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원식물 이야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바친 탱자나무[한국의 자원식물 이야기 58]
[우리문화신문=글ㆍ사진 이영일 생태과학연구가] 탱자나무[학명: Poncirus trifoliata (L.) Raf.]는 운향과의 ‘낙엽이 지는 키작은 나무’다. 탱자란 이름은 탱글탱글한 나무 열매가 열려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자 이름은 귤나무를 닮았다고 하여 구귤(枸橘) 또는 왕성한 가시가 있어 지귤(枳橘)이라고 한다. 다른 이름은 점자(粘刺), 동정(同庭), 상각(商殼), 구귤나무(枸橘-)라고도 한다.
영어 이름은 잎이 세장 달린 오렌지라는 뜻으로 ‘Trifoliate orange’라고 한다. 나무 자체는 별로 쓰임새가 없을 것 같으나 북채를 만드는 나무로 탱자나무를 으뜸으로 친다. 소리꾼은 탱자나무 북채로 박(拍)과 박 사이를 치고 들어가면서 북통을 ‘따악!’ 하고 칠 때 울려 퍼지는 소리에서 희열을 맛본다고 한다. 열매는 약용, 생울타리용, 귤나무 대목(臺木)으로 활용한다. 꽃말은 '추억'이다.
탱자나무는 흔한 쓰임의 울타리 말고도 국토방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던 나라지킴이 나무였다. 옛날에는 성을 쌓고 주위에 ‘해자(垓字)’라 하여 둘러가면서 연못을 파고 그도 모자라 성 밑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특별한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탱자나무 가시를 뚫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일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성을 탱자성이란 뜻으로 ‘지성(枳城)’이라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성은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성 밖은 탱자나무 숲(枳林)으로 둘러싸여 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강화도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78호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와 천연기념물 제79호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역시 외적을 막기 위해 심었다.
▲ 천연기념물 제78호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 천연기념물 제79호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탱자나무의 가장 비극적인 쓰임은 ‘위리안치(圍籬安置)’다. 이는 옛날 죄인을 귀양 보내 주거지를 제한하는 형벌로서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빙 둘러 심어 바깥출입을 못 하게 한 것을 말한다. 길게는 이렇게 수십 년을 보냈으니 애꿎은 탱자나무만 원망하지 않았나 싶다.
겨울날의 탱자나무 울타리는 참새들의 천국이다. 매가 하늘에 떠 있어도 참새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가시가 뻗어 있어서 막대기 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도 참새들은 순식간에 들어가 버릴 수 있어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서 최 참판 댁의 설명을 보면 “사랑 뒤뜰을 둘러친 것은 야트막한 탱자나무 울타리다. 울타리 건너편은 대숲이었고, 대숲을 등지고 있는 기와집에 안팎일을 다 맡고 있는 김 서방 내외가 살고 있었는데······”라고 했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탱자나무는 대부분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늦봄에 피는 새하얀 꽃은 향기가 그만이고, 가을에 열리는 동그랗고 노란 탱자열매는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친근하게 우리 곁에 있다.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의 어린아이들은 먹음직하게 생긴 탱자열매에 군침을 삼켰다. 지독한 신맛에 얼굴을 찡그려 가면서도 한두 개는 먹어치웠다. 또한, 호랑나비 애벌레들이 탱자나무 잎을 먹이로 좋아하기에 애벌레가 신비스럽게 어른 나비가 되던 모습도 종종 봤던 추억도 새롭다.
탱자는 향기는 좋지만 다른 운향과의 열매와는 달리 먹을 수가 없어서 게으름을 피울 때 '탱자 탱자 논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 또한, 별로 쓸모없는 '탱자나무'의 열매를 옛날부터 하찮은 것에 많이 견주어 맛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일에 '탱자'에 견주곤 했다고 한다. 따라서 '탱자탱자 한다'는 말은 할일없이 '뒹굴뒹굴' 또는 '멍하니 쉰다' 등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X도 모르면서 탱자탱자한다는 말의 유래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란다.
중국 원산이며 한국에선 경기도 이남에 분포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강화도의 갑곶리와 사기리에서 자라는 것은 병자호란 때 심었던 것으로 높이 3∼4m다. 가시는 길이 3∼5cm로서 굵고 어긋난다. 잎은 어긋나며 3장의 작은잎이 나온 잎이고 잎자루에 날개가 있다. 작은잎은 타원형 또는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며 가죽 같은 질감이고 길이 3∼6cm다. 끝은 둔하거나 약간 들어가고 밑은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약 25mm이다.
▲ 탱자나무 꽃
▲ 탱자나무 꽃
▲ 탱자나무 꽃
▲ 탱자나무 열매
▲ 탱자나무 열매
▲ 탱자나무 열매
꽃은 5월에 잎보다 먼저 흰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꽃자루가 없고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 떨어진다. 수술은 많고 1개의 씨방에 털이 빽빽이 난다. 보통 귤나무류보다 1개월 정도 먼저 꽃이 핀다. 열매는 장과로서 둥글고 노란색이며 9월에 익는데, 향기가 좋으나 먹지 못한다. 씨앗은 10여 개가 들어 있으며 달걀 모양이고 10월에 익는다.
탱자나무는 한방에서 지실(枳實), 지각(枳殼), 구귤(枸橘)이란 생약명으로 건위(위를 튼튼하게 함), 이뇨, 거담, 진통 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어 처방한다. 또 소화불량, 변비, 위통, 위하수, 황달, 담낭질환, 가슴과 배가 부풀어오는 증세, 자궁하수 등에도 효능이 있다. 그밖에 지사제로도 쓴다고 한다.
《동의보감》에 보면 탱자열매는 피부병, 열매껍질은 기침, 뿌리껍질은 치질, 줄기껍질은 종기와 풍증을 치료하는 귀중한 약재로 쓰인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꽃에는 정유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화장품을 비롯한 각종 향료를 만드는 재료로도 쓰인다.
[참고문헌 :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 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 서울대학교출판부)》, 《우리나라의 나무 세계 1 (박상진, 김영사)》, 《Daum, Naver 지식백과》]
첫댓글 와아, 탱자나무. 글과 꽃과 열매 정말 잘 보았어요.
엄지 척!
'탱자탱자' 하며 논다는 말이 공연히 나온 말이 아니네요.
카페 기능이 지금 이상해서 한 줄 방명록이 안되고
이 글은 제가 스크랩했는데 조금 아까 갑자기 김미옥씨가 스크랩한 걸로
자유게시판에 올라 이게 웬 일인가 했는데
이제 제대로 떴네요.
세상이 어지러운데 카페까지 막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탱자 이야기 반가워서 다른 카페에 옮긴다는 게 실수했네요.
윤승원 선생님 댓글 달았던데...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