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찬 하늘 한 켜 살껍질을 누가 벗겼나
어느 영혼이 지난밤 꽃살문 같은 꿈을 꾸었나
갓 바른 문풍지 같고 공기로만 빚은 동천산(産) 첫물
사락사락 조리로 쌀을 이는 소리가 난다
(문태준, '서리' 전문)
겨울로 접어드는 시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이 바로 서리일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면서, 어느 순간 주위에 서리가 내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서리가 내리는 절기를 일러 상강(霜降)이라 하는데, 일년의 24절기 가운데 열여덟번 째이며 맑고 상쾌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밤에는 슬슬 기온이 떨어져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시인은 서리가 내리는 것을 '겨울 찬 하늘 한 켜 살껍질'이 벗겨진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새벽 무렵의 서리 내린 풍경은 '어느 영혼이 지난밤 꽃살문 같은 꿈을 꾸'어 만든 것이라고 묘사하였다.
아마도 '동천'은 시인이 잘 알고 있는 지명이라고 여겨지는데, 동천에서 본 서리는 '갓 바른 문풍지 같고 공기로만 빚'어진 강의 첫물처럼 느껴진다고 하겠다.
'첫물'은 그해에 들어 처음으로 나는 과일이나 현상을 지칭하는 단어로, 이와 대비되는 표현은 '끝물'이 있다.
동천가에 내린 서리를 밟으면 '사락사락 조리로 쌀을 이는 소리가 난다.'
지금은 판매용 쌀들이 잘 관리되어 돌과 겨와 같은 이물질들이 거의 섞여있지 않지만, 옛날에는 정미소에서 갓 도정한 쌀로 밥을 하기 위해서는 물로 씻은 쌀을 조리로 잘 일어야만 했다.
어머님이 밥을 하기 위해서 부엌에서 쌀을 일때, 그 소리를 듣고 있자면 정말 '사락사락'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서리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그것을 본 화자의 심경을 절묘하게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