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이제 우리 정나라의 앞날은 큰 어지러움에 빠지겠구나.“
제족(祭足)은 길게 탄식했다.
한편,
고거미는 제족(祭足)의 탄식을 듣고 오히려 속으로 기뻐했다.
그는 정장공의 부하 장수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장공의 아들 공자 미의 측근이기도 했다.
그가 다음 후계자인 세자 홀(忽)을 추종하지 않고 공자 미를 따르게 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예전에 병권을 담당한 공자 여(呂)가 죽었을 때 정장공은 그 후임자로 고거미를 올리려 했었다.
그때 세자 홀(忽)이 정장공에게 간했다.
- 고거미는 성격이 간특한 자입니다.
그는 병권을 책임질 만한 그릇이 아닙니다.
이 말에 정장공은 공자 원(元)에게 군사 지휘권을 위임하고 고거미는 아경(亞卿)에 머물게 했다.
그 뒤로 고거미는 세자 홀(忽)을 원망하며 무예를 좋아하는 공자 미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 정나라 앞날이 큰 어지러움에 빠지겠구나.
제족(祭足)의 이 예언 섞인 탄식은 고거미에게는 커다란 희망이 되었다.
어지러움이 무엇인가.
군위 계승 다툼을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세자 홀(忽)의 지위는 위태롭게 되고,
자신이 섬기는 공자 미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자중하여 때가 오기를 기다립시다.“
고거미는 공자 미에게 더욱 가까이 접근하여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곤 했다.
이러한 고거미와 공자 미의 밀착은 세자 홀(忽)의 귀에도 들어갔다.
세자 홀(忽)은 천성적이다 싶을 정도로 고거미를 싫어했다.
흰자위가 유난히 많은 고거미의 번득거리는 눈에서 그는 반골(叛骨)기질을 엿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유난히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은밀히 정장공을 찾아가 말했다.
"요즘 들어 고거미와 공자 미의 행동이 수상쩍습니다.
사람 눈을 피하여 서로 찾아가고 찾아오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립니다."
세자 홀(忽)의 말에 정장공은 고거미를 불러 꾸짖었다.
"남에게 의심을 사는 행동은 지각없는 짓이다.
행동거지에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라.“
고거미는 아무말 없이 고개만 숙였다.
대뜸 세자 홀(忽)이 자신들의 일을 얘기했음을 알았다.
그날 저녁, 고거미는 공자 미를 찾아가 정장공으로부터 들은 말을 전해주었다.
"앞으로는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그대를 중용하려 했을 때도 세자가 방해하더니,
이제는 우리 두 사람 사이까지 끊으며 하는구려.
아버님이 살아 있는데도 이러하니,
세상을 떠나시면 어찌 우리가 무사하겠는가.“
공자 미는 어두운 표정으로 탄식했다.
그런 공자 미를 향해 고거미가 한마디 덧붙였다.
"세자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사람을 해치지는 못합니다.
저는 오히려 공자 돌(突)이 마음에 걸립니다.“
두 사람은 틈난 나면 만나 앞날을 걱정하였다.
이런 중에 제족(祭足)은 나름대로 정장공 사후에 대비한 세자 홀(忽)의 탄탄한 기반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각 공자들의 성향으로 볼 때 내부 단합은 이미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외부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믿음직한 의치처는 제(齊)나라였으나,
그것은 이미 세자 홀(忽)의 거절로 물건너갔다.
다른 나라를 찾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생각해낸 것이 진(陳)나라였다.
진나라는 강대국은 아니었지만, 정나라와 이웃해 있었기 때문에 여차하면 도움을 요청하기가 수월했다.
제족(祭足)은 정장공에게 말하여 진나라 제후에게 청혼했다.
이 무렵,
진(陳)나라는 조카를 죽이고 군위에 올랐던 진후(陳侯) 타(陀)가 1년 반 만에 살해당해 죽고,
진환공의 또 다른 아들인 공자 약(躍)이 군위를 물려받은 상태였다.
그가 진여공이다.
진여공으로서는 정나라와의 혼사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흔쾌히 승낙했다.
세자 홀(忽)은 얼마 후 진나라 공녀인 규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했다.
제족(祭足)은 다시 정장공에게 간하여 친선 사절단을 위나라로 보내 화친을 맺었다.
주변국과 가까이 지냄으로써 세자 홀(忽)의 위치를 굳건히 하자는 의도에서였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