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215) 사물의 감각화 - ② 물의 이미지와 시적 변용 5-4/ 시인 송수권
사물의 감각화 - ② 물의 이미지와 시적 변용 5-4
Daum카페 http://cafe.daum.net/cafedurebak/ 박재삼 -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물의 원형심상
다음은 ‘물’의 원형심상, 즉 원형적 이미지를 보인 시다.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보것네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 전문
개별적 의미나 정서를 초월한 민족의 심층적 이미지와 정서가 ‘해질녘 가을 강’에 기대어 표출되고 있다.
이 작품은 민족정서를 추스르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시인의 생체험이 민족의 정서,
즉 한에 깊이 용해되어 완결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 속의 강은 황혼이 비낀 가을 강이며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과 같은 이미지다.
또한 문득 잊었던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며 가을 햇볕을 등에 받고
산등성이에 이르면 눈물이 나는 그런 울음이 착색된 강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원형적 이미지는 ‘물→강→바다’라는 이미지와 불빛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시간적 진행을 거치면서 생성과 소멸이라는 인생론적 삶과 애상적 정한(情恨)이 “소리 죽은 가을 강”의
의미와 정서를 확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뒤에 생긴 울음까지 흐느낌으로 가라앉고 ‘미칠 일’ 하나,
즉 삶의 열정으로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 찾아가는 그 서러움으로부터
바다에까지 닿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인 것이다.
이처럼 한의 정서가 표백되어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원형적 심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는 곧 융이 말한 개별적 정서나 의미를 뛰어넘어 잡단 무의식에서부터 흘러나온
무의식의 가장 일반적 감정이 투영된 상징이라 볼 수 있다.
탄생과 죽음, 생성과 소멸, 정화와 속죄, 풍요과 성장, 영혼과 재생,
순간과 영원, 즉 모성(母性, 아니마)으로서의 강이기도 한 것이다.
장독대의 정화수에 치성을 드리는 우리 민족감정,
또는 갠지스 강을 어머니로 부르며 힌두교도들이 정화와 속죄,
영원을 비는 그런 집단 무의식이 투영된 거울과 같은 원형의 강이며 물이다.
판소리나 민요조의 가락인 사투리의 정서로서의 종결어미인 “눈물 나고나” “보것네” 등이
예스러운 정감을 살리며, 반복과 어미 활용에 의한 울음의 점층 효과도 백분 살려내고 있다.
‘강→눈물→바다’에 이어지는 물의 이미지와 ‘가을 햇볕→불빛→해질녘’으로 이어지는 불의 이미지가 모순 없이 2연의 배경을 이룸으로써 ‘인간 본원적 사랑과 고독의 무상성’을 주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전문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 인생론적 삶과 애상적 정한의 의미와 정서를 담고 있다면,
〈우리가 물이 되어〉는 가정법에 의하여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물의 단순성을 소박하게 노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물/불의 대립적 이미지로 선명하게 진술하고 있다.
시인이 꿈꾸는 세계는 4연에 그 이데아로 드러나고 있다.
1연과 2연은 물의 순리성으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 바다에까지 이르는 생명을 살리는 물을 표현하였다.
3연 ‘그러나’에서부터는 물의 상극성인 불의 이미지로 전도되어 있다.
시인은 한 시대를 예언하는 새벽닭이요 바람닭이란 말처럼 예언의 목소리로 시상을 휘어잡는다.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라는 예언부터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는 구원 의식이 투명하게 열려 있다.
〈울음이 타는 강〉에서 ‘물→강→바다’라는 이미지와 ‘불빛’이 선명한 조응을 이루고 있듯이
이 시에서 물과 불은 역동적 이미지로 조응관계가 아니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물은 아니마(여성성), 불은 아니무스(남성성)의 세계를 표방한다.
노자의 물 또한 아니마의 세계로, 에로티시즘이 충만한 세계다.
따라서 위의 시는 노자의 물의 역패러디가 아닌 패러디로 차용한 시다.
물과 불이 가장 이상적으로 만날 때는 언제일까?
이는 상호 보완관계로 시적 이미지를 끌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예시해본 것이다.
그러나 노자의 세계에서는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유약한 것은 삶의 무리(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라고 물을 규정하고 있다.
< ‘상상력 개발을 위한 유형학습, 시창작 실기론(송수권, 문학사상, 2017)’에서 옮겨 적음. (2021. 3.26.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215) 사물의 감각화 - ② 물의 이미지와 시적 변용 5-4/ 시인 송수권|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