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영혼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 샘이며, 일단 뚜껑이 한번 열리면 끊임없이 솟아나도록 되어있기 때문입니다(7-14세를 위한 교육예술, 2022, 130)"
먼저 영혼도 파악하지 못하는데, 영혼의 샘이 열리도록 할 수가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열광하는 사람들은 영혼의 샘이 열렸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영혼의 샘이 열리기를 바랄 것이다. 만약 누가 자신의 일을 하면서 행복해 하고 또 즐거워한다면, 그 사람은 영혼의 샘이 열렸다고 보아도 된다. 영혼의 샘이 열리면 누가 말려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그 일을 즐겁게 하기 떄문이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자랑인 손흥민 선수, 조수미씨의 경우가 해당한다. 따라서 문제는 '어떻게 영혼의 샘을 열까'이다. 이것이 질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 인간 내부로 들어가는 방법과, 인간 외부에서 하는 방법이 있다. 먼저 말하면 두 가지 방법이 상호 협둥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떄문이다. 따라서 영혼의 샘이 열린 사람은 어떻게 하였든 두 가지 방법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추측하기에 어릴 때부터 가르쳐서 아이가 재미있고, 또 줄겁게 하도록 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하는 예슬 영재 교육, 어릴 때부터 예술 영재를 발굴하여 특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해당된다. 손흥민 선수는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지도, 특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였다. 만약 공교육에 맡겼더라면 모르긴 몰라도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교육 시스템에서 안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영혼이 성장하는 시기에 영혼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므로 개인 영혼의 발달을 배려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만, 근본 원인은 인류가 인간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과학이란 결과인 데이터를 가지고 설명하기 때문에 그 데이터가 형성되는 과정은 무시된다. 하지만 과학적인 데이터를 형성하는 존재가 영혼이기 떄문에, 영혼이 온전하게 성장해야 과학적인 데이터를 형성하는 것이다. 영혼이 성장하는 시기에 과학적인 데이터, 결과를 주면 영혼이 할 수 있는 가능성, 영혼의 싹을 완전하게 잘라버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영혼이 하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전혀 과장하지 않아도 영혼 존재를 아예 인정도 하지 않는 상황이 현 공교육이다. 그러니 공교육에서 교육을 받으면, 영혼이 망가지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의 본성을 살펴서 영혼이 온전하게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영혼은 자랄때 뿐만 아니라 모든 경우 즐거움을 자양으로 성장한다. 만약 아이가 즐거워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다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필자도 현장에서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경우, 즐겁지 않으면 방법을 바꿨다. 여기에서 다른 방법이란 반드시 정신의 속성을 따라야만이 영혼이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랑으로 감싸는 방법이고, 그 다음 아이들의 모범이 되어 주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교사가 수업에 들어 가야하는데, 교사 역시 과학적인 교육방법을 받은 세대라 교사의 영혼도 어려을 것이다라고 판단된다.
영혼이 성장하는 시기에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 즉 망가지면 평생 되돌리기가 어렵다는 것이 슈타이너의 주장이다. 점점 확산되고 있는 정신질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등은 영혼이 외부상황에 자신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망가진 때문이지만, 언제 어떻게 망가졌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기 떄문에 해결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되는 것은 영혼의 속성인데, 영혼은 현 상황에 매몰, 현상황에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때 누군가 영혼이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 존재가 자신의 '자아'이다. 만약 영혼이 그대로 계속 머물면 정신질환으로 가는 것이다. 이때 '내가 많이 힘들구나'라고 스스로 알아차려야 한다. 그럴려면 언제나 자신의 상황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여담으로 필자에게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트라우마로 되어 있다. 그래서 스트레스와 관계된 사람을 만나거나, 기억이 떠오르면 몸이 많이 힘이 든다.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괜찮이 지기는 하나, 몸이 힘든 상황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다시 그 상황이 되자 가만히 자신에게 집중해 보았다. 그랬더니 불현듯 법륜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법륜스님께서 온라인 명상시간에서 하신 말씀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자신에게 집중하면,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부 아무 일도 아니다'라는 말씀이다. 누가 싸우고, 그래서 그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사실은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나고 나면 그 일이 마치 꿈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스트레스를 받다니, 순간 꿈에서 깬듯 깨어났다. 물론 몸이 회복되는건 벌써 카르마로 저장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야 되지만, 꿈에서 꺠어났기 때문에 차차 놓여난다. 이것이 단박에 깨닫는 방법,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불현듯 생각나게 한 존재는 나이고, 에테르체가 그 상황에 개입, 상을 만들어서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아스트랄체가 간절하게 원했기 때문에 영혼(의식혼)이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의식혼이 꺠달으면, 그 열매는 자아에 저장되어서, 다음부터는 발달된 자아가 된다. 이 자아가 정신자아이다. 만약 그 상황에 매몰되어서 괴로워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더라면 정신질환으로 진행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첫째 힘이 들 때마다 힘이 든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랬기 때문에 둘째, 여기에서 벗어나는 정보를 자아가 계속 찾았을 것이다. 셋째, 이런 정보를 한 두번 듣는다고 그것이 깨달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여러 번 듣고 자아가 깨달을 때까지 생각(오성혼)해야 한다.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지만, 삶이란 거의 대부분 이런 순간의 연속이 아닌가 한다.
