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17년 학교폭력 이슈는 다시금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권력형 비리와 연계된 것처럼 보인 서울의 한 사립초의 학교폭력사안처리 과정에 관한 문제 제기부터 시작하여 무자비한 학교폭력 사건들이 SNS(Social Network Services/Sites) 등을 통해 보다 빠르고 자극적으로 퍼지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식시켰다. 더불어 정권 교체 전·후의 정치적 상황은 학교폭력에 대한 논의가 공중의제로 다루어져 정부의 대책을 마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1년 말 대구지역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강도 높은 학교폭력 사건으로 인해 학교폭력 이슈가 언론의 초점이 된 이후 또다시 학교폭력이 언론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슬픈 현상이다. 이는 곧 교육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 부처가 2012년 2월 6일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이하 2012년 2.6.대책)을 발표하고 이후 일련의 강력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계획들을 추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이 안전한 학교에서 학습을 영위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실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몇 학교폭력 사건들과 사회 곳곳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제안들을 엄밀하게 검토해서 보다 냉정한 관점에서 학교폭력 정책 목표인 ‘안전한 학교’를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과제와 개선을 위한 제안들
2004년 1월 29일 법률 제7119호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된 이후 학교폭력예방법은 2017년 10월 말까지 총 12번의 일부 혹은 전부개정과정을 거쳤으며,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률안 수정안(의안)이 15건이나 될 정도로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는 곧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이 시대의 변화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학교폭력 대책은 부족하며,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 측면에서 현재의 학교폭력과 관련된 과제들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대안들을 모색하고자 한다.
여전히 두려운 ‘학교폭력’ 현상
정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는 학교폭력 현상이 모든 학교급에 걸쳐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보고되지만, 일반인이나 학교관계자, 특히 학부모의 학교폭력에 대한 두려움, 내 자식이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은 줄어들고 있지 않다. 즉, 통계적인 수치와 현장에서의 학교폭력에 대한 체감도에서 차이가 나고 있다. 특히, 언론의 학교폭력 기사가 빈번해지고 학교 내 학교폭력 사안이나 사안처리 과정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됨에 따라 학부모들은 더욱더 학교폭력 문제가 내 자식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때론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현상도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두려움을 키워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위한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교육부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방식이나 문항을 개선하여 현장의 체감도가 보다 정확히 조사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법에서 규정하는 실태조사의 목적인 ‘학교폭력의 실태를 파악하고 학교폭력에 대한 효율적인 예방대책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정동철, 2017).
다만, 학교폭력 실태조사 개선의 방향이 현재 실태조사가 가진 예방적 교육 기능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며, 적어도 최근의 학교폭력 저연령화를 반영하여 초등학교 4학년 이전 학년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2~3학년에서도 학생 간 학교폭력으로 학교 내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일어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사전에 어린 학생 간 다툼으로 간주하여 담임종결 사안으로 처리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로 일어나는 학교폭력 사안 건수는 더욱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4학년부터 시행됨에 따라 그 전까지는 큰 이슈가 아닌 것처럼 다루어지기도 한다. 학교폭력 실태조사의 방식을 달리해서라도 적어도 3학년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질 필요성이 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문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언론이나 전문 연구기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정제영, 2017). 자치위원의 비전문성으로 인해 동일 사안에 대한 각기 다른 가해학생 조치의 문제, 자치위원회 결정이 재심이나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등을 통해 번번이 취소되거나 조치가 변경됨에 따라 결정의 신뢰성이 훼손되고 사안의 법적 절차에 따라 관련 당사자들이 더 큰 고통을 겪게 되는 문제 등이 언급되고 있다.
이에 따른 해결책으로 자치위원의 구성 비중을 변경하는 논의(학부모의 비율을 축소하며,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 학교별 자치위원회를 교육지원청 단위로 이전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대안들이 현실화되기 힘들다. 우선, 학부모의 비율을 줄이고 외부전문가의 비율을 늘리는 것은 학교 내 학교폭력 사안을 학교 구성원이 주도적으로 처리한다는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학교별 사안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충분한 예산 확보 없이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하기 힘들다. 예컨대, 법 시행령 제14조(자치위원회의 구성, 운영)에서 제시된 전문가 집단(변호사, 검사, 관할 소속 경찰공무원, 의사 자격이 있는 사람, 그 밖에 학교폭력 예방 및 청소년보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 경찰관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자치위원회 회의에 참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으로 추측된다. 둘째, 학교별로 처리하는 학교폭력 건수나 사안 처리에서 전담교사의 역할 등을 고려할 때 교육지원청 단위로 위원회를 상설화시킨다는 것은 예산 측면이나 교사들의 업무를 가중 가능성을 고려할 때 실현되기 힘들다.
오히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충분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학부모들의 경우 온정적 관점에서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혹여나 같은 지역 내에 거주하는 가·피해 학부모들과의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고,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같은 학교의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성이 높은 조치를 내리는 데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치위의 학부모들은 학교를 위해서,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를 위해 기꺼이 양심에 따라 최선의 결정을 하려는 집단임이 분명하다.
