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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사후에 지인들에 의해 출간된 시집이 그 시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시집의 표제작인 ‘입 속의 검은 잎’은 그 후 기형도 시인을 대표하는 시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1989년 3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기형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시집이 출간된 이후 산문집과 헌정 시집 등이 출간되었으며, 금년으로 30주기를 맞은 기형도의 시 전체를 묶어 펴낸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가 최근에 출간되었다.
시인과 동년배의 평론가인 이광호는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형도라는 이름을 잊게 만들기보다는 더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그의 작품은 ‘망각을 향해 가는 시간의 힘을 거슬러 가는 기이한 힘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과 <기형도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 원고들을 모아 모두 97편의 시들을 엮어 이 책을 펴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제 그의 시는 고등학교 국어과목의 시험문제 지문으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으며, 그의 이름과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애송되고 있다.
이전에 유고 시집을 비롯하여 기형도의 작품들을 읽어보았으나,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이번 기회에 다시 정독하게 되었다. 유난히 슬픔과 추위, 그리고 바람 등과 같은 을씨년스러운 시어들이 많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위험한 가계 ?1969’나 ‘엄마 걱정’ 등의 시에서는 병든 아버지와 힘들게 가계를 꾸려가고 있는 어머님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아마도 그의 누이 중의 하나가 일찍 세상을 뜬 것일까? 향가 ‘제망매가’를 차용한 ‘가을 무덤 ?제망매가’에서는 이미 새상을 떠난 누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의 시들은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전제로 읽어야만 한다. 그 시절의 대학에서는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고,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던 것이다.(이상 ‘대학 시절’) 그리고 시인은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던 사실에 대해 괴로워하고, 차마 진실을 말 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하여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이상 ‘입 속의 검은 잎’)그는 ‘잎 속의 검은 잎’의 시작 메모에서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노라고 고백하며,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엇지만 ‘그 고통을 사랑하였’노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제 중년이 되어 다시 읽은 그의 시를 통해 젊은 날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그와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왜 그 시절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난히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하였을까? 30살의 젊은 시인은 왜 그렇게 시를 쓰는 일이 고통스러웠을까? 어느 날 갑자기 심야극장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그의 존재와 지인들이 엮은 유고 시집을 통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기형도라는 시인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시집에서 비로소 읽게 된 ‘희망’이라는 작품에서 시인의 마지막 목소리를 추억해 보기로 하겠다.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언제부턴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무 때나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시 ‘희망’ 전문)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제는 세상을 떠난 시인에게서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며, 시인은 아무 때나 ‘눈물 흘리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작품에 드러난 고통을 통해, 많은 이들의 감성을 움직일 것이라고 믿어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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