이것 역시 영혼의 샘이 열리는 과정의 하나이다. 영혼의 샘이 열리는 것도 시간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온다. 지난 번 글에서 '물컵을 향해서 내 손이 가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어떤 존재가 나를 물컵으로 인도한다'고 했다. 바깥에 있는 어떤 존재가 바로 '나'(본래 자아)이다. 내가 평소 간절히 원하면 '나'는 그것을 이루어줄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노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노력이 물질, 육체를 포함해서 모든 물질을 통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즉 물질을 통하여 정신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정신을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데, 그 정신으로 물질을 변화시켜야 하니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관련해서 기억나는 책 제목이 있다. 『박물관이 말을 걸었다』인데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물관이 말을 걸 정도, 그 말을 알아들을 정도가 될려면 굉장히 노력해야 한다. 이때 박물관이 거는 말을 알아듣는 존재가 나의 '정신'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인간은 세 부분, 몸, 혼, 영으로 구성된다. "몸을 통하여 인간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사물과 연결시킬 수 있다. 혼(영혼)을 통하여 사물이 던져주는 인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영(정신)을 통하여 사물 스스로가 말을 걸어온다(산지학, 2006, 22)." 사물 스스로가 걸어오는 말을 알아들을려면 영혼의 샘이 열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김단테(주식 유튜버)의 쏫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김단테 유튜버가 하는 어떤 말에 필자의 자아가 바깥에서 그 말로 이끌었다. 나의 눈이 그 말에 집중하도록 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너무나 신기해서 그 이끄는 대로 눈길을 따라갔더니 '확신'이라는 단어였다. 돈을 많이 버는 주식투자자(워렌 버핏)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조금 올라도 팔지 않고 기다려서 수익을 얻는데,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개미투자자는 이 확신이 없기 때문에 조금 오르면 팔아서 수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짐작하기에 이 말이 필자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두 번이나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이것이 영혼의 샘이 터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필자의 정신기관이 발달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손흥민 선수나 조수미 샘이 바깥에서 열심히 하여 물질을 변화시켜서 정신을 파악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다른 부분에서도 느낀다. 가곡교실에서 부르는 노래도 좋아졌고, 또 글을 쓰는 수준도 조금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신기관의 이런 발전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면 그 순간 정신기관은 더 이상 발달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신의 속성이므로 어쩔 수는 없다. 나아가 정신은 그 한계가 없기 때문에 노력한 만큼 반드시 그 결과도 있다. 만약 배제하면 다시 또 다음 생애에서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슈타이너가 주장하기는 하였다. 이와 같이 영혼은 배제하거나 억압하면, 그 순간 발달을 멈춘다. 따라서 영혼이 성장하는 시기 아이들에게는 특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혼, 정신기관은 말이 없기 때문에 성인들도 알아차리지 못해서 정신병으로 가는데, 아이들이란 말해서 무엇할 것인가. 아이들 시기에는 주위에서 아이들 내부의 정신기관에 대해서 배려해주고 도와주어야 온전하게 발달한다.
현재 자신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면, 영혼이 성장하는 시기에 외부로 부터 받은 것일 확률이 높다. 영혼이 온전하게 자라지 못한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현 상황은 자신이 치료해야 한다. 더 큰 문제로 나아가지 않도록 할려면 어쩔수가 없는 일이다. 먼저 자신의 영혼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상황에 놓이도록 해야 한다. 이는 가족이라하더라도 또 누구라도 대신 해 줄수가 없다. 자신은 자신 만이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손가락질한다고 자신의 존재가 그런 손가락질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어떤 순간에라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근래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기 떄문이다). 그럴려면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늘 관심을 가지고 언제나 살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