다만, 이들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치위원회 위원에 임명되기 전 사전교육과 자치위원회에서 사안을 논의하는 회의 참여 전 사전교육 그리고 처리 사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결정에 대한 효과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지금부터라도 온라인 교육이든 오프라인 교육이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치위원회 임명 전 의무적으로 교육을 제공해야 하며, 사안 처리 이전에 사안의 유형과 복잡성을 고려한 모듈형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학교는 사안처리 후에 피·가해 학생들이 조치를 제대로 이수했는지 그로 인해 관련 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학부모들은 자치위원으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들의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가해학생 조치 및 가해학생 학부모의 특별교육 실효성 확보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는 선도와 보호의 차원뿐만 아니라 새로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가해학생 조치를 경험한 학생들이 다시는 학교폭력 가해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이것만으로도 가장 큰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이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가해학생 조치, 더 나아가 가해학생 학부모에 대한 조치가 내실 있게 운영되고 있는지가 불확실하다. 정제영(2017)은 가해학생 선도와 관련하여 현재의 가해학생 조치를 통해 가해학생의 진정한 반성이 부족하고, 가해학생 특별교육 미이수에 대한 강제장치가 부족하며, 가해학생 조치를 이행하는 담당자와 프로그램의 수준이 높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가해학생 보호자 특별교육의 경우에도 이행에 대한 강제성이 부족(과태료 부과 규정은 있지만 실제로 이행되지 않고 있음)하며, 가해학생 보호자 특별교육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학교의 입장에서는 우발적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가해학생의 경우 이전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문제행동을 지속해온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이러한 가해학생에게 법 제17조(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의 조치를 취했을 때 문제행동을 단숨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여러 학교에서 가해행동을 일으켜 강제전학을 받거나 여러 번의 가해학생 조치를 받은 경우 더욱더 선도를 시키는 것이 힘들 것이다.
우선적으로 가해학생 조치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가해학생 조치의 학생부 기재와 관련시키는 방안이 있다. 또한, 일부 중증 문제 학생에 대한 집중 교육과정 운영의 방식도 이와 연계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 중 1, 2, 3, 7호는 해당 학생의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며, 4, 5, 6, 8호는 졸업한 날로부터 2년 후 삭제된다. 다만, 학생의 반성정도와 긍정적 행동 변화 정도를 고려하여 졸업 전 자치위원회 심의를 통해 4, 5, 6, 8호도 졸업과 동시에 삭제할 수 있다.
이러한 현재의 ‘기재 후 삭제’라는 접근에서 향후 ‘유예 후 기록’이라는 제도로 변경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가해학생 조치의 목적은 더 이상 가해학생이 학교폭력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학생부에 기록하기보다는 학생들의 행동 변화를 기대할 수 있도록 유예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모든 조치에 대해 유예 제도를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다소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만 활용할 것인지는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지만, 추가적인 가해행동을 억제하는 데는 ‘삭제 심의제도’보다는 ‘유예제도’가 더 효과적일 것 같다. 특히, 중증 문제 학생에 대해서는 의무적인 외부기관 교육을 선결조건으로 가해학생 조치를 유예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물론 중증 문제 학생에 대한 정의는 합의하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강제)전학을 당한 후 다시 가해행위를 일으키거나 피해학생에 대한 보복행위를 일으키는 등의 일부 학생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인 기숙형 교육기관(Wee School 등)에서 인증 받은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할 때에는 향후 가해행위 방지를 전제로 가해학생 조치를 유예시켜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나가며
위에서 논의한 세 가지의 학교폭력 관련 이슈나 정책적 제안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현재 논의되고 있는 모든 학교폭력 이슈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이전에 여러 번 언급되었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정책적으로 반영되지 못한 사안들이나 과거 검토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로 인해 이행되지 않았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의 시점 즉, 학교폭력을 둘러싼 일반 대중들의 관심 확대, 학교폭력의 가해자 범위의 확대 흐름(학생에서 학교 밖 청소년 등), 학교폭력을 둘러싼 관련 집단(특히 학부모들 간)들의 갈등과 불신 확대 등을 고려할 때 보다 적극적인 조치 등이 필요한데 그 대안들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들이라고 판단된다.
어떠한 정책도 완벽하게 처음 의도한 대로 현장에서 시행되고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의 양상이 다양하게 변하고 문제와 해결책을 둘러싼 관계자들의 행동들도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문제가 본격화된 시점을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된 2004년으로 잡든, 아니면 그 이전으로 생각하든지 간에 현재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의 틀은 2012년 2.6 대책에 근간을 둔 것이라고 평가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3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2015~2019) 역시 이 대책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정제영 외,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2.6 대책 이후의 학교폭력 정책들은 정책 변동적 관점에서 새로운 학교 폭력 유형에 대한 대응, 학교폭력 저연령화 문제에 대한 대응 등을 지속적으로 추가해왔다.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들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의 학교폭력 이슈의 심화를 단순히 정책 실패 차원이 아니라 정책 변동 차원에서 접근하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정동철(2017). 학교폭력 실태조사 표본조사 도입 방안. 제110차 KEDI 교육정책포럼‘학교폭력 실태조사 개선방안 모색’.
정제영, 김성기, 김화영(2016). 현장 중심의 학교폭력 정책 평가 연구(Ⅳ).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정제영(2017). 학교폭력 관련 주요 이슈. 2017 학교폭력예방을 위한 워크숍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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