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229) 이미지라는 표현 장치 - ③ 상상력으로 그려낸 언어의 그림/ 시인 이형기
이미지라는 표현 장치
브런치 https://brunch.co.kr/@bookfit/389/ 05. 언어와 이미지의 감옥을 벗어나라. - 언어와 이미지의 한계가 상상력의 한계다.
③ 상상력으로 그려낸 언어의 그림
세실 데이 루이스는 이미지를 ‘독자의 상상력이 호소하는 방법으로
시인의 상상력에 따라 그러진 언어의 그림’이라고 말했다.
앞에서 인용한 박남수의 〈국화〉의
‘화분에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되어/ 빛깔의 어기찬 흐름을 흐르고’ 있는
이미지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은 국화가 실제로 그렇게 있는 모양을 사진 찍듯 재생한 것이
아니라 상상으로 변용시킨 그림이다.
국화가 ‘빛깔의 폭포’로 바뀐 것부터가 상상의 변용이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힘이 바로 상상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에선 이미지(image)란 말이 ‘상상하다’라는 동사로 쓰인다.
그 이미지의 명사형인 이매지네이션(imagination)은 ‘상상력’이다.
이는 이미지의 뿌리가 상상력임을 재확인시켜준다.
그러한 상상력을 통해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시를 쓰는 기본 태도라는 말은 그동안 여러 번 되풀이했다.
그러니까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이미지 역시 시의 본질로 직결되는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영국 경험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랜시스 베이컨은
상상력이란 ‘자연이 분리해놓은 것을 결합시키고,
자연이 결합해놓은 것을 분리시키는 힘’이라고 재미있게 규정하고 있다.
‘국화’와 ‘포도’는 원래 자연이 별개의 것이라고 분리해놓은 것이지만
시인은 그것들을 상상력으로 결합시켜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자연은 ‘사실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그 자연에 상상력을 작용하면 사실의 세계는 새롭게, 즉 낯설게 변용된다.
그러한 변용의 구체적 성과로서 시 표현에 기여하는 장치가 이미지이다.
다시 루이스의 말을 빌리면 ‘언어의 그림’인 그 이미지는
독자의 마음을 스크린에 시인이 비춰주는 슬라이드라고 할 수도 있다.
대상에 대한 시인의 느낌이나 상념들이 선명하게 시사(試寫)되지 않으면 안 된다.
흐릿하고 모호한 화면은 금물이다.
시인도 자기의 마음속에 시사실을 만들어 제작된 슬라이드를 사전에 여러 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없어도 좋을만한 군더더기는 잘라내고
애매한 부분이나 불투명한 대목을 새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곳이 시사실이다.
그러면 아래와 같은 이미지는 어떤가?
(뒤집혀진 보석) 같은 아침
누군가 문밖에 와서 누군가와 속삭이고 있다
그것은 신이 태어난 날
―니시와키 준사부로, 〈날씨〉 전문
이것은 일본의 시인 니시와키 준사부로의 시 〈날씨〉의 전문이다.
쾌청한 가을 아침이 ‘뒤집혀진 보석’으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정말 신선한 이미지이다.
괄호를 친 것은 그 대목이 다른 사람 시의 인용임을 나타낸다.
존키츠의 시 〈엔디미온〉에 ‘산호의 왕관 밑에 있는 미소는/ 뒤집혀진 보석처럼 갑자기 빛나고’란 구절이 있다.
니시와키는 그것을 인용한 것이다.
이처럼 남의 시에서 좋은 이미지를 빌려오더라도 그것이 개성적으로만 소화되면 탈이 없다.
키츠가 ‘미소’를 비유한 ‘뒤집혀진 보석’을 쾌청한 가을 아침의 이미지로 바꾼 것이
니시와키의 개성적 소화이다.
이미지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이미지는 감각적 지각과 관계가 있는 말인 만큼 그 종류는 우선 감각기관의 수와 맞먹는다고 할 수 있다.
즉,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에 호소하는 다섯 가지 이미지가 곧 기본 이미지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기에 몇 가지가 더해진다.
앞으로는 그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어 어떻게 표현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종류별로 살펴보겠다.
<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이형기 시인의 시쓰기 강의(이형기, 문학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1. 4.1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229) 이미지라는 표현 장치 - ③ 상상력으로 그려낸 언어의 그림/ 시인 이형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