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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체(작은손길)가 새터민 학생들을 만난 지 6년입니다. 북한에서 우리 사회에 들어온 사람을 탈북인(탈북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새터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새터민이라는 말보다 탈출한 사람들의 절박한 입장을 잘 표현하는 탈북자로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단체는 새터민 학생들을 위해 사진예술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한 달에 두 번 우리 작은손길(삼륜의 집)에 모여 사진예술을 배웁니다. 카메라는 전문가용 카메라인데 모두 회원들의 성금으로 장만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사진에 관한 기초이론도 배우고, 지도교사를 따라 경치 좋은 곳이나 재미있는 곳으로 출사를 합니다. 각자 사진을 찍고 나중에 서로 평가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심각한 사진동아리쯤으로 상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서로 깔깔거리며 노는 시간입니다. 이제 한 4년쯤 되었는데, 초 중 고등학교 학생 합해 대략 15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그동안 학생들이 찍은 사진을 모아 길상사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우리 단체는 학생들에게 학기마다 장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학생들이 사진예술을 통해 감성을 키우고 학생들끼리 우정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감성과 우정이 무엇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바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단체가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우리 단체가 탈북학생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6년 전 제가 우연히 한 시민단체의 세미나에서 탈북인에 관한 발표를 듣고 나서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 사회에 들어오는 탈북자들이 한 달에 2-300여명이 되고, 당시 남한에 사는 탈북민의 숫자가 거의 만 여 명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그 중 혼자 들어오는 청소년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에도 놀랐습니다. 정부에서 기본 생활을 보장해주고는 있지만, 남한사회에 적응하며 인간다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좌절과 고통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의 소외와 좌절을 외면하면 결국 그 대가는 우리 다음 세대들이 치르게 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저는 우리 단체가 작지만 그래도 이 이웃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서 탈북자 사업을 하는 몇몇 단체나 경험있는 개인을 만나 탈북청소년을 돕는 계획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분들은 모두 우리를 말렸습니다. 너무 힘들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으니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라는 충고였습니다. 청년학생들이 남한에 들어오기 전 제 3국에서 온갖 고생을 겪다보니 인간성이 이미 굳어져 소통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돕는 일이 무슨 큰 이권사업이 아닌 다음에야 그분들의 진심을 의심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활동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처음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마치 구름을 잡는 기분이었습니다. 탈북학생들을 돕는 단체를 방문해보았지만, 탈북학생들의 실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처음부터 말과 전통이 서로 다르니 다른 점에서 시작하면 되지만, 탈북동포들은 달랐습니다. 가까운 듯해서 다가가면 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다 한 탈북청년단체를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탈북청년들이 영어과외를 받는 모임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남한의 보통 학생들과 견주어 너무 낮습니다. 영어선생님은 모두 자원봉사자로서 우리 사회의 젊은 직장인과 학생들이었습니다. 영어교재가 비싸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분기마다 영어교재를 사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탈북학생들에게 다가가는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학생들과 얼굴이 익어지면서 우리는 분기마다 참석률이 좋거나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작지만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우리는 친분이 있는 사찰에 학생들을 장학생으로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봉은사와 불광사는 지금까지 탈북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처음 2, 3년간 순조롭게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학생들을 볼 때마다 경쟁이 심한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북한과 남한의 학력차가 클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척이나 어릴 적 학교친구가 없다는 사실 또한 안타까웠습니다. 학생들의 선한 눈망울을 보며 이 사회에서 좋은 인연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도 문제가 적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에 약삭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한 번은 우리단체의 회원 한 분이 가야금 연주회에 초대권을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가야금 명인이라 특별히 자신의 연주회에 무료초대권을 준 것입니다. 학생들이 음악이나 예술을 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까운 학생들을 초대했습니다. 처음에는 5, 6명이 온다고 약속했으나 정작 연주회 날이 되자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바쁜 일이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그 후에도 같은 일이 몇 번이나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일의 전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돈을 주는 행사가 아니면 잘 오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 경험있는 분에게 물으니 탈북자나 학생들을 동원하는 단체에서 그런 편법을 많이 쓰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려운 형편에 돈이 아쉬운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나무랄 수는 없지만, 우리 장학회에도 일정 부분 이런 부정적인 현실이 뒤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로 여러 번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습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토론도 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학생들이 조건없는 보시와 자비의 가치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우리 스스로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남을 도우면서 자기의 이익이나 명예를 추구하면 겸손이나 자비의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최고의 수행은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무아(無我)와 자비는 그래서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 길은 쉽지 않습니다. 부처님에게도 이익과 명예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깨달음을 통해 마음의 행복을 경험한 부처님은 세상에 다니면서 자신이 얻은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부처님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부처님이 가는 곳에는 음식을 대접하려는 귀족이나 부자들이 몰려왔습니다. 경전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꼬살라국 세간을 유람하시다가 일사능가라라고 하는 숲 속에 머무시고 계셨다. 그때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문과 바라문들은 사문 고따마(부처님)께서 일사능가라 숲 속에 머물러 계신다는 말을 듣고는, 제각기 밥 한 솥을 마련해 문 앞에 놓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먼저 세존께 공양하리라.’ 제각기 큰소리로 이렇게 외쳐댔다.
그때 세존께서 동산 숲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들으시고 존자 나제가에게 말씀하셨다.
“무슨 일로 동산 숲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큰소리로 저렇게 소란한가?”
존자 나제가가 부처님께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이 일사능가라 마을의 모든 끄샤뜨리야 계급 사람들과 바라문과 장자들이 제각기 한 솥의 밥을 지어 동산 숲 속에 가져다놓고 저마다 ‘내가 먼저 세존께 공양하리라.’고 하며 외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저들의 밥을 받아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나제가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이롭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나를 칭찬하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칭찬을 바라지 않는다. 나제가여, 만일 여래처럼 멀리 벗어남, 고요함, 깨달음의 즐거움을 얻었다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생기는 즐거움을 맛보거나 구하려 하겠느냐?” -잡아함경 제47권 나제가경(요약), 동국역경원
우리 역시 봉사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형성되는지 늘 살피고 있습니다. 꾸준히 성찰을 해야 조금이나마 자신의 마음속 어둠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보시를 받는 사람들 또한 자비와 성찰의 길을 걷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이 세상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진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만약 학생들의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 금전적인 유인을 쓴다면 학생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음악회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활동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후 생각해 낸 것이 현재의 사진예술반입니다. 대학생보다 좀 더 어린 초등학교나 중학생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어떤 종교적인 신념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교도이지만 사진예술반 교사는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 원칙을 지킵니다. 장학금을 줄 때에도 종교와 연관시키지 않도록 유의합니다. 학생들은 사진 외에도 공예나 그림그리기 등 다양한 예술장르를 배웁니다. 학생들의 표정이 나날이 밝아지는 것을 볼 때마다 예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4년이 지나 처음 온 중학생들은 어느 덧 이제 고등학교 상급반이 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의 성원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난 사진예술반 창립기념일에서 한 고등학생이 소감을 말했습니다. “처음 사진예술반에 나올 때에는 참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른들이 친절하게 사진찍는 법도 가르쳐주고 점심도 사주며 같이 놀아주는 까닭을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무슨 종교를 믿으라는 말도 없고,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늦게 와도 언제나 미소로 맞아 주시고,,, 그러나 그동안 활동을 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커서 이웃에게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날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낀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끝)
첫댓글 위에 올린 글은 격월간지 공동선(5, 6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여운선생님의 글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더욱 정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더 숙연해집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