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상에서 남의 나라에 침입한 이 민족이 그 나라의 왕계를 파괴하지 않고 철저한 문명의 혁신을 단 시간 내에 이루어 낸 예가 있습니까?
이 질문의 답은 명쾌하게 말해서 "없습니다"
이 질문이 장한식 님의 책을 염두에 두고 질문하신 것이라고 생각되어 그 분의 책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장한식 책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저는 틀린 주장이다고 하겠습니다.
예전에도 간략하게 답을 하기는 했고, 저 역시 이 책을 다 읽어보았지만, 기본적인 방법론상의 문제가 너무나 많고, 모(慕,冒,某)씨라는 단어만 나오면 대부분을 모용선비족과 연결시키 것은 학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혹여 장한식 님의 글을 읽고 그것이 타당하다고 여기는 분은 여기서 반박문을 게제하셔도 좋습니다.
장한식 님의 글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전체 논지가 아니라, 신라가 북방 문화의 영향을 왜 그렇게 많이 받았는가 라는 최초의 의문이라고 봅니다.
장한식 님의 책이 논리적 오류가 너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논리들이 회자되는 이유의 하나가 바로 신라문물에서 나타나는 북방계 유물의 존재 때문이니까요.
냉정히 말해서 장한식님도 하나의 가설을 제시한 것인데, 그 가설의 논리성이 부족해서 그렇지 문제의 발상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오히려 그 글을 비난하는 사람들 또한 아직까지도 명쾌하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못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장한식님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풀어가는 단서는 크게 신라에 들어온 외래 세력 특히 석씨, 김씨, 박씨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의 문제, 또 고구려의 영향은 얼마나 되었는지 하는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고구려에는 동복, 각배 등 유목민족의 유물들을 사용합니다. 각배가 신라에만 있고 유목세계에게만 있다는 김병모-장한식 님의 주장은 틀립니다. 고구려의 영향을 무시하고 신라의 유목문화적 요소를 설명하는 것은 나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장한식 님의 문제 제기는 고구려 연구자에게도 일정하게 자극을 주어 고구려에 남아있는 유목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살피도록 하게 합니다. 고구려의 유목적 요소는 다음에 정리해서 글을 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