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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이 불렀던 중국 노래 '야래향', 일반적으로 대만의 가수 덩리쥔(등려군)의 노래로 알고 있었다. 그 노래의 원작자가 일제 강점기 말기 만주에서 활동했던 리샹란(이향란)이며, 그녀의 일본 이름은 야마구치 요시코라고 한다. 이 책은 1930년대 10대의 나이로 만주에서 가수로 데뷔해서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던, 일본인이면서 중국 이름으로 살았던 리샹란(야마구치 요시코)의 자전적 기록이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적극 협력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일종의 변명의 기록이면서, 그 시절 중국과 일본의 연예계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거리들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전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배우와 정치인으로 활동했다고 하는데, 이 책의 내용은 일본이 패망하고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환하기까지의 생활만을 다루고 잇다.
책의 앞 부분에는 100장이 넘는 그녀와 관련된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제의 제국주의적 본색을 치장했던 '만한친선' 혹은 '오족협화'의 구호 아래 활동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기록을 그대로 고백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내세운 일본은 이른바 ‘만한친선’을 내세워, 만주족과 한족의 친선을 위해 노력한다고 내세웠다. 그 연장선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만주족과 몽고족, 그리고 한족의 협력을 의미하는 ‘오족협화’라는 구호 아래, 일분의 제국주의적 본색을 치장했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일본의 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는 저자를 바라보느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소개하면서 '일본이 만든 가짜 중국인 리샹란'이라고 지칭되었던 사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전쟁이 끝난 이후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를 위한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그녀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과거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화려했던 자신의 배우 생활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짙게 묻어나고 있어, 과연 저자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파악되었다. 물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사연이 저자의 고백을 통해서 서술되고 있었다.
'리샹란과 야마구치 요시코', 저자가 가졌던 두 개의 이름이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을 일본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났고,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인처럼 살고자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예인으로 데뷔해서 침략의 도구로 이용되었던 것이 바로 저자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저자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을 합리화하는 영화에 출연하여, 이른바 '오족협화'나 '만한친선'을 주장하는 내용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화려하게 살았던 저자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련한 추억과 때때로 자랑스러운 감정이 내용에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일본의 패망으로 전쟁이 끝난 후 우리의 '친일파'에 해당하는 단어로, 중국에서는 이들을 일컬어 '한간(漢奸)'이라 칭하며 가혹한 처벌을 했다. 애써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던 저자 역시 '한간'으로 몰려 재판을 받아야만 했고, 마침내 일본인임을 내세워 일본으로 추방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중국인의 양녀로 지내면서, 중국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중국어를 배워 중국학교에 다니면서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자처하고 싶었던 인물이다. 우연한 기회에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것으로 인해 배우로 데뷔하면서 화려한 연예인으로 살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내용들은 과거의 행동을 반성한다기보다 오히려 자기 변명에 가까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격동의 역사에 그저 내맡겨진 한 사람의 일생이 지닌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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