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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남아공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던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으로, 나에게는 김대중 전 대통령 번역했다는 것으로 눈길이 갔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에 이 책에 대해 언급한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뒤늦게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네덜란드계 백인들이 남아공에 자리를 잡으면서 백인 우위의 현실이 3백년이 넘게 지속되었고, 그것이 바로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 것이다. 백인이지만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바로 아프리카너이며, 그들만의 언어는 아프리칸스어라고 한다.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지배하면서 흑백 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흑인들조차 일부를 제외하고 그것에 대해 큰 문제 의식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 백인들의 의해 암묵적으로 형성되어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할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오랜 투쟁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키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자리를 잡기까지의 고투의 과정이 저자 자신의 필치로 그대로 서술되고 있다. 9백면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진지하게 탐독할 수 있었다. 때로는 남아공의 과거를 통해서 마치 탈법적인 긴급조치가 난무하던 한국의 유신독재 정권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 부족으로 구성된 남아공의 특징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백인 중심의 정치가 당연시되던 시절,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난 부족 중심의 사고를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고 한다. 만델라 자신도 아버지처럼 부족의 추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지만, 점차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그로 인해 흑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족 중심의 사고에 깃들어 있던 자신의 생각들이 하나씩 부서지게 되는 것이다. 오랜 투옥을 끝내고 자유를 향한 마지막 투쟁 과정에서 만델라의 가장 큰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는 바로 부족을 우선시하는 흑인들에 의해 자행된 폭력으로 인한 흑인들 끼리의 갈등이었다. 그만큼 부족 중심의 사고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습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집을 떠나 새로운 후견인을 만나게 되고, 만델라는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흑인들에게는 흔치 않은 대학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게 되면서, 남아공의 현실과 흑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학생들에 의해 선출된 자치기구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교 당국에 맞서, 올바르지 못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대학을 그만두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지만 섭정이라 불리는 후견인에 의해 강제로 중매결혼이 추진되자, 섭정의 아들과 함께 몰래 집을 떠나는 것으로 1장은 마무리가 된다.
2장에서는 당사자가 원치 않는 강제적인 중매결혼을 피해 저스티스와 함께 고향을 떠나 요하네스버그에 자리를 잡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가 되는 과정이 그려지게 된다. 3장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흑인 인권을 위한활동에 나서게 되고, 필연적으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특히 2차대전이 끝나면서 1948년부터 집권한 국민당 정부는 기존의 관습으로 존재해서 흑인들의 삶을 지배했던 ‘아파르트헤이트’를 실질적인 법으로 만들어 더욱 강력한 탄압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ANC를 중심으로 비폭력투쟁으로 맞서는 남아공의 현실이 소개되고 있다. 아울러 과거 독재정권 시절 한국에서 자행되었던 폭압정치의 실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만델라는 흑인들이 처한 불합리한 현실을 직면하면서 그것을 바꾸려는 투쟁을 전개하지만, 한동안 부족 중심의 인식을 크게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투쟁은 나의 삶’이라는 4장의 제목은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는 만델라의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이해된다. ANC의 일원으로서 본격적인 대정부투쟁에 나서는 그의 삶이 그려지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변호사로서 활동하면서 동시에 흑인의 인권을 위한 적극적인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처음 부족 중심의 사고에 머물러 있던 것에서 흑인의 인권을 옹호하는 인권변호사의 생활로, 나아가 흑백 차별에 저항하는 투사로서의 삶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마주친 흑인의 열악한 현실, 점차 폭압적으로 변해가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투사가 되어가는 자신이 역정을 담담한 필치로 서술하고 있다. 점점 ANC 활동에서 만델라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당국의 감시를 받게 되고, 주요 인물들이 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끝내 무죄를 선고받는 과정이 5장의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마침내 비폭력투쟁에만 머물 수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멘달라를 중심으로 지하활동을 통하여 무장 조직을 꾸리기로 결심한다. 6장은 지하군사 조직인 ‘민족의 창(MK)’의 최고사령부가 되어 ‘검은 별봄맞이꽃’이란 별명으로 불리면서,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만델라의 모습이 생생하게 소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와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ANC와 MK활동을 소개하면서 지원을 받고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이 펼쳐지고 있다.
7장은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국에 붙잡혀 MK의 주요 인물들과 함께 교도소에 갇혀 재판을 받고, 재판을 남아공 정부의 폭력적 실상을 드러내는 장으로 활용하면서 만델라는 이제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과정은 번역자인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삶과 상당 부분 겹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 재판은 교수형이 아닌 종신형을 선고 받는 것으로 귀결된다. 재판 과정에서 만델라는 사건의 핵심인물로 국내외의 조명을 받고, 종신형이 선고되자 항소심에서 다시 교수형으로 바뀔 수 있음을 예감하고 항소를 포기하기로 한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한국에서 유신시대의 폭력적인 긴급조치처럼, 남아공의 흑인 인권 운동과 반정부단체를 억압하기 위한 악법들이 제정되고 그로 인해 폭압이 지속되는 상황이 상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비폭력을 고수하다가 억압에 맞서 군사조직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적극 투쟁으로 전환하는 만델라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8장과 9장에서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로벤섬의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20여년의 투옥의 과정이 그려진다. 당국의 정책 방향에 따라 교도소장이 바뀌기도 하고, 그로 인해 재소자들의 상황은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겪게 된다. 투쟁의 원칙과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간수들과 치열한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단련시켜 나갈 수 있었다고 만델라는 이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케이프타운 근처의 교도소로 이송되면서, 국민당 정부 관계자들과의 기나긴 협상의 과정이 10장에서 소개되고 있다. 자신의 안위보다 ANC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끈질긴 협상을 이끌어가는 만델라의 모습이 그려진다. 실제로 그가 투옥되었던 27년 동안 남아공의 정치 상황은 크게 변화하고 있었으며, 특히 흑인들의 인권 의식은 과거와는 달라진 양상이었던 것이다.
남아공 인권운동의 상징인 만델라를 회유하기 위한 국민당 정부의 다양한 모습이 제시되지만, 자신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늘 원칙을 지키며 협상에 임하는 그의 삶의 자세는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국민당 정부는 결국 ANC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만델라를 비롯한 정치범들을 석방하면서, 남아공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오랜 투옥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버티며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만델라의 자세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감옥에서 출소하여, 국민당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제반 법률을 하나씩 철폐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부의 부족들을 부추기는 정부의 술책으로 흑인들 사이의 갈등이 빚어지고,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낳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단지 흑인만이 아닌, 남아공을 위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만델라와 ANC 지도부의 노력에 의해 마침내 흑인들까지를 포함한 선거를 통하여 만델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제시된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 과거에 자행되었던 사건들에 대해 역사적 기록을 남기는 사업에 착수하였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기도 하지만, 그 역시 만델라가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번역자인 김대중 전대통령도 자신의 모토였던 ‘행동하는 양심’의 전형을 만델라의 삶에서 발견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번역자는 이 책이 1995년 처음 번역되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고 그대로 묻혔다가, 2006년 출판사를 옮겨 다시 출판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자서전의 주인공과 번역자가 겪었던 삶의 궤적도 비교할 만하지만, 두 사람 모두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것도 특별한 인연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난 2020년, 출판사에서 다시 개정판을 내어 그들의 인연과 삶의 모습을 세상에 소개하는 것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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