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쌈을 끝낸 마을 주민들이 뒤풀이를 준비하고 있다. | |
경남 고성군 영오면 오동마을은 본래 진주군 오읍곡면에 속했다. 오읍곡의 동쪽에 위치해 오동(吾東)이란 이름으로 1895년 고성군에 편입됐다.
마을의 서북쪽은 진주시 금곡면과 접해 있고 영오천이 마을 앞을 감싸며 흐른다. 또 경지정리가 잘된 비옥한 토질을 자랑한다.
1600년께부터 민족 고유의 길쌈 문화 전통을 이어온 오동길쌈은 농가소득 증대와 노인의 경제적 자립 기반을 조성해 왔다. 겨울에는 영오호박, 봄에는 영오수박의 주산지인 이 마을은 달성 서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주민등록 인구는 95가구 221명이지만 실제 거주자는 128명으로, 대부분 65세 이상 노인이다. 마을의 최고령자는 91세 김쌍부 할머니이다.
# "채소 자주먹고 소식하는 게 건강비결"
- 84세 나이에도 베틀잡는 유봉순 할머니
길쌈 공동 작업장에서 만난 유봉순(84·사진) 할머니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이웃마을에서 시집 왔다.
8남매를 모두 출가시킨 할머니는 모진 세월을 이겨낸 흔적이 역력했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삼베로 얘들 옷도 해 입히고 시장 통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갔어. 늘 삼베와 함께 했지."
할머니의 하루는 오전 6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직접 키운 시금치와 무, 감자 등 무농약 웰빙 식단으로 아침을 챙겨 먹는 할머니는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며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맞이한다. 요즘도 500평 규모의 밭을 직접 경작할 정도로 건강하다.
"별다른 건강 비결은 없어. 자연산 채소를 자주 먹고 늘 웃으며 살려고 노력할 뿐이야." 할머니의 장수 비결은 육류를 피하고 적게 먹는 식습관이다.
틈나는 대로 공동작업장을 찾아 베틀을 잡고 이웃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며 피로를 푸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는게 영 서운하지만 난 물 좋고 공기 좋은 이곳에 영원히 남고 싶어."
마을의 각종 대소사를 빠짐없이 챙기는 유 할머니는 늘그막에 바람이 있다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 오동마을은…
- 삼베생산 400년 전통이 자립기반으로
이 마을은 고성에서도 오지에 속했지만 지난 2005년 말 진주~통영고속도로 개통 이후 교통편이 한결 나아졌다. 진주~통영 구간 중 진주 방면의 첫 나들목인 연화산 IC에서 벗어나자마자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이 마을을 만날 수 있었다. 오동마을은 뒤로는 연화산이 병풍처럼 자리잡고 있으며, 앞에는 영오천이 흘러내려 문전옥답을 적시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지세를 간직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300년이 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떡 하니 버티고 섰다. 주민들은 이 나무가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믿고 있다.
이 마을은 지난 2005년 장수마을로 선정되면서 지원받은 1억3000여만 원으로 60평 규모의 길쌈 공동 작업장을 신축한 이후 신바람을 내고 있다. 각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이뤄지던 길쌈 작업이 공동 생산으로 마을 소득도 한층 높아진 데다 주민들 간 신뢰감을 더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 들어서자 반겨준 사람은 마을이장 서정갑(66) 씨. 목소리와 피부 등에서 왕성한 혈기가 전해지는 젊은 오빠다. 서 이장은 "장수마을로 선정된 이후 들어선 길쌈 공동 작업장으로 인해 마을은 활력이 넘친다"고 말했다.
공동 작업장으로 들어가자 노인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길쌈 작업을 하면서 길쌈 노래를 흥얼거렸다. 김수남(66) 씨는 "오랜 기간 구전해 내려오는 길쌈 노래는 작업의 흥을 돋구는 데는 그만"이라며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노인회장인 서정태(73) 할아버지는 "수십년 간 이어져온 길쌈 작업 덕택에 마을이 유명해지고 생활도 윤택해졌다"며 "길쌈이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 작업장 한쪽에는 자동안마기와 러닝머신 등 부대 시설이 갖춰져 있다. 러닝머신으로 운동을 하던 서무곤(75) 할아버지는 "마을을 둘러보면서 걷는 것도 좋지만 운동기구는 또다른 즐거움을 준다"며 연신 몸을 움직였다.
이외에도 10여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찜질방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주민들이 연신 땀을 훔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민들은 "길쌈 작업을 하는 중간 중간에 틈을 내 찜찔방에서 피로를 푸는 재미가 그만"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어느 정도 길쌈 작업이 마무리되자 주민들이 느티나무 아래 마을 공터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들은 꽹과리와 북을 치면서 흥겨운 리듬에 맞춰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다. 작업 후 뒤풀이로 신명나게 몸을 흔드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건강미가 물씬 풍겨났다.
장수마을 담당자인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심혜순(50) 계장은 "주민 모두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대다수 노인들이 생업에 종사할 정도로 기력이 정정해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서태욱(88) 할아버지는 "주민들이 길쌈 작업은 물론 호박이나 고추 등 비닐하우스 재배와 밭농사도 겸할 정도로 건강하다"고 자랑했다.
마을에는 길쌈 소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노인들을 주축으로 '오동길쌈 소리연구회'라는 모임이 2005년 발족됐다. 회원 30여 명은 고성 출신인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와 함께 '오동길쌈 일소리'라는 책자를 만들어 배포했다. 회원들은 2005년 개최한 경남도민속예술축제에 고성군 대표로 출전해 장려상을 받았다. 연구회는 요즘도 완벽한 소리를 되찾기 위해 수시로 모임을 갖고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소리연구회 서영필(51) 회장은 "옛 조상들의 삼베 제조 과정을 버리지 않고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오동마을에 대해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