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강도
자유민주주의를 원할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적 지위가 우선되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도발해 오는 적의 군대를 물리치는 힘은 강한 군대다
*자강도
지금의 자강도는 기원전에 고조선 땅이었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에 속한 땅이었다. 고구려 멸망 후는 발해에 속하게 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독로강(禿魯江, 현재의 장자강)’이라 부르다가 1361년(공민왕 10)에 만호를 두었으며, 1369년부터 ‘강계’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평안도에 속하였고 많은 지역이 1413년(태종 13)에 설치된 강계도호부의 관할에 놓이게 되었다. 1896년에 청천강과 묘향산을 경계로 평안도가 평안남북도로 갈라지면서 평안북도에 속하였다.
한편 함경남도 장진군은 698년 발해가 건국하면서 남경남해부에 속하였고, 1391년(공양왕 3)에 갑주(甲州) 소속이 되었다. 1413년에 갑주는 갑산군이 되었고, 1461년에는 갑산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67년(현종 8)에 장진책(長津柵)이 설치되었고, 1815년에 별해진(別害鎭)으로 개편된 후 1843년에 장진군이 되었다. 1865년에 장진도호부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에 함경남도 장진군이 되었다.
1949년 1월 평안북도에서 강계군(江界郡)․자성군(慈城郡)․후창군(厚昌郡)․위원군(渭原郡)․초산군(楚山郡)․희천군(熙川郡)과 함경남도에서 장진군(長津郡)의 일부를 분리하여 자강도를 신설하였다. 자강도가 신설되면서 강계군에 속하였던 일부 지역이 만포군(滿浦郡)과 전천군(前川郡)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장진군 장진면을 강계군 동문면(東門面)으로 개편하였다. 1949년 12월에는 강계군에서 강계면을 분리해 강계시로 승격시켰고, 나머지 지역을 묶어 장강군(長江郡)으로 통합하였다.
1952년의 행정구역 개편시 전천군의 일부를 분리하여 성간군(城干郡)과 룡림군(龍林郡)을 신설하였고, 만포군의 일부와 장강군의 일부를 병합하여 시중군(時中郡)을, 희천군의 일부를 분리하여 동신군(東新郡)을, 초산군의 일부를 분리하여 고풍군(古豊郡)과 송원군(松源郡)을, 자성군 일부를 분리하여 중강군(中江郡)을, 후창군 일부와 자성군 일부를 병합하여 화평군(和坪郡)을 각각 신설하였다.
1954년 10월 행정구역 개편 때에는 후창군이 량강도에 이관되면서 량강도 김형직군이 되었고, 평안북도 우시군(雩時郡)과 함경남도 랑림군(狼林郡)이 자강도에 편입되었다. 1967년 10월에는 희천군과 만포군이 각각 희천시와 만포시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해서 2012년 현재 자강도에는 3개 시(강계시, 만포시, 희천시), 15개 군(고풍군, 동신군, 랑림군, 룡림군, 성간군, 송원군, 시중군, 우시군, 위원군, 자성군, 장강군, 전천군, 장강군, 초산군, 화평군)이 있다. 하위 행정구역으로는 15읍 229리 68동 23로동자구가 있고, 도 소재지는 강계시이다.
자강도에는 지하자원을 비롯하여 임산자원과 수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해방 이전까지는 화전을 통해 산지를 개간하는 화전농업지역으로 생산수준과 영농방법은 형편없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산림자원과 지하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채취공업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전력공업을 비롯하여 기계공업, 임업, 경공업 등이 발전된 지역으로 변모하였다.
전력공업은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대규모의 수력발전소들이 건설되어 북한 전력생산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 전력생산기지에는 장자강발전소, 강계청년발전소, 운봉발전소, 위원발전소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강계시, 성간군, 장강군, 자성군, 화평군, 동신군에 중소형의 발전소가 있다.
기계공업은 공작기계, 정밀기계, 광산기계, 임업기계, 농기계 등의 분야에서 발전하였다. 가장 비중이 큰 부문은 공작기계생산이며, 중심지는 희천시이다. 임업도 상당히 발전하였는데, 고풍․송원․희천․동신․전천․성간․룡림․화평․랑림 등지에서 임산사업소와 임산작업소가 설치되어 있다. 임산기지에서는 제재원목과 나무를 비롯하여 가구․침목․펄프․합판 등의 생산에 필요한 통나무를 생산한다.
자강도는 해방 이전에 지하자원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지역으로, 해방 이후 중강․장강․위원․시중․초산 등지에서 동․납․아연․흑연․석탄 등의 지하자원 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광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동․흑연․납․아연 등이다. 경공업 역시 해방 이후 발달하기 시작하여 대규모의 경공업공장과 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되었다. 경공업은 방직공업, 식료공업, 종이공업, 신발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특히 강계연필공장은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자원을 이용하여 운영되는 북한의 주요 연필생산기지이다.
해방 이후 화전농업에서 탈피하여 곡물과 채소를 비롯한 농산업과 축산업, 누에, 과수업 등이 발달해 있다. 곡물자원으로는 옥수수․벼․콩 등이 재배되는데, 재배면적이나 곡물생산량에 있어서 옥수수의 비중이 가장 크다. 산지가 많고 사료자원이 풍부하여 가축을 방목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가축은 닭․토끼․염소․소․양 등이 사육되며, 북한에서 소를 가장 많이 사육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자강도에서는 예로부터 양잠업도 발달하였다.
북한의 북부내륙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요지에 해당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산림자원과 지하자원의 운송을 위해 일부 지역에만 철도와 도로가 개통되었지만, 해방 이후 교통여건은 많이 개선되었다. 철도가 자강도 교통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는데, 만포〜순천, 만포〜혜산, 강계〜랑림, 만포〜운봉 간 철도교통로가 개설되어 있다. 자동차 도로는 희천〜성산〜강계〜만포, 우시〜위원〜만포〜자성〜중강, 강계〜화평〜중강 등의 구간에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다. 수상교통로는 압록강, 장자강, 충만강, 청천강 등의 하천에서 이용되고 있다.
해방 이전까지 변변한 교육기관이 없었으나, 지금은 교육, 의학, 농업, 공업 부문의 대학을 비롯하여 400여 개의 중학교와 소학교, 130여 개의 분교가 있다. 과학연구기지도 조성되었다. 문화시설로는 도예술극장을 비롯하여 350여 개의 문화회관, 20여 개의 도서관이 도내에서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항일 운동을 했다고 하는 김일성의 항일운동 관련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