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 이 역동적인 힘의 원리를 <인지학>에서는 아스트랄체라고 합니다(12감각, 2016, 62)."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 중 하나인 아스트랄체가 움직인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먼저 예를 들어보면, 필자는 음악을 좋아해서 가곡교실이나 여러 합창단에서 노래를 배운다. 여러 지휘자와 반주자를 경험하는데, 여기에서 궁금한 것이 생겼다. 어떤 반주자의 반주는 음악의 정서가 그대로 전달되어서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반주자도 가끔 만난다. 근래 일어난 일로 필자가 합창 열 끝부분에 위치하기는 하였지만, 반주가 들리지 않았다. 반주가 들리지 않아서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그래서 '왜 그럴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물론 음향시설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피아노 반주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첫째, 반주자의 피아노 소리가 평면적이었다. 즉 피아노를 치기는 치는데 몸에 익지않은 건반을 스치듯 피아노를 쳤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말하면 반주자 관심이 다른 곳(생활)에 가있어서 즉 마음이 담기지 않았기 떄문이다라고 할 것이다. 왜 우리가 가끔 연주자들에게 듣기를, 하루 연습을 안하면 자신이 알고, 2-3일 안하면 관객이 안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 피아노 연주에 마음이 가지 않은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았나 한다.
둘째, 그렇다면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이것이 아스트랄체이기 떄문에 그렇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서 스스로 움직여서 감정을 전달한다. 예컨대 피아노를 치면 연주자의 아스트랄체가 피아노를 통해서 전달된다. 피아노를 칠 때 마음이 연주에 가 있어야 아스트랄체가 전달되는 것이다. 이유는 아스트랄체는 영혼의 바탕체로 영혼의 속성 상 그 상태에 매몰되기 때문에 아스트랄체가 움직일려면 마음이 음악에 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기 떄문에 연주자들이 매일 악기 연습을 하는 것이다. 또 악기를 배울 때 아스트랄체가 악기에 전달되는 경험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스트랄체가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에 전달되는 경험을 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에 전달되는 경험을 할까? 먼저 말하면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인간 본성에 맞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스트랄체는 12-14세 무렵 탄생한다. 탄생 전 아스트랄체는 인간의 몸주위를 구름처럼 감싸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호흡을 통하여 척추를 타고 뇌까지 서서히 올라간다. 뇌에 도달하는 것이 아스트랄체의 탄생이다. 이때 아스트랄체가 호흡을 타고 올라가는 과정에 자신의 몸을 악기로 사용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스트랄체가 척추를 타고 오르는 길이 인간의 신경을 타기 떄문이다. 이유는 '인간의 신경이 내적인 우주음악에 의해 만들어졌기 떄문이다'(색채의본질, 2016, 89). 따라서 아스트랄체가 인간의 몸을 타고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신경이지만, 이 신경이 우주 음악이기 때문에 인간이 연주한 음악이 우주음악, 천체음악과 유사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스트랄체가 탄생하는 과정에 인간은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경험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신경을 퉁하여 우주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탄생할 때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척추를 타고 올라가는 느낌을 느껴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스트랄체가 탄생해 버리면 아스트랄체가 자신의 신경을 타는 느낌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연주를 하면서 음악의 정서를 표현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이 시기에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움직이는 느낌을 받지못했기 때문이다라는 사실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인간의 정신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어서 스스로 깨울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지 말고 깨우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인 음악가 역시 요행히 자신의 주변환경이 도와준 때문이다라는 사실이다. 물론 악보 한 장도 외우기 힘든데 수십 장의 악보를 기억하고 연주하는 것은 천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 시기의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이 이런 경험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슈타이너는 이 시기 아이들에게 반드시 부는 악기( 리코더 등등)를 연주하도록 하였다. 리코더를 불면서 아이들의 호흡이 리코더에 전달되고, 이것이 아이들의 아스트랄체가 리코더에 전달되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 과정이 소가 되새김을 하는 과정이라고도 표현하였다(슈타이너). 소가 되새김을 하면서 쾌적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스트랄체가 우리 몸을 움직이는 과정, 느낌과 과 같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공교육에서도 이 시기 아이들에게 리코더를 지도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전달된다는 느낌을 느끼는지는 알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필자가 현장에서 리코더를 지도하면서, 필자의 아스트랄체가 리코더에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사의 아스트랄체가 전달되어야 아이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교사는 알아야 한다.
인간의 몸에 아스트랄체가 완전히 들어오는 것이 아스트랄체의 탄생이다. 이 신호가 남자에게는 변성기의 시작이고, 여자에게는 생리의 시작이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이므로 아스트랄체가 탄생하면, 감정의 혼란을 겪게 되고, 사고기능이 싹터서 비로소 추상적인 사고(인과 관계 등등) 교육이 가능하다.
이를 다르게 말하는 것이 음악은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스트랄체가 탄생하기 전에 아스트랄체가 자신의 몸에 들어오는 것을 느껴야 하고, 자신의 몸을 악기로 사용할 수 있음도 느껴야 한다. 나아가면 자신의 신경을 우주 음악에 맞게 움직일 수도 있다. 결과 인간이 우주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사실 성악이 원래 이런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즉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자신의 신경을 움직여서 자신의 몸을 악기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신경을 사용해서 우주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조수미 선생님의 목소리가 신이 내린 목소리인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노래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전달되어야 한다. 악보를 보면 작곡자의 요청이 적혀있지만, 사실은 아스트랄체의 움직임에 대한 안내이다. 아스트랄체가 움직이면 저절로 강조하는 부분에 가면 아스트랄체가 그렇게 반응한다. 문제는 그렇게 하는 방법이다. 되풀이 하지만 아스트랄체가 자신의 몸을 따라 움직일 때, 이 아스트랄체가 자신의 신경을 진동시켜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컨대 그 진동이 우주 진동일 수도 있고, 자신의 몸안의 진동일 수도 있다. 우주 진동이라면 우주 음악이 연주되어서 삼라만상을 감동시킨다. 반면 자신의 몸안의 진동이라면 타인을 감동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래부르는 가수들은 모두가 이렇게 노래를 한다.
그 방법 첫째 먼저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내부로 들어가는 방법은 음악을 연주하면 저절로 들어간다. 음악이 내부(정신세계)로 들어가는 창이기 때문이다. 만약 못들어간다면 들어갔는데 모르거나, 음악에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스트랄체 탄생 전에 자신의 몸을 통해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외부에서 찾지말고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즉 내부로 들어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음악의 정서를 통해서 내부에 연결되었다면 자신의 신경체계를 움직여야 한다. 원래 인간의 신경체계는 우주 에테르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으므로 그 움직임에 동참하면 된다. 셋째, 그러면 우주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우주 감정이란 원래 정신세계의 정서이다. 예컨대 현실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정신세계의 소리와는 다르다. 정신세계의 원래 소리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슈타이너가 말한 것을 필자도 이해한 정도이지, 필자 역시 정신세계의 소리를 표현하지 못한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세게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수준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 아스트랄체의 역동적인 힘이다. 아스트랄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주제를 음악으로 한정했지만, 아스트랄체는 모든 부분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아스트랄체의 탄생 전에 이런 교육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신을 배제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마치 장님이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슈타이너의 정신과학을 공부한 결과 느낀 점은 현 시대가 우리를,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것도 스스로 찾아서 가야하니, 얼마나 힘이 드는지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길을 못찾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최악의 경우 자신을 지키지 못할 경우 정신병에 걸리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물질 뒤에는 반드시 정신이 있는, 정신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정신을 파악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쉽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