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들만 바르게 풀어도,
왜 그렇게 어릴적 형이나 누나가
동생에게 심부름을 시켰는지,
원리를 깨칠수가 있었다.
동생은
형이나 누나보다 부모님과 사는 시간이 적다.
태어나보니 맏형은 부모님만 계시고,
둘째는 태어나보니 부모님과 오빠가 있고,
셋째는 태어나보니 부모님과 형님과 누님이 계신다.
태어난 환경이 다르게 가져온 것은 그 안에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막내는 태어나보니,
부모님과 형님과 누님들이 많은 세상에 태어난다.
막내가 사는 세상은 형이나 누나가 살던 방법과
다르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심부름이 아니라,
어른이 되는 공부를 가르치는 시간을 보낸다.
형님이 돈을 주면서 수퍼를 알게하고,
누님이 돈을 주면서 세탁소를 방문 하게 하고,
부모님 대신 친척집으로 배우러 보낸다.
오늘 우리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연구하라고 보낸 시간들이다.
그 심부름 하나 풀어 낼 수가 없으니
나중에 형제가 만나면,
어릴적이 형님 누님 심부름은 내가 다 했다고 푸념만
늘어놓는다.
오랜 단골이
늘 유모차를 끌고 아픈 동생과 물건을 사러 오신다.
동생이 아프기 때문이다.
병 문안 가는 사람은
나에게도 그런 기운이 있기에 공부하러 간다
왜 저 분이 병원에 누워있는지,
주스를 사면서 배우러 간다.
지식을 배우러 학교 가듯이,
사람 사는 방법도 오만가지로
저마다 방식으로 배우러 가야 한다.
오늘 내 앞에 오는 환경이 나의 공부다.
그 공부를 하질 않으면 나도 저 병원에 입원 할 다음 타자이기
때문이다.
고집이 세고,
남 돕는다고 내게 준 모든 물질을
다른 사람에게 준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아픈 것인가?
두 번째 병문안을 갈 때 지인이 나에게 한마디 한다.
자주 오면
너도 나처럼 병이 옮아오니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한다.
경제가 어려운 사람들이 남을 돕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려운 사람은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계산을 한다.
언제 누구 병 문안 갔는데
오지 않는다 하고
나는 병원비로 얼마 주었는데,
반 밖에 안 온다고 하고
오만 소리를 다 내어놓는다.
진정 도운 것인지 자신에 입으로 말을 다 한다.
도운 것이 바른것이라면,
더 이상 막힘이 없는 삶이다.
우리가 하늘을 보는 것도,
탁트인 것을 좋아하는 것도
행동 하는데 계산이 없기 때문이다.
아픈 동생이 집안에 누워있는것도
오늘 유모차를 끌고오는 언니가 그 책임을 많기 때문이다.
동생이 식탐이 강해 너무 뚱뚱하다고 하면서
음식만 사다준다.
걸을수도 없는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왜 그런지 동생 대신
움직이면서 찾아보는 일이다.
사회는 거대한 학교다.
우리는 사회로 입학하면서도
배우러 나오지 않고
살려고 나온다.
아이가 태어나 수십년간
부모와 형제
둉료와 많은 인연들과의 교류를 통해
배우면서 지식을 가추었다.
사회를 살아가는 법칙을
아직
연구한 논문이 없기에 어려움이 온다.
내 앞에 온 환경을 탓하지 말고,
하나라도 배우고자 해야
오늘 온 어려움을 풀수가 있다.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4년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