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것을 할때 능동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자연과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2024, 133)."
필자는 항상 궁금했던 것이 정신이 물질에 앞서서 작동한다고는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먼저 정신이 물질과 만나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정신과 물질 사이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이해가 안되었다. 물질은 탄소, 산소, 수소, 유황, 규소 등등으로 구성되고, 보이지 않는다. 정신과학적 요소인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나'도 보이지 않지만, 물질인 산소, 수소 등등과도 만나서 연결이 되어야 정신이 물질로 드러난다. 그 부분, 정신과 물질의 연결고리가 질문이다.
통상 우리 대부분은 정신을 인간의 마음 작용으로 인식, 현실에서의 관련을 파악한다. 그렇기에 필자 역시도 현실 삶에서 내부에 집중, 필자 내부의 상황을 파악할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필자의- 마음 작용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특히 노래할 때 많이 느낀다. 노래할 때 내부에 집중하면 노래의 감성을 느끼는데, 반면 내부를 놓치면, 즉 외부에 몰리면 노래의 감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래의 감성을 표현하지 못하면 듣는 사람도 재미가 없지만, 부르는 사람도 흥미를 잃는다. 여기에서 문제는 노래의 감성을 느껴야 노래의 감성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래의 감성을 느끼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부에 집중해서 나의 영혼의 작동(느낌)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영혼이 느끼는 감성을 내가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내부에 집중하지 않고도 노래의 감성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오랫동안 노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도 내부 영혼이 작동했기 떄문에 그럴 수가 있다. 요컨대 노래의 감성을 표현하는 존재는 영혼이다. 따라서 내부 영혼이 작동해야 노래의 감성을 느끼고 표현한다. 결론은 내가 내부에 집중해서 느껴야 하고, 또 '내부 영혼도 작동해야 한다'.
관련하여 필자가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다. 유튜브에서 노래를 듣는데 그 차이, 영혼이 작동하고 안하고의 차이를 느낀 것이다. 이기연 오페라 연구소에서 이승왕 성악가(바리톤)가 출연, 부른 노래에서 였다. 이승왕 성악가는 초등 시절 합창부 오디션에서 음치라는 말씀으로 합창부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와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에 올 수 있었느냐고 사회자가 묻자, 어린 시절 거의 매일 노래를 불렀고, 지금도 예를 들어 오페라 주연을 맡으면 오페라 곡이 약 400 페이지가 되는데, 그 곡 전부를 매일 한 번씩 부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여러가지 일을 해 보았지만, 재미있고 질리지 않은 것은 노래뿐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재미있고 질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영혼이 반응하면 재미있고 질리지 않는다. 반대의 표현도 가능하다. 재미있었기 때문에 영혼이 반응한 것이다. 더불어 오랫동안 해도 질리지 않은 것도 역시 영혼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들으면서 이승왕 성악가의 노래에서 가슴 에너지가 나온다는 생각을 했다. 다르게 말하면, 가슴이 열렸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노래는 단전의 힘으로 호흡을 밀어올려서 호흡이 소리로 바껴서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다. 요컨대 가슴이 열려야 이 호흡이 나온다. 다르게 말하면 가슴이 열린 것이 영혼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가슴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영혼이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들은 노래에서 이 부분이 확실하게 이해가 되었다.
같은 채널에서 10분의 성악가가 우리나라 가곡을 부른 것을 차례대로 편집하여 보여 주었다. 차례대로 노래를 부르니 그 비교가 확실히 되었다. 입을 크게 벌려서 노래를 불렀지만, 가슴이 열리지 않은 성악가도 있었다. 가슴이 열리지 않으니 입을 크게 벌려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소리가 나오지 않으므로 부르는 사람도 힘들 것이고, 듣는 사람도 힘이 든다. 전문 성악가들이므로 오랫동안 노래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반응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추측하기에 재미있게 즐겁게 노래하지 않았기 떄문이 아닌가 한다. 노래를 하는 것이 힘들 경우도 있겠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늘 자신의 내부를 살펴서 연구를 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라는 생각도 든다.
