닌 교세의 확장과 제국의 폐권주의적 선봉인 폐단을 먼저 경계하는 터라 미개발 국가의 선교에는 신중한 편이라오.
특히 동티모르에서 직접 경험하고 목도한 것들이 저런 신중성을 더하게 했고요.
그래서 낭만주의적이거나 흔적과 업적 같은 교회 세우기와 선진이란 우월성을 내세우는 선교에는 단호 했었답니다.
그러니.... 다른 민족과 풍토에 동화하는, 그곳 사람이 되는 세속적인 선교가 얼마나 힘들 것인지를 안다는 말을 이렇게 하게 되네요. 감히....
난 여기서 나름으로 서로 위하는 믿음의 가족들이 있어서 서로 위로를 주고 받으면서 아내와 둘이서만 지냅니다.
선교적 사명 감당이 마음 같이 되지 않아 (몸 하나는 제대로 받은 밑천인데 역시 나이 얘기를 하게 됩니다) 속을 태운답니다.
요즈음은 지리산 쪽의 캠프장을 책임 맡아 혼자 있는 시간이 좀 있어 사색과 계절적 영향을 더 받는 탓인지 기도 중인데도 우울하답니다.
열대에서는 이런 사계절이 크나큰 축복임을 그렇게 절감했는데..... 요즈음은 가을이 싫네요. ㅎㅎㅎ
호사한 말을 해서 미안하요.
밑의 카페 주소에서 그간의 내 흔적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바들산은 내 개인적인 카페고 다음 것은 가족카페랍니다.
이렇게 연락 되었으니 언제가 볼 날도 있겠지요?
건강을 비오.
http://cafe.daum.net/xymoon (바들산)
http://cafe.daum.net/chulhyang (철봉이랑 향숙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