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 김용길
만화경 / 김용길
아이와 색종이를 오리면서
도화지에 붙이며 그림을 만들면서
그림 뒤로 사라져 버리는 색종이의 뒷면을 생각했다
울긋불긋 빛나는 이 세상도
색종이의 뒷면 같은 무엇이 받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뒷면이 사라지면 그림은 남을 수 있을까
거대한 이 도시는
뒷면에서 뼈를 세운 노동이 팔 뻗쳐 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이 만큼의 생활도
보이지 않는 이들이 떠받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문에서 종이가 없어지면 글자들은 어떻게 떠오르나
우리의 육신이 사라지면 영혼이 그런 색깔로 떠오르나
잘라서 남는 종이들은 왜 쓰레기로 버리면서
우리들의 삶의 어느 부분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게 아닐까
버려지지 않고
뒤에서 떠받들지 않고 사는 세상이 없을까
문득 궁리하다가 색종이를 잘게 잘랐다
아이가 동그란 눈으로 아빠 무어야 한다
유리를 몇 개 주어다 만화경을 만들었다
안팎이 없고
버려지지 않는 세계가 이루어졌다
아이가 좋아서 깡총깡총거린다
199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김용길 시인
199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년 시집 <아인슈타인> 문학아카데미
2003년 <문학과창작> 소설당선
[출처] 만화경 / 김용길|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