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222) 열두 편의 시와 일곱 가지 이야기 – 셋째, 솔직하게 표현한다/ 시인 공광규
열두 편의 시와 일곱 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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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솔직하게 표현한다
시는 자신의 생각을 거짓 없이 표현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동양 시학의 제일 원리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사무사(思無邪)입니다.
시를 대할 때 거짓이 없이 대하라. 정직하라, 솔직하라는 말입니다.
바로 ‘진정성’입니다.
창작자나 독자, 편집자 모두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공자의 문학관입니다.
시는 자기 생각을 거짓 없이 꺼내 종이 위에 옮기는 작업입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없습니다.
사실이나 진실은 위험하게 하고 남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은 거짓말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시는 자기 생각을 거짓 없이 문장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허용하는 예술 양식입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선호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감추고 위장하고 싶어 하는 본래 마음을 대신하여 솔직히 드러내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시는 자기의 생각을 진솔하게 토로하는 고해성사 행위입니다.
교회의 권위가 고해성사 제도 때문에 유지되는 것처럼,
시의 권위도 이런 고해성사적 요소 때문에 유지되는지도 모릅니다.
일기를 쓰면서 청소년기의 혼돈을 극복하고,
연애편지를 쓰면서 사랑하고 떨리고 보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는 것처럼,
시도 다른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자기 고백을 통한 자기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이미 시 치료, 문학치료, 예술치료가 오래전부터 학문화 실용화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원래 살인하고 도둑질하며, 간음하고 싶고, 술 취하고 싶고, 미워하고,
더 미워하면 죽이고 싶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존재입니다.
종교와 법률은 인간이 원래 이러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해 경전과 법률로 정하여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금지 때문에 정신이 분열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원래 마음을 시인이 대신 표현하여 주면,
독자들은 시를 읽고 “그래, 이거 내 마음이야”라고 공감하여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사례가 폭설입니다.
술집과 노래방을 거친
늦은 귀가길
나는 불경하게도
이웃집 여자가 보고 싶다
그래도 이런 나를
하느님은 사랑하시는지
내 발자국을 따라오시며
자꾸 자꾸 폭설로 지워 주신다.
―「폭설」
저는 이 시집을 내면 실제 이 시를 시집의 맨 앞에 놔야 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독자가 이 시를 읽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자기검열 때문입니다.
정치시, 성과 관련된 시를 쓸 때 이런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중간쯤에 이 시를 편집해서 보냈는데, 편집자가 맨 앞에 배치한 것입니다.
이 시를 읽은 어느 분은 자신의 속마음을 대신하여 잘 썼다고 탄복하기도 합니다.
어느 분은 제가 이웃집 여자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놀리기도 하고,
어떤 분은 이웃집 남편이 찾아오지 않았느냐는 농담을 걸기도 합니다.
시가 이렇게 대중의 입에서 이야기 거리가 된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을 건드리고 그 본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위 시의 내용은 실제 이웃집 여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저를 포함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자기용서와 자기위로의 시입니다.
퇴폐한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포섭된 우리나라의 중년 남성문화를 풍자한 것입니다.
화자를 일인칭으로 했으니 자기 풍자의 시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들의 저녁 문화는 대개 술집에서 술집으로 전전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술을 잘 먹는 놈이 남자답고 쫀쫀하지 않고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 술 잘 먹는 남자가 실제 수입도 더 많고 사회적 지위도 더 높다고 합니다.
술 잘 먹는 놈이 출세한다는 신화가 여전합니다.
이건 좋건 나쁘건 현실을 지배하는 문화와 관습이어서 극복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시의 내용과 시인의 삶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시는 단지 창작물입니다.
시와 시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시인은
가난하고 술주정뱅이이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시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규보나 정약용은 정치에 적극적인 공무원이었으며,
모택동이나 호지명은 나라를 세운 정치가입니다.
엘리엇은 평생 넥타이를 풀지 않는 단정한 용모와 복장을 한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프랑스의 작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1.12.~1980.3.25.)는
‘사람은 작품에서 작가를 죽여야 진정한 의미에서 독자가 탄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오로지 글쓰기를 배합하고 조립하는 조작자,
또는 남의 글을 인용하고 베끼는 필사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작품을 읽을 때는 저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읽어야 진정한 독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작품에서 작가를 몰아내고, 작품 속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느껴질 때 감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 김광규의 「폭설」은 바로 나의 이야기고 감정이야!” 하고 말이죠.
아래의 시 「거짓말」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살아가는 중년의 위선적 행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시를 읽어보면 결론도 거짓말입니다.
인생이 이렇습니다.
대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속을 더 크게 비워하고
오래된 느티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썩히며 텅텅 비워간다
혼자 남은 시골 흙집도 텅 비어 있다가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다
도심에 사는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머리에 글자를 구겨 박으려고 애쓴다
살림집 평수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친구를 얻으려고 술집을 전전하고
거시기를 한 번 더 해보려고 정력식품을 찾는다
대나무를 느티나무를 시골집을 사랑한다는 내가
늘 생각하거나 하는 짓이 이렇다
사는 것이 거짓말이다
거짓말인 줄 내가 다 알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다
나를 얼른 패 죽여야 한다.
―「거짓말」
< ‘유쾌한 시학강의(강은교·이승하 외 지음, 아인북스, 2015)’에서 옮겨 적음. (2021. 4. 7.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222) 열두 편의 시와 일곱 가지 이야기 – 셋째, 솔직하게 표현한다/ 시인 공광규|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