수조 안에 물을 채우지 않고 수조 안의 동전을 보면 바닥의 동전이 제 위치에서 보인다. 하지만 이 수조에 물을 채우고 수조 안의 동전을 보면 동전이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올라와 보인다. 자연과학의 설명은 물로 인해서 빛이 굴절되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물론 자연과학 입장에서 본다면 틀린 설명은 아니다. 하지만 슈타이너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할때 능동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자연과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2024, 133)." 인간의 눈이 동전을 보기 위해서 능동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면 인간의 눈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 즉 정신이 자연현상에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을 배제하고 자연과학적으로만 설명을 하면, 인간의 정신이 발전은 고사하고 자신과의 연결도 끊긴다. 결과 앞에서 설명한 전문 성악가들이 자신의 가슴조차 열지 못하는 것이다. 요행히 자신의 영혼을 발달시킨 사람만이 노래를 계속 부를 수가 있는 것이다. 혼신의 노력을 했지만, 자신의 내부가 발달하지 못했다면 어렵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노력만큼 자신의 내부가 발달한다는 것만은 진리이다.
슈타이너는 산소, 수소, 탄소, 유황, 규소 등등이 인간의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 그리고 '나'와 어떻게 만나서 물질과 연결되는지 설명해 놓았다. 하지만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슈타이너가 말한 "정신은 어떤 이론이 아니라 고차적인 경험에 근거한다(위책, 34)." 는 것이 이유일 듯하다. 요컨대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슈타이너 책을 이해가 안되지만 계속 읽다보면, 필자의 내부에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내부에 불이 환하게 켜진다. 순간 내부가 밝아지는 것이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부처님이 입적하실 때 '자등명 법등명'이라고 하셨고, 깨달음이란 많은 선지식들이 오랫동안 캄캄한 동굴에 빛이 켜지면 순간 환해지는 것과 같다고 하신 듯하다. 자신이 경험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내부와 연결이 되면 순간 밝아지는 것이다
여담으로 그런 순간을 예로 들면 슈타이너는 인간이 음식(여기에서는 단백질)을 먹으면 그 음식이 생식세포에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단백질이 혼돈 상태로 변해서 생식세포에 연결되는데, 이때 연결시키는 에너지가 우주의 에너지라는 것이다. 우주 에너지가 연결시켜주지 않으면 단백질이 내 몸에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 경험한 것은 소금이다. "소금은 보통 몸 조직 안에서 음식물이 가야할 곳으로 바로 가게 하는데 아주 큰 작용을 합니다(위 책, 291)." 필자는 머리 에너지가 아랫 부분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소금을 넣고 하는 족욕을 하면서 머리에 에너지가 올라간다는 것을 느꼈다. 머리에 에너지가 올라간다는 말은 음식(물도 포함)을 먹으면 음식 에너지가 머리로 올라간다는 느낌을 말한다.
슈타이너는 자신의 정신을 통하여, 자신의 정신을 해명하면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가슴이 막혔는지도 모르고 산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15세기 이후부터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전에는 인간이 이 정도로 정신을 배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늘 '고차적인 경험'을 할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늘 질문을 갖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현실 삶에서도 같다. 그러면 물질의 이면이 조금은 드러난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법륜스님이 즉문즉설을 하실 때 질문자의 상황을 살펴서 말씀하는 것은 이와 같이 정신작용을 파악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수준은 아주 미미하다. 그렇지만 정신을 살피면 물질을 활용할 수가 있다는 것은 파악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가슴을 열면 호흡이 올라오고 이 호흡이 노래로 나간다는 것이 정신으로 물질을 활용하는 것이다. 나아가 온 몸의 혈을 열면 현 공간의 공기를 진동시킬 수가 있다는 생각도 한다. 이 생각은 슈타이너의 주장, "우리는 실제 에테르체로 빛 속에서 유영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에서 출발했다(위 책,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