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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음반이란 매우 소중한 물건이며, 때로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각각의 음반에 얽힌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사람들이 처음 음악에 빠져들게 되는 시기가 중고등학교 시절이기 때문에, 그 당시 들었던 음악이 평생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역시 그 시절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기에, 7080세대의 음악이나 그 시절의 팝송을 지금도 즐겨듣는 이유일 것이다. 저자는 음악잡지 <재즈피플>의 편집장으로 적지 않은 음반(LP)을 가지고 있으며, 지인들의 권유로 그 중에서 30장을 뽑아 이 책에서 그 음반의 구입 경위는 물론 해당 아티스트의 특징과 음반에 수록된 음악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스스로 ‘386세대’의 끝자락에 해당한다고 자처하고 있기에, 그보다 좀더 앞선 시기에 태어난 나와도 공감이 되는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녹음하기 위해서 카세트를 작동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비교적 여유 있었던 저자는 일찍부터 음악을 좋아하여, 고등학교 시절부터 LP판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던 듯하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나는 좋아하는 음악들을 라디오에서 듣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때로는 친구들의 카세트테이프를 빌려 듣거나 복사를 해서 들어야만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원하는 음악을 쉽게 검색해서 들을 수 있지만, 1980년대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라디오 디제이들은 노래를 틀어주기 전과 후에 약간의 여유 시간을 두어, 청취자들이 녹음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그렇게 녹음된 테이프들이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그 당시의 기억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책의 제목은 부제인 ‘레코드 판 속, 수다 한 판, 인생 한 판’을 포함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레코드 판’을 통해서 그에 얽힌 ‘수다’를 쏟아내고, 자신의 ‘인생’을 곁들여 내용을 채웠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보유한 앨범들 가운데 이 책을 쓰기 위하여 ‘1950년대 재즈 앨범부터 1990년대 대중가요 앨범까지 다양한 LP 30장을 골’라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되고 있는 음반들은 재즈와 가요, 그리고 팝 등 각 10장씩 모두 30장이다. 그 음반들에 얽힌 이야기와 해당 아티스트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저자의 ‘인생’을 녹여내어 모두 3개의 항목으로 구성하여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대체로 나에게도 익숙한 가수들과 노래들이라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나만의 추억에 잠시 젖어들기도 했다.
모두 3개의 주제로 구성된 첫 번째 내용은 ‘The Best & The First 기록하다’라는 제목으로 11개의 음반을 소개하고 있다. 음악사에서 또는 저자 개인적으로 최고 혹은 처음의 의미를 지닌 음반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하는 의미라 여겨진다. 그래서 일본 출장 중에 우연히 중고 매장에서 구입한 프린스의 사인이 담긴 음반에 대한 가치를 따져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밖에도 들국화와 김건모 등의 앨범은 물론 냇 킹 콜과 저니 등의 음반에 수록된 노래들과 그에 얽힌 사연들도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방탄소년단(BTS) 이전에 김건모의 3집 앨범이 최고 판매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퀸의 앨범이 그리고 미국에서는 이글스의 앨범 판매량이 최고라는 것도 저자의 소개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마이클 잭슨의 앨범이 최고의 판매량을 자랑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이 두 번째 내용은 ‘Dream 음악을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9개의 음반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항목에서는 음반에 대한 소개보다는 저자 개인의 ‘인생’ 이야기에 대한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젊은 시절부터 음악을 꿈꾸고, 자신이 겪었던 다양한 음악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앨범 이야기와 결합시키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과거 청계천에서 이른바 ‘빽판’이라고 하는 ‘불법 복제음반’을 구입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한다. 따져보면 내가 고등학생 시절 턴테이블이 있던 친구집에 놀러가서, 함께 듣던 그 음반들도 아마 대부분 이런 ‘빽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부분에서 무엇보다 공감할 수 있었던 내용은 바로 대학가요제에 대한 당시 젊은이들의 생각이라고 하겠다. 나 역시 밤늦도록 방송을 보고, 그 테이프가 발매되면 곧바로 구입하던가 아니면 친구에게 빌려서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지막 세 번째 내용은 ‘Life 인생은 음악을 타고’라는 제목으로 모두 10개의 음반을 다루고 있다. 최근 마니아들 덕분에 LP가 다시 발매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LP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대상이다. 저자는 송창식의 음반을 소개하면서, 트윈폴리오의 노래를 즐겨 부르시던 선친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또한 맥주 광고에 사용되었던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에 얽힌 사연을 풀어내면서, 오히려 아티스트보다 더 길어진 영화와 광고 이야기들에 집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 틈엔가 나 또한 비슷한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로 인하여 프로야구에 입문하게 되고, 지금껏 같은 팀을 응원하고 있다는 시시콜콜한 저자의 이야기들조차 흥미롭게 여겨지는 것이다.
수천 장의 앨범을 보유한 저자가 그 중에서 30개의 음반을 고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상 소개된 음반의 수록곡들은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이다. 그러나 ‘레코드 판’에서 비롯된 저자의 ‘인생’을 통해서 풀어낸 ‘수다’는 이 책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값비싼 앨범을 구입하기보다 저렴한 앨범들을 가급적 많이 구입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되는 바가 컸다. 나 역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비록 CD이지만 음반을 구입하려고 노력하는데, 언젠가 한번쯤 나란히 꽂힌 음악 앨범들을 보면서 그에 얽힌 나만의 이야기들을 생각해 봐